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b_gjs_03.jpg

일병 서보국 

 

2008년 4월 28일, 나는 자랑스러운 해병의 아들로 태어나기위해 해병대 교육훈련단에 당당히 입소했다. 7주간의 혹독한 훈련과 미칠 듯한 그리움을 견뎌내며 오른쪽 가슴에 해병의 상징, 피와 땀이 묻은 빨간 명찰을 달 수 있었다.
작년 7월 말, 처음 이곳에 왔을 때 그 느낌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내 눈에 보이는 것 모든 것은 다 낯설었다.
처음 보는 낯선 사람들, 낯선 건물들, 낯선 물건들, 심지어 오랜만에 해보는 축구도 낯설었을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이 낯선 환경과 하늘같이 높아 보이는 선임들 속에서 나는 움츠려들 수밖에 없었고, 긴장 속에 하루하루를 보냈다.
아니, 오히려 버텼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지도 모르겠다.


실무생활을 하기 전까지는 항상 친구와 같이 느껴지는 동기들끼리만 생활해왔었기에 선임이란 존재가 더 어렵게 다가왔던 것이었다.
차츰 새로운 생활방식에 적응해나가고, 선임들에게 많은 것들을 배워나갔다. 자칫 하나라도 실수해 선임들
에게 꾸지람을 듣는 날에는 더욱 소심해져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병이었기에 항상 제일 빨라야 했고, 항상 제일먼저 해야 했다. 물론 온갖 궂은 일도 도맡아 해야 했던 건 두 말하면 잔소리다. 매일 밤 근무 철수를 하면서 밤하늘의 달과 별을 보며 생각했다. 빨리 이힘들고 고달픈 시간이 지나가버리면 좋겠다고... 조금만 참고 견디자고 말이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1년이란 시간이 훌쩍 지나버렸다.
이제 내 왼쪽 가슴에는 이병 계급장이 아닌 상병 계급장이 달려있고, 선임들에게 경례를 하는 것 보다 후임들에게
경례를 받는 것이 더 익숙하게 되어 버렸다. 지금에서야 느낄 수 있는 것 이지만 이병시절 나의 생각은 철없고
한없이 짧은 생각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소위 말하는 “짬밥”을 먹어갈수록 마냥 편해 질것이라는 나의 망상은
무참히 깨져버렸다. 선임의 입장이 되어갈수록, 생각하고 관심 가져야 할 것들이 왜 그렇게 많은 것인지.....
전입 온지 얼마 되지 않아 어떤 선임에게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이병이 제일 편하지. 하라는 것만 하고,
하지 말라는 것만 안하면 되잖아. 네가 지금 내 계급이 되면 분명히 느낄꺼야”그 당시에는 어이가 없었지만 지금에서야 그 선임의 말이 이해가 간다. 그때는 몰랐다.
상급자가 신경 쓰고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 이렇게 많은지 몰랐었다. 선임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만큼 애쓰고
있는지 몰랐었다. 나는 선임들의 입장만 생각해도 되지만,선임들은 윗사람, 아랫사람의 입장을 모두 다 생각해야
한다는 것은 몰랐었다. 높은 위치일수록 더 큰 책임감이 어깨를 짓누르고 있다는 것을 몰랐었다. 선임들이 보이지
않는 손으로 나를 포함한 모든 후임들을 올바르게 이끌어 주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었다.


군 생활은 이런 것이 아닐까? 어느정도 올라서야 아래가 잘 보이고, 직접 올라보지 않으면 느낄 수 없는 등산과 같은 것이 아닐까?
산 중턱쯤을 간신히 올라온 나는 이제야 깨닫는다.
기합 든 후임보다, 존경받는 선임이 되기가 훨씬 힘들다는 것을... 하지만 그렇게 되자고, 아니, 될 것이라고 다짐,
또 다짐한다. [해병대지 2009]

TAG •

  1. 그땐 몰랐어지

    일병 서보국 2008년 4월 28일, 나는 자랑스러운 해병의 아들로 태어나기위해 해병대 교육훈련단에 당당히 입소했다. 7주간의 혹독한 훈련과 미칠 듯한 그리움을 견뎌내며 오른쪽 가슴에 해병의 상징, 피와 땀이 묻은 ...
    Date2010.05.26 Views2796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Next
/ 1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