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솔산에 핀 철쭉꽃

 --- 도솔산 격전지를 찾아서 ---

      임종린(제20대 해병대사령관, 시인)

 

1.

눈 보라 맞으며

춘풍따라 피어난 철쭉꽃

슬픔과 두려움 안은 채

사연도 많은 봉우리마다

붉게 덮혔는데

 

도솔산에 핀 철쭉꽃은

 

피와 땀과 눈물로 얼룩진

해병대 용사들이

조국을 목 놓아 불렀던 절규(絶叫)처럼

호국에 나선 단심(丹心)의 선혈(鮮血)만큼이나

붉은 것 같다.

 

눈물..., 고인 눈물로도 씻을 수가 없었던

반세기의 한(恨) 맺힌 긴 긴 세월을

나는 어쩔 수 없이

뿌리 뽑힌 영혼 속에 떨면서

오늘도 살아 있는 잘못을 범하고 있다.

 

그러나

먼 길따라 걸어온 이 아픔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넉넉한 기쁨을 주지 않지만

 

이 산야(山野)에

그대가 없었다면

누가

이 아픔의 한(恨)을 달래며

이렇게도 값진 전통과 빛나는 역사를

우리 해병대를 위해

새겨 주었겠나.

 

2.

지루한 밤의 어둠이 걷히고

밝아오는 산등성이에서

생명체(生命體)들이 하나, 둘

기지개를 펴는 이른 아침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싱그러운 바람 불어와도

떨어져 버리는

그 짧고 덧없는

철쭉 꽃잎에 맺힌 이슬들....

 

사라져 가는 순간적인 세월의 공간을

감동(感動)할 줄 아는 자만이

역사와 가장 밀접하게 교감(交感)할 수 있는

선택의 자유를 가진다.

 

그러나,

눈으로 볼 수 있는

광경을 기록할 뿐

그 순간의 절박했던

느낌을 간직하지는 못한다.

 

왜 그럴까?

 

우리는 누구나

마음이 밝은 날에만

좋은 사물(事物)을 볼 수 있고,

새로운 전통과 역사를 창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이어지는

봉우리에서 봉우리로

전운(戰雲)이 감돌던 전선의 밤은 밝았고

혈흔(血痕)이 낭자(狼藉)한 싸움터에서

전승(戰勝)의 기세(氣勢)를 잡았지만

아직도 아쉬움은 남아 있다.

 

그래서,

반세기 아픈 역사를 잊지 않으려

피어 있는 철쭉꽃은

도솔산을 붉게 물 들이고 있구나.

 

3.

철쭉꽃 향기 풍기는

도솔산 산등성이

푸르름 우거진 숲 속에서

뻐꾹새가 울어댑니다.

한없이 푸른 하늘 아래

님들의 고귀한 희생이

메아리되어 날아옵니다.

 

나는,

지금도 눈물 흘리며

철쭉꽃으로 피어 피를 토(吐)하고 있는

아픈 역사의 상흔(傷痕)을 빨갛게 충혈(充血)된 눈으로

쳐다 보고 있습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온

철쭉꽃이 핀 이 날에

조용히 눈 감고

반세기의 시련(試鍊)과

역경(逆境)을 이겨낸

님들의 침묵 앞에 고개숙입니다.

 

"아- 도솔산, 높은 봉(峰)!

해병대 쌓아올린 승리의 산

오늘도 젊은 피, 불길을 뿝는다."

 

이젠 제발,

우리가 흘린 피와 땀과 눈물이

헛되지 않기를....

 

다시는 이 땅에, 다시는 우리에게

동족상잔(同族相殘)의 피 비린내 나는

전쟁은 있어서는 안됩니다.

 

출전 : <월간 국방119> 2000년 6월호, p28~30


  1. 6월을 맞아 동작동 국립 현충원을 찾았다 - 임종린

    임종린(시인, 전 해병대사령관) 우리국민 그 누구도 죽음 앞에서는 자신을 통제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특히 푸른 유니폼을 입고 있거나 입었던 사람들에게는 헌신해 왔던 천직의식이 값어치를 샘할 수 없을 정도로 ...
    Date2011.06.05 Views2885
    Read More
  2. 어느 해병의 낙서

    지난 시절 많은 일들을 경험하고도 세월에 퇴색되어 잊고 살아가지만 마음 속에 간직하며 가슴저리게 한 어느 해병의 수첩 속에 적혀있던 잊혀지지 않는 낙서가 생각납니다 소중히 간직하며 몇 번이고 되새기면서 황...
    Date2011.02.13 Views2952
    Read More
  3. 시들어 버린 얘기 꽃 - 임종린

    시들어 버린 얘기 꽃 임종린(제20대 해병대사령관, 시인) 너무나 짧기만 했던 꿈같은 나흘 “또 만나자” 믿어지지 않는 약속 “오래 사세요” 큰절하다 터진 몸부림 “가지마, 나랑 살자”는 병상노모의 소망 상봉에서 못...
    Date2010.12.26 Views2937
    Read More
  4. 우리 다 하나 되어 - 임종린

    우리 다 하나 되어 임종린(제20대 해병대사령관, 시인) 1998년, 참으로 기(氣)도, 혼(魂)도 나가 버렸던 힘들고 아쉬운 한 해였다. 바로 서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흔들릴 때가 많았고 극복(克服)이라는 어려운 길과 ...
    Date2010.12.26 Views2697
    Read More
  5. No Image

    4월의 사나이 - 임종린

    4월의 사나이 --- 해병대 창설 51주년 축시 --- 임종린(제20대 해병대사령관, 시인) 1. 겨울동안 쌓였던 잔설(殘雪)이 녹는 4월이 오면 창가에 비치는 따사로운 햇살이 싱그러운 바람과 함께 대지의 훈기(薰氣)가 새...
    Date2010.12.26 Views3087
    Read More
  6. No Image

    도솔산에 핀 철쭉꽃 - 임종린

    도솔산에 핀 철쭉꽃 --- 도솔산 격전지를 찾아서 --- 임종린(제20대 해병대사령관, 시인) 1. 눈 보라 맞으며 춘풍따라 피어난 철쭉꽃 슬픔과 두려움 안은 채 사연도 많은 봉우리마다 붉게 덮혔는데 도솔산에 핀 철쭉...
    Date2010.12.26 Views2540
    Read More
  7. 괴롭고 슬펐던 대방동 여정 - 임종린

    괴롭고 슬펐던 대방동 여정 임종린(20대 해병대사령관) 대방동에 해 떨어지고 가로등에 불 밝혀지면 바쁜 행렬은 붐비기만 했었다 신바람 몰고 온 길거리는 네온사인 반짝이며 황홀한 불빛으로 쌓였지만 휘청거리는 ...
    Date2010.10.11 Views4261
    Read More
  8. 영원한 대한민국 해병대 - 임종린

    임종린(시인· 제20대 해병대사령관) 1949년 4월 15일! 덕산에서 조국의 부사신으로 태동한 지 61년 피와 땀과 눈물도 많이 흘렸지만 세월 따라 운명 따라 용감하게 싸웠다 우리는 영원히 이 땅에서 해병으로 살아야 ...
    Date2010.06.12 Views3568
    Read More
  9. No Image

    시 / 海兵隊創設 61周年 追念 - 임종린

    임종린(시인, 20대 해병대사령관) 작지만 강한 대한민국해병대 지나온 세월을 되돌아보니 德山에서 조국의 不死身으로 胎動한지 61년 어언 반세기 세상 살면서 가진 것은 없어도 빨간 명찰과 팔각 모가 있었기에 세월...
    Date2010.05.16 Views1923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Next
/ 1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