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국군의 명예를 회복해야 한다. 신원배(예비역 해병 소장, 대한민국재향군인회 사무총장)
우리 모두는 적을 적이라고 부르지도 못하고, 도발에 대해 즉각적인 응징도 하지 못하는 무기력한 군대를 만드는데 일조하지 않았는가.
2010년 11월 23일 북한군이 연평도에 무차별적인 기습포격을 자행함으로써 해병 2명이 전사하고 민간인 2명이 숨졌으며, 10여명이 부상을 입는 도발사건이 발생했다. 지난 3월 26일 천안함 폭침 사건으로 46명의 국군장병이 전사한데 이어 또다시 북한의 대남무력도발로 다수의 인명이 희생된 것이다.
국민들은 천안함 폭침사건과 연평도 무력도발을 통해 북한공산집단의 잔악무도함에 울분을 토하는 한편, 군의 무기력한 대응에 실망감을 금치 못하고 있다.
과장된 측면도 있겠지만 연평도 포격도발 이후 언론에 비친 군 간부들의 모습은 참담할 정도이다. 국토방위 수호와 전술전기 연마 등 당면한 과제는 외면한 채 정치권을 기웃거리거나, 진급과 보직을 위해서라면 물불도 가리지 않는 초라한 모습으로 비추어 지고 있다.
심지어는 “군의 정신력이 완전히 무너졌다.”, “군 장교들은 나라를 지키는 전사(戰士)가 아니라 행정화 또는 관료화집단으로 변질된 한심한 지경에 이르렀다.”는 극단적인 평가까지 받고 있다.
이러한 질타에 대해 대다수의 군 간부들은 극심한 모멸감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과거 정권이 잘못된 방향으로 강행 추진한 군 운용에 대해 고언(苦言) 또는 항변을 하기는커녕, 오히려 비위를 맞추는데 급급했던 대다수 군 간부들에 대한 뿌리 깊은 배신감이 깔려 있다는 사실을 잘 알아야 한다.
우리 군의 간부들이 이렇듯 초라한 모습으로 변모한 이유는 무엇인가? 이 점에 대해 군의 수뇌부는 진지한 자세로 뼈를 깎는 성찰을 해야 할 것이다.
북한의 대남무력도발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북한은 휴전 이후 지금까지 청와대 기습, 8·18도끼만행, 아웅산 테러, KAL858기 폭파, 남침용 땅굴 굴착 등 무려 2,800여 회의 무수한 무력도발을 감행해 왔다. 또한 분단 이후 지금까지 북한의 도발로 인해 16만 5천여 명의 국군장병들이 목숨을 잃었다.
우리 군은 이렇듯 호전적인 북한군과 대치하고 있다. 따라서 북한공산집단의 도발책동을 분쇄할 수 있는 국방대비태세 완비와 함께, 만약 도발이 있을 경우 즉각적이고 단호하게 응징을 할 수 있는 만반의 대책이 강구되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 군의 단호한 응징 조치는 1999년 6월에 발발한 제1차 연평해전까지였다고 생각한다. 당시 우리 해군은 북한군의 선제도발에 즉각 대응했고, 전투가 발발한지 불과 14분 만에 북한 어뢰정 1척을 침몰시키고 중형경비정 1척을 반침몰시켰으며, 4척을 대파했다.
이러한 결과가 나온 것은 그 때까지만 해도 군 수뇌부들의 응징 의지가 확고했기 때문이다. 그 당시의 우리 군은 “남북관계가 어떻게 변하든 우리 군의 임무는 절대 변할 수 없다.”는 확고한 의지와 자세를 견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북한군 도발에 대한 군의 응징은 여기까지였다. 2002년 6월에 발발한 제2차 연평해전과 2009년 11월에 발발한 대청해전은 우리 군이 패했다고는 할 수가 없지만 단호한 응징과 보복이라는 차원에서는 대단히 미흡했다.
제2차 연평해전에서는 수세적인 밀어내기식 전술로 대응하다가 북한군의 선제공격으로 참수리 고속정 1척이 침몰당하고 6명이 전사했다. 대청해전에서는 북한 경비정을 침몰시킬 수 있는 상황에서 곱게(?) 돌려보냈다. 당시 브리핑에 나선 군 고위 장성은 충분히 격침시킬 수 있었지만 남북관계를 고려해 공격을 자제했다고 자랑스레 말했다. 이렇듯 피동적이고도 무기력한 대응자세는 금년에 발생한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러한 對應자세는 국민의 정부가 뿌린 ‘불량씨앗’이 원인이다. 국민의 정부는 1999년 6월 15일 남북정상회담 이후 “이제 한반도에서 전쟁은 없다.”라고 공언했다. 심지어 “NLL에서 밀리지 말라, 먼저 쏘지 말라, 확전하지 말라.”로 요약되는 소위 ‘3대 말라’의 해괴한 교전규칙을 하달함으로써 우리 장병들을 총알받이로 내몰았다. 이 교전규칙은 참여정부까지 이어졌다.
이 뿐만이 아니다. 더 이상 북한에 대한 적대적인 자세를 취하지 못하도록 군 수뇌부들에게 무언의 압력을 가했으며, 그 본보기로 제1차 연평해전에서 대승을 거둔 지휘관의 군복을 벗겼다. 이러한 ‘햇볕정책’의 여파로 북한군은 싸워 이겨야 할 주적이 아니라 오히려 눈치를 봐야 할 대상으로 바뀌기 시작했고, 장병들의 적개심도 희박해지기 시작했다. 그 결과가 제2차 연평해전에서 고속정 침몰과 6명의 해군장병 전사로 나타난 것이다.
