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병 서보국
2008년 4월 28일, 나는 자랑스러운 해병의 아들로 태어나기위해 해병대 교육훈련단에 당당히 입소했다. 7주간의 혹독한 훈련과 미칠 듯한 그리움을 견뎌내며 오른쪽 가슴에 해병의 상징, 피와 땀이 묻은 빨간 명찰을 달 수 있었다.
작년 7월 말, 처음 이곳에 왔을 때 그 느낌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내 눈에 보이는 것 모든 것은 다 낯설었다.
처음 보는 낯선 사람들, 낯선 건물들, 낯선 물건들, 심지어 오랜만에 해보는 축구도 낯설었을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이 낯선 환경과 하늘같이 높아 보이는 선임들 속에서 나는 움츠려들 수밖에 없었고, 긴장 속에 하루하루를 보냈다.
아니, 오히려 버텼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지도 모르겠다.
실무생활을 하기 전까지는 항상 친구와 같이 느껴지는 동기들끼리만 생활해왔었기에 선임이란 존재가 더 어렵게 다가왔던 것이었다.
차츰 새로운 생활방식에 적응해나가고, 선임들에게 많은 것들을 배워나갔다. 자칫 하나라도 실수해 선임들
에게 꾸지람을 듣는 날에는 더욱 소심해져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병이었기에 항상 제일 빨라야 했고, 항상 제일먼저 해야 했다. 물론 온갖 궂은 일도 도맡아 해야 했던 건 두 말하면 잔소리다. 매일 밤 근무 철수를 하면서 밤하늘의 달과 별을 보며 생각했다. 빨리 이힘들고 고달픈 시간이 지나가버리면 좋겠다고... 조금만 참고 견디자고 말이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1년이란 시간이 훌쩍 지나버렸다.
이제 내 왼쪽 가슴에는 이병 계급장이 아닌 상병 계급장이 달려있고, 선임들에게 경례를 하는 것 보다 후임들에게
경례를 받는 것이 더 익숙하게 되어 버렸다. 지금에서야 느낄 수 있는 것 이지만 이병시절 나의 생각은 철없고
한없이 짧은 생각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소위 말하는 “짬밥”을 먹어갈수록 마냥 편해 질것이라는 나의 망상은
무참히 깨져버렸다. 선임의 입장이 되어갈수록, 생각하고 관심 가져야 할 것들이 왜 그렇게 많은 것인지.....
전입 온지 얼마 되지 않아 어떤 선임에게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이병이 제일 편하지. 하라는 것만 하고,
하지 말라는 것만 안하면 되잖아. 네가 지금 내 계급이 되면 분명히 느낄꺼야”그 당시에는 어이가 없었지만 지금에서야 그 선임의 말이 이해가 간다. 그때는 몰랐다.
상급자가 신경 쓰고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 이렇게 많은지 몰랐었다. 선임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만큼 애쓰고
있는지 몰랐었다. 나는 선임들의 입장만 생각해도 되지만,선임들은 윗사람, 아랫사람의 입장을 모두 다 생각해야
한다는 것은 몰랐었다. 높은 위치일수록 더 큰 책임감이 어깨를 짓누르고 있다는 것을 몰랐었다. 선임들이 보이지
않는 손으로 나를 포함한 모든 후임들을 올바르게 이끌어 주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었다.
군 생활은 이런 것이 아닐까? 어느정도 올라서야 아래가 잘 보이고, 직접 올라보지 않으면 느낄 수 없는 등산과 같은 것이 아닐까?
산 중턱쯤을 간신히 올라온 나는 이제야 깨닫는다.
기합 든 후임보다, 존경받는 선임이 되기가 훨씬 힘들다는 것을... 하지만 그렇게 되자고, 아니, 될 것이라고 다짐,
또 다짐한다. [해병대지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