주현욱 일병 |
“군인아저씨! 죽지마세요. 나쁜 놈들이 우리 집을 부수고 우리를 잡아가잖아요. 그러니까 아저씨들은 죽으면 안 돼요. 군인아저씨 늘 고맙습니다.” 나더러 아저씨란다. 상큼한 내 나이 스물한 살에 아저씨 소리까지 들었다. 심지어 혈기 왕성한 나에게 죽지 마라고 한다. 하지만 아저씨라는 이 말에 형아 미소가 입가 한가득 번져나가는 이유는 뭘까À
오늘 나에게 편지 한 통이 도착했다. 초등학교 2학년 승엽이라는 남자아이가 아저씨인 나를 위해 보낸 편지 한 통이었다. 삐뚤어지고 좌로 우로 넘어질 듯 아슬아슬한 글씨였다. 하지만 그 글씨에서 작은 손에 힘을 잔뜩 주고 한 글자 한 글자 정성껏 적어 내려간 흔적이 보였다. 편지를 읽어 내려가면서 내 어릴 적 기억을 더듬어봤다. 나도 그때 군인아저씨라는 말로 첫 인사를 시작했던 것 같다. 그리고 우리를 잘 지켜 달라는 당부도 거듭했던 것 같다. 승엽이 편지 속에서 초등학교 시절 나를 발견하는 것 같아 괜히 반갑기도 했고 “아저씨들이 죽으면 내가 잡혀가니 죽지 마세요”라는 초등학생다운 솔직한 부탁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그래 내가 지켜주마! 이 아저씨만 믿어라! 나중에 이 아저씨가 할아버지가 되면 그땐 네가 나를 지켜라”라고 허공에 혼잣말로 답장을 보내기도 했다.
“나라 지킨 보람이 있네” “오늘은 그냥 아저씨 할란다.” 그렇게 오늘 하루 우리 생활반에는 아저씨 미소가 넘쳐났다. 우리들은 서로에게 받은 편지를 자랑하기에 바빴고, 마음 급한 부대원들은 답장을 써야겠다며 분주하게 움직였다. 생각해 보니 내 주변에 있는 친구들도 군복 입은 나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초등학생 꼬마들은 우리를 걱정해 주고 자랑스럽다고 이야기를 해준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청년들이 군인이 돼 나라를 지키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그래도 누군가 우리를 위하는 힘이 되는 예쁜 말을 전해주니 더욱 힘이 나는 것 같다. 그리고 내가 지금 이곳에서 무엇을 하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하는 시간도 됐다.
스물한 살 총각이 아저씨가 됐지만 편지에 가득 담긴 그 예쁜 마음 덕분에 오늘만큼은 아저씨가 돼도 행복한 날이다. 이 글을 마치고 나는 꼬마친구 승엽이에게 편지 한 통을 적어 보내려고 한다. “승엽아! 결코 죽지 않을 해병대 현욱이 아저씨야~!”라는 말로 시작하는 편지를 말이다. 그리고 내가 승엽이에게 받은 든든한 기운과 힘을 승엽이와 승엽이네 교실에 전해줘야겠다. <국방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