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적 軍조직관리…병영문화 혁신 이끌어
병사·지휘관 패턴, 전투능력에 큰 영향
병사간 소외되는 유형 ‘관심병사’ 파악 유용
지난해 3월 열린 한미연합 상륙훈련에서 가상의 적 해안에 상륙한 한미 해병대원들이 목표지점을 향해 이동하고 있다. 국방일보 DB |
최근 병영문화 혁신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해병대와 한국조직문화연구회가 공동으로 추진한 병영조직 특성 연구는 우리의 주목을 끌기에 충분하다. 지금까지 조직역량에 대한 연구는 병사나 지휘관의 개인적 능력에 초점을 뒀으나 최근에는 조직 구성원의 관계를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해병대는 과학적인 조사 분석 기법을 동원, 기초전투단위인 분대급 조직을 중심으로 군 조직 특성을 체계적으로 분석했다. 연구 의의와 결과를 프로젝트에 참여한 중앙대학교 정태연 교수를 통해 들어 본다.
전투력의 핵심은 전투조직의 특성
오늘날 우리 군이 직면한 도전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전투력을 지속적으로 증강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병영문화를 혁신하는 일이다. 이러한 도전에 대처하기 위해 우리 군은 다각적인 노력을 해 왔다. 그 중 전형적인 방법은 병사들의 개인적 특성을 파악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각종 심리검사와 군인정신·리더십 등을 측정하는 척도들을 사용해 왔다. 그러나 집단은 구성원들의 합 이상이라는 사실은 군에 대한 문제를 관계적이고 조직적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이 더 본질적일 수 있음을 강력히 시사한다. 기존의 검사는 그 유용성에도 불구하고 구성원들 간 관계나 각 전투단위의 특성을 체계적으로 진단하지 못하고 있다.
또 가장 기본적 전투단위인 분대나 소대의 조직특성과 초급리더십(분대장)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다. 그래서 기본 전투단위를 중심으로 한 병영조직의 효율적 관리에 대한 전략이 부재한 상태다. 한국조직문화연구회 소속의 본 연구팀은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기본적으로 전투단위 구성원들 간의 상호평가를 통해 개체적 특성, 그들 간의 관계적 특성, 조직의 과업적 특성을 조사함으로써 각급 전투단위의 특성을 과학적이고 다차원적으로 파악하고자 했다.
강하면서 부드러운 해병대 정신
해병대 장병들은 자신들의 군인정신으로 강한 면과 부드러운 면을 모두 강조하고 있었다. 그들은 무엇보다 강인함, 소속감, 책임감, 도전의 가치를 공유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대인관계에서는 배려와 대화, 협력과 같은 희생정신을 큰 가치로 삼고 있었다. 이러한 해병대 정신의 정점에 리더십이 있었다. 지휘관의 핵심 가치 중에는 전문성과 추진력, 솔선수범과 친밀감이 있었다. 이러한 공통점과 함께 해병대 정신은 계급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병사들은 의무와 복종을, 힘든 생활의 해소로서 대인관계의 기능을, 그리고 리더십으로 전문성과 사기증진을 강조했다.
부하와의 관계 전투력 좌우
해병대 지휘관들은 크게 두 가지 유형의 리더십을 보였다. 전문가형의 지휘관들은 업무에 대한 역량과 지식을 바탕으로 강력한 추진력을 발휘했다. 반면 상담가형은 병사들의 고충이나 의견을 듣고 설득하는 소통 중심의 리더십을 발휘한다. 흥미롭게도 분대장이나 소대장이 병사들과 맺고 있는 관계가 리더십의 성공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리더십 점수가 높지 않더라도 병사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지휘관은 업무수행 성적이 우수했지만 관계가 좋지 않은 조직은 리더가 개인적으로 우수해도 그 조직의 수행 성적은 덜 우수했다.
해병대원들의 직무수행은 전체적으로 매우 높은 수준을 보였지만 어떤 전투단위는 충성심, 단결, 군기와 같은 정신교육과 관련된 측면을 좀 더 강조했다. 반면 또다른 단위는 주어진 업무의 수행과 개인적 몰입을 더 강조하는 특성을 보이고 있었다. 또 전투력과 병영사고 측면에서도 전투단위들 간의 차이가 있었다. 대부분의 전투단위들은 전투력 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얻고 병영사고의 평가에서는 낮은 평가를 받았지만 그렇지 않은 조직들도 있었다. 이러한 전투단위들 간의 차이에도 리더십과 함께 부대원들 간의 관계가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분대단위 내에서 해병대 병사들의 대인관계 연결망은 여러 유형을 띠고 있었다. 대다수의 분대는 모든 구성원들이 서로 친밀하게 연결돼 있는 수평적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특별히 소외되거나 따돌림을 받는 구성원이 나오기 어려워 가장 이상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대인관계가 한 사람에게 집중돼 있는 집중형, 관계망에서 한두 명이 배제된 소외형, 또는 두 사람을 중심으로 관계가 이뤄지는 경쟁형의 형태도 소수이지만 존재하고 있었다.
관계적 특성 파악해야
해병대의 병영문화에 대한 본 연구 결과는 몇 가지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와 시사점을 갖고 있다. 먼저 군의 전투력을 높이고 제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각 구성원의 개인적 특성과 함께 그들 간의 관계적 특성을 고려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병사와 지휘관과의 관계 패턴이 그 전투단위의 업무능력에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점은 관계망이 군조직의 이해에 필수적임을 시사한다.
둘째, 전투단위의 다양한 관계망은 전투력의 차이를 가져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전투단위에서 발생하는 여러 문제와도 관련이 될 수 있다. 예를 들면 병사들 간의 관계망에서 한두 명이 소외되는 유형은 관심병사를 파악하는 데 유용할 수 있다. 이러한 분석에 기반해서 지휘관, 조직문화 같은 다양한 측면을 좀 더 심층적으로 알아봄으로써 문제가 생길 수 있는 조직이나 구성원을 파악할 수 있다.
과학적 탐구로 무장하는 해병대
우리 해병대는 자타 공인 최고의 군대다. 강한 해병이라는 구호에 걸맞게 우리 연구팀은 그들이 투철한 군인정신과 강인한 체력으로 무장된 소수정예 부대라는 점을 재차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의 연구결과가 해병대의 전투력을 더욱 고취하고 제반 문제를 일소하는 데 새로운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우리의 군대조직을 새로운 안목으로 볼 수 있는 지혜와 통찰이 필요한 때다. 이런 점에서 앞서 가는 해병의 도전정신과 실험정신을 높이 살 만하다.
정태연 중앙대 심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