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주현 일병
해병대1사단
행군은 힘들다. 군대에서 행군은 더욱 힘들다. 산악행군은 더더욱 힘들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한여름 산악행군은 더더욱 힘들다. 그러나 우리는 7월의 한여름에 전우들과 함께 100㎞ 산악무장행군을 했다.
7월 18일 새벽. 100㎞ 산악무장행군의 시작을 알리듯 군가가 내 잠을 깨웠다. 우리는 신속히 환복하고 완전무장을 꾸려 연병장에 집결했다. 모두가 힘들 것이라며 만류했던 100㎞ 산악무장행군의 첫걸음을 내디뎠다. 첫날부터 찌는 듯한 무더위와 갈증은 우리를 힘들게 했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오르막길과 내리막길, 정말 비 오듯 쏟아지는 땀방울은 우리를 지치게 했다. 그러나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와 함께했던 대대장님의 말씀이 한 걸음을 더 내딛게 했다. “해병대는 국군이 숨겨놓은 날카로운 비수(匕首)다. 우리는 지금 그 비수를 더욱 날카롭게 다듬는 중이며, 적은 바로 그 날카로움을 두려워한다”라는 대대장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산악무장행군의 명확한 목표의식을 갖게 했고, 눈앞에 펼쳐진 어떤 두려움도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바꾸어 주었다.
찌는 더위와 높은 습도, 깎아내린 듯 가파른 산길은 매 순간 숨통을 옥죄어 왔다. 하지만 단단한 철을 제련하기 위해서는 담금질이 필요하듯 우리는 한낮 뙤약볕에 달궈지고 서늘한 바람에 식혀지며 가파른 바윗길을 워커로 두드리며 전진했다. 턱 끝에 땀방울이 맺힐수록 우리는 칼날처럼 예리하게 단련돼 가고 있었다. 그러한 우리의 투지를 응원하기 위해 연대에선 숙영지마다 제독소로 샤워시설을 지원해주며 지친 몸을 식혀주었고, 상급부대와 인접 대대에서는 시원한 화채와 아이스크림 등 위문품을 보내주었다.
고된 시간이었다. 그러나 그 고된 시간이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6·25전쟁과 베트남전에서 온갖 악조건을 극복하고 승리의 역사를 만들었던 해병대 선배님들을 더욱 존경하게 됐다. 힘들고 지쳐도 선·후임의 무장을 나눠 들고, 목마른 전우를 위해 자신의 물을 나눠주고, 서로를 격려하며 웃어주는 전우애를 느꼈다. 혼자가 아니라 함께였다.
절대 오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산악무장행군의 마지막 날. 군악대의 환영 연주와 사단장님을 비롯한 사단·연대 간부님들의 박수는 우리의 발걸음을 더욱 당당하게 했다. 모두가 안 된다고 했을 때 우리는 해냈다. 힘든 순간에도 굴하지 않고 서로 의지하며 한계를 뛰어넘었다. 나를 비롯한 우리 대대 장병들의 도전이 대한민국 국방의 큰 한 걸음이 됐음을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