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일 대위·법사
“위국헌신! 우리는 하나! 해병! 해병!”
해병대교육단에서 주말 종교활동의 시작과 동시에 훈련병들과 북을 치면서 외치던 구호다. 지금도 연말이 되고 첫눈 오는 날이면 교육단 단상, 해병들의 팔각모에 살포시 쌓인 눈, 해병들과 천자봉을 오르던 생각에 젖어들어 가슴속 깊이 아련해진다.
‘정예해병 육성’이라는 기치 아래 반드시 승리하는 자랑스러운 전통에 대한 자부심과 책임의식을 가지고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한때를 혹독한 훈련으로 해병의 긍지를 다지는 이들이 바로 해병대교육단의 훈련병들이다. 같이 웃고 울던 장교 후보생과 부사관 후보생 그리고 해병들…. 기수는 1075부터 1095까지 20기수나 됐고, 그들 중엔 단기복무자, 사업가, 개그맨,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의 김탁구도 있었다. 또 인생의 사연도, 재능도 많은 해병이 이곳에서 진정한 해병으로 거듭났다.
그중 한 해병이 지금까지도 유독 생각난다. 키는 180㎝가 넘고 외모도 준수한 해병이었다. 열심히 종교활동을 하며, 다른 해병들을 위한 간식 봉사활동도 솔선수범했다. 그러다 그 해병과 자연스럽게 친하게 됐고, 대화도 많이 나눴다. 그런데 해병 수료식 전, 그 해병은 나를 찾아와 뜻밖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 해병의 어머니가 홀로 산에 들어가 비구니로 출가해서 어릴 때부터 아버지와 할머니 손에서 쭉 자라왔고, 해병이 된 지금까지 어머니 얼굴을 볼 수 없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어머니에 대한 원망을 입대 전까지 마음에 품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해병대에 자원입대하게 됐으며, 6주간의 고된 훈련을 받으면서 어머니를 많이 떠올렸다고 했다.
특히 어머니에 대한 원망이 그리움으로 차츰 바뀌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를 나눈 지 얼마 뒤, 그 해병은 나에게 어머니가 출가해 계신 곳을 알아봐 주시고, 계시는 곳을 알게 되면 꼭 수료식 날 자신의 늠름한 모습을 보여 드리고 싶다는 편지를 전해달라는 부탁을 해왔다. 나는 그 해병이 어머니를 얼마나 그리워하는지 알았기 때문에, 그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그 편지를 어머니에게 전해줄 수가 없었다. 비구니 사찰과 암자들이 많아 수소문으로는 거처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대신 내가 그 해병의 수료식에 참석해 위로하고 격려했지만, 그 해병의 어머니도 어디에선가 훌륭한 해병으로 성장한 아들의 소식을 들으면 분명히 대견해 하셨을 것이다. 아니 뭇 해병들의 가족이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내 인생의 화양연화(花樣年華), 한 기수에 1000명 이상의 훈련병을 받으면서 1000명분 인생의 시간이 나에게로 온다는 사명으로 교육단 생활을 보냈다. 당시 훈련병들은 텔레비전에 나오거나 비행기 조종사로 출연하고 견습할 만큼 훌륭한 지성인들로서 사회 전반에서 생활해 가고 있다. 지금도 해병대교육단에서 피와 땀, 눈물을 흘리며 함께 생활하고 근무했던 해병들과 그곳에서의 생활이 가끔 그리워지고, 또 내가 그들과 인생의 황금기 시절 해병 군종장교로서 그들을 위문하고 위로할 수 있었다는 것에 감사하고 또 소중하게 여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