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마고원에 있는 장진호(長津湖)는 겨울엔 영하 20도를 오르내리는 혹한지역이다. 6 · 25 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장진호까지2010121575771_2010121550461.jpg 진격했던 미 해병 1사단이 중공군 포위망을 뚫고 흥남으로 후퇴했던 때가 11,12월이다. 얼마나 추웠던지 소총과 야포가 걸핏하면 불발됐다고 한다. 미군 2500여명이 목숨을 잃었지만 중공군에게는 10배 이상 타격을 입혔다.

당시 1사단장 스미스 소장에게 기자가 후퇴하느냐고 묻자 이렇게 쏘아붙였다. "후퇴가 아니다. 다른 방향으로 공격하는 거다. " 해병에게 후퇴란 없다는 걸 강조한 말이다. 우리 해병도 조금도 뒤지지 않는다. 장진호 전투보다 3개월쯤 전인 8월 경남 통영에서 상륙작전을 단행했다. 치열한 접전 끝에 해병 1개 중대가 북한군 대대 병력을 무찌르고 통영을 되찾았다. 뉴욕 헤럴드 트리뷴의 전설적 종군기자 마거릿 히긴스는 '그들은 귀신도 잡을 정도였다'고 표현했다. '귀신 잡는 해병'이란 말은 여기서 유래했다.

9 · 28 서울 수복 때 중앙청에 태극기를 제일 먼저 꽂은 것도 우리 해병이다. 1960년대에는 베트남전에 투입돼 큰 공적을 올렸다. 바짝 깎은 머리,팔각모,빨간 명찰은 돌격의 상징이다. '불가능은 없다''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 등에선 자긍심이 묻어난다. 혹독한 훈련을 통해 특유의 정신력을 키운 덕이리라.

이런 정신은 북한의 연평도 도발 당시 전투에 참가했던 장병 12명의 수기에서도 드러난다. "반장님은 얼굴에 피를 흘리며 외치는데,귀에선 포탄 떨어지는 소리만 들렸다….우리가 강하다는 걸 모두에게,적에게도 알리고 싶었다. 수동으로 방열해 사격을 했다. "(정병문 병장) "당할 수만은 없었다. 분노가 차올라 신속히 포탄을 준비해 사격에 가담했다. "(김영복 하사) "의무실은 드라마에서 보던 처참한 전쟁 현장 그대로였다. 부상 당한 동료들의 환부를 찾아 군화를 벗기니 담겨 있던 피가 쏟아졌다. "(이재선 하사)

위험이 따른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이달 977명을 뽑는 해병 모집에 무려 3488명이나 지원해 3.57 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지난달의 2.95 대 1,작년 12월의 2.25 대 1보다 훨씬 높다. 나라를 지킬 수 있다면 위험이나 힘든 훈련을 피하고 싶지 않다는 게 지원 동기라고 한다. 우리 젊은이들의 정신이 시퍼렇게 살아있음을 보여준다. 이들이 있는 한 우리의 앞날은 밝다.

한국경제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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