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우 토론토 통신원 칼럼

 

해병대원에게는 ‘곤조’(根性-근성)라는 게 있다. 평소엔 온순한 듯하지만 한번 성깔이 나면 무섭게 돌변한다. 특히 먼저 얻어터지고 나면 절대로 가만두지 않는다. 그 몇 배로 되갚아 준다. 그래서 한때는 ‘개망나니’ 소리를 듣기도 했으며 저잣거리에서 해병을 만나면 타군(他軍)들이 슬슬 피해 갈 정도였다. 그만큼 두렵고 무서운 군대다.

특히 해병대는 떼로 뭉쳐 싸우는 데 뛰어나다.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상륙작전이 주 임무인지라 무엇보다 대원 간의 전우애와 단결이 필수적인 데서 기인한 것이다. 이런 기질로 인해 사회에 나와서도 전우들 간에 절대로 옛정을 잊는 일이 없다. 팔각모자에 빨간 명찰만 만나면 무조건 금방 친해진다. 해외 교민사회도 예외가 아니다. 이곳 토론토에도 해병전우회가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해병대는 군대이기도 하지만 하나의 사회정신이다. 어린 여고생부터 고위 기업인까지 왜 수많은 사람들이 사서 고생해 가며 해병대 캠프에 자원입소하는가. 사회에서 나약해진 심신을 재충전하려는 것이다.

해병대는 왜 강한가. 그것은 혹독한 훈련을 통해 강인한 체력과 극한상황에서도 생존할 수 있는 ‘깡다구’를 길러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론 서글픈 아이러니도 있다. 해병대는 타군에 비해 대우가 매우 열악하기에 대원들이 하나같이 ‘악’에 치받쳐 있으며 이로 인해 조금만 건드려도 폭발하게 돼 있는 것이다.

‘귀신 잡는 해병대’는 그 용맹성에도 불구하고 한국군에서 춥고 배고픈 군대로 인식돼 왔다. 한국군은 육해공군 중심이기 때문에 해병대는 예산배정이나 각종 전력사업의 우선순위에서 타군에 밀려 왔다. 장병들의 후생복지는 눈물이 날 지경이다. 지금은 어느 정도나 개선됐는지 모르겠으나 80년대 초 포항과 백령도에서 근무했던 필자는 그 열악했던 부식(반찬)이 아직도 기억에 선하다. 어떤 때는 간장과 소금에 밥을 비벼 먹은 적도 있다. 장교가 그럴진대 일반 사병들의 처우는 말할 것도 없었다.

현재 한국의 해병대 병력은 2만6800여 명으로 전체 군 병력의 3.4%를 차지하고 있지만 예산은 전체 국방비의 2%에 불과하다. 해병대는 지난해와 올해 대(對)포병레이더, K-9 자주포, K-1 전차 등의 전력증강을 요구했으나 묵살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니 해병대에게는 ‘악’만 남을 수밖에 더 있는가. “건들기만 해 봐라, 몇 배로 갚아 주마”라는 분노가 가득 차 있다.

이런 해병대가 북한의 포격을 맞고 대원 2명이 전사했다. 해병대의 상식이라면 선제포격을 가한 쪽은 이미 쑥대밭이 돼 있어야 한다. 북한이 200여 발을 쏘았다면 우리는 2000발을 쏘고도 분이 안 풀렸을 것이다. 그런 해병대가 단 몇 방만 쏘고 주저앉았다. 왜 그랬을까.

“청와대와 정부 내의 ‘X자식’들에 대해 한 말씀 하겠다.” 북한이 연평도를 포격한 다음 날 한나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육두문자가 튀어나왔다. 6선 중진인 홍사덕 의원이었다. 그는 “포격 직후 대통령이 ‘확전하지 말고 상황을 잘 관리하라’고 말하게 만든 참모들은 반드시 해임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 의원이 누구인가. 그가 바로 해병대 출신이다.

만약 그런 말을 군대 근처에도 안 가본 정치인이 했다면 별 설득력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홍 의원은 그렇게 말할 자격이 충분히 있다. 홍 의원은 한 주간지에 ‘내가 대통령 참모들을 ‘X자식’이라고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라는 글을 기고했다. 그는 말한다. “나는 해병이다. 연평도는 내 자식 놈이 복무했던 곳이다. 나는 130기, 아들은 702기다. ‘높은 놈’ 자식은 제일 힘든 곳에 보내는 해병대 전통에 따라 배치된 것이다… 아들이 복무했던 곳에서 아들의 후배, 그리고 나의 후배가 전사했다….”

그는 해병대 사병으로는 서울대(외교학과) 출신 1호였다. 기자 출신답게 문장도 정연하다. “해병대는 절대로 공매를 맞지 않는다. 반드시 반격하고 반드시 몇 배로 갚는다… 북한이 가장 두려워하는 해병이 당했다. 우리 군이 몇 배의 보복을 할 수 있도록 내버려 뒀어야 했다. 대통령으로 하여금 확전 자제를 말하도록 오도한 참모들은 이참에 전부 청소해야 한다. 바로 이 자들이 천안함 폭침 직후 ‘북한은 관련이 없는 것 같다’는 말을 흘렸던 사람들일 것이다.”

대통령이 실제로 그렇게 말했는지는 모르겠으되 얻어터지고 있는데 확전하지 말아야 한다는 발언은 해병대에게는 치명적인 것이다. 국방장관 한 명 교체한다고 풀릴 일이 아니다. 홍 의원의 말마따나 한국엔 정말로 ‘X자식’들이 많은 것 같다.

정부가 뒤늦게나마 해병대의 병력과 장비를 강화해 ‘국가전략기동부대’로 육성한다니 해병 출신으로서 다행으로 생각한다. <대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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