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승 (예)해병준장
동계훈련의 목적은 혹한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며 주어진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해병대 수색대대장 시절 해마다 겨울이면 강원도 산악지역으로 훈련을 갔다. 훈련장에 도착하면 늘 시끌벅적하게 군가를 부르고, 상의를 벗은 채로 단체 구보를 한다든지, 눈밭을 구르며 젊음을 뽐내기도 하고, 얼음물에 들어가 의식적으로 강한 척 자랑하기도 했다.
훈련장 뒤 높은 고지에는 공군부대가 있었는데 그 부대장이 종종 들러서 병사들을 해병대에 파견해 동계훈련을 시켜야 한다는 얘기를 했었다. 하루는 내가 고지 정상에 있는 공군부대를 방문했는데, 영하 21도에 강풍이 몰아쳐서 얼른 건물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그런데 뒤돌아보니 공군 병사들이 묵묵히 제설작업을 하고, 드럼통을 옮기며 유류작업을 하고 있었다. 혹한 속에서 자신의 몸을 보호하며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는 그들을 보면서, 동계훈련이 가장 잘된 최고의 용사들이란 생각을 했었다.
동계훈련 기간에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동상(凍傷)이다. 그러나 초년병들은 정신없이 휘둘리다 보니 스스로 대비할 수 없다. 간부들이 조금만 관심을 두지 않으면 후송을 보내야 하는 환자가 발생하기도 한다.
로키산맥 깊숙한 곳에 있는 미 해병대의 산악훈련소(MWTC: Mountain Warfare Training Center)에서 훈련을 받은 적이 있다. 6·25전쟁 중 장진호 전투에서 큰 손실을 본 미 해병대가, 그곳에 훈련장을 만들어 일정 기간 훈련한 다음, 동상에 걸리지 않은 장병들만 한국으로 파병했다고 한다. 자기 몸을 스스로 보호하려는 의지와 능력을 중요시한 것이다.
또 다른 문제는 폭설이다. 다져지지 않은 눈길을 걸어보지 않은 사람은 그것이 얼마나 힘든지 잘 상상하지 못한다. 또한 제설작업을 하지 않는다면 모든 기동장비가 움직일 수 없다. 전시에 폭설이 내렸을 때(일정 적설량 이상일 때는 전차도 기동 불가) 적과 대치하고 있고, 곳곳에 적의 특수전 부대들이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환경에서 과연 기계화부대나 보병부대들이 설상 환경을 극복해 나가며 효과적으로 작전을 수행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은 아직도 의문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훈련과 장비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혹한을 직접 체험해 보지 않고 이론적으로만 알고 있는 것은 위험하다. 유류에 들어 있는 미세한 수분이 얼어붙어 배관을 막는 바람에 달리던 차량이 갑자기 멈춰 서기도 한다. 통신기 배터리 수명이 짧아져 더 많은 예비 배터리를 휴대해야 하고, 각종 포의 경우 장약 효능이 떨어져 사거리에도 영향을 미친다. 동계훈련 중 추위에 벌벌 떨고 있는 장병들에게 늘 강조하는 말이 있다.
"엄살떨지 마라. 대한민국에서 가장 추운 곳이 북한군에게는 가장 따뜻한 남쪽 나라다."
우리보다 훨씬 더 추운 곳에서 훈련 중인 적들을 이기기 위해서는 자신을 보호하면서 더 효과적으로 작전할 수 있는 강한 동계훈련이 필요하다. <이해승 (예)해병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