적군의 도발로 함정이 침몰되고 다수의 장병들이 전사한 상황에서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국군통수권자라면 당연히 분노하고, 단호한 응징과 보복을 병행했어야 했다. 그러나 당시 정권은 영해를 지키려다 전사한 장병들의 주검을 철저히 외면하고 무시했다. 국군통수권자는 월드컵 경기에 참관하여 활짝 웃으며 박수를 치고, 군 수뇌부들은 장병들의 영결식에 참석조차 하지 않았다.
제2차 연평해전에서 전사한 故 한상국 중사의 부인 김종선씨는 전사자를 홀대하고 유가족을 냉대하는 당국의 행태에 울분을 참지 못했다. 결국 김씨는 남편이 목숨 바쳐 지킨 조국을 등지고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뒤를 이은 참여정부는 한술 더 떴다. 그나마 명맥만 유지하던 ‘주적개념’도 “시대에 맞지 않는다.”는 궤변으로 삭제해 버리고, 주적개념에 대한 교육도 하지 못하도록 했다.
그리고 국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한미연합사 해체와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추진을 강행했고, 병력 대폭 감축과 복무기간 단축을 골자로 하는 ‘국방개혁2020’을 추진함으로써 국군의 무장해제와 국방력 약화에 앞장섰다.
이처럼 지난 정권은 한반도공산화를 최종목적으로 하는 북한의 대남적화전략전술을 간과한 채 ‘햇볕정책’, ‘남북화해협력정책’으로 불리는 친북일변도의 대북정책으로 일관하면서 군의 손발을 묶고 장병들의 정신무장을 와해시켰다.
북한으로 하여금 대남적화전략전술을 실천에 옮기도록 부추기는 일련의 정책들이 입안되고 결정되던 그 때, 그 시점에서 대부분의 군 간부들은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았다.
북한은 노동당규약에 명시된 한반도 공산화를 달성하기 위해 약20만 명에 달하는 특수전부대를 비롯하여 120만 명에 가까운 병력과 핵을 비롯한 생화학무기, 각종 미사일 등 압도적인 비대칭전력으로 무장하고 있다. 그리고 지상군의 70%, 해군의 60%, 공군의 40% 이상을 각각 평양과 원산을 연하는 선 이남에 전진 배치하고 있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으로서 호시탐탐 도발의 기회만을 노리고 있는 북한집단과 대치하고 있는 우리의 안보현실을 고려한다면 만반의 국방대비태세 구축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이를 위해 군 간부들은 국방정책이 올바르게 수립되도록 노심초사해야 한다. 또한 국방정책이 잘못 추진될 경우에는 용기 있게 소신을 밝히고, 시정조치를 강구해야 한다.
미국의 경우 싱글러브 장군은 주한미군 완전 철수를 공약으로 내건 카터 대통령에게 철수반대를 공개적으로 주장했다. 그러나 우리 군의 간부들은 이적행위에 가까운 국방정책이 결코 실행에 옮겨져서는 안 된다고 건의하거나 공개적으로 소신을 밝히는 등 무인(武人)이 견지해야 할 올바른 기개를 보여 주지 못했다.
군인의 충성대상은 국가이지 정권이 아니다. 따라서 사리사욕과 개인의 영달을 위해서 조국과 군 조직을 외면하는 유형의 군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모름지기 군인은 조국수호의 마지막 보루라는 자부심을 바탕으로 확고한 국가관과 사생관, 군인정신으로 무장되어야 한다.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則生 必生則死)’의 정신으로 왜적과 맞서 싸우던 충무공 이순신장군의 얼을 이어 받아 국가와 민족을 위해 초개와 같이 목숨을 버릴 줄 아는 의연한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스스로를 되돌아보자. 우리 모두는 敵을 敵이라고 부르지도 못하고, 도발에 대해 즉각적인 응징도 하지 못하는 무기력한 군대를 만드는데 일조하지 않았는가. 제1차 연평해전에서 적을 격파하고 전투를 승리로 이끈 용맹한 장군과, 적개심 교육을 해서는 안 된다는 정권나팔수의 궤변에 강력히 반박한 용기 있는 장군이 부당한 압력으로 군복을 벗게 되었을 때 분노하면서 강력히 항변한 적이 있었는가. 전작권 전환과 한미연합사 해체, 국방개혁2020이 지극히 잘못된 국방정책임을 알면서도 신상에 불이익을 받지나 않을까 두려워 소신을 제대로 밝히지 못하거나, 오히려 자신의 영달을 위해 악용한 사실은 없었는가. 적을 격멸할 수 있는 강력한 군대건설에 헌신하기보다 좋은 보직, 좋은 자리를 찾는데 혈안이 된 적은 없었는가를 진지하게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군의 존재목적은 평상시 전쟁억제와 유사시 싸워 이기는 전쟁승리에 있다. 군의 장수(將帥)는 이를 달성하는 핵심이며 주체이다. 따라서 대한민국의 군 간부들은 국군장병으로 하여금 적과 싸워 반드시 이기는 최정예 전투요원으로 육성할 책임이 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간부들 스스로가 변해야 한다.
정치적이고 관료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군 본연의 자세로 돌아와야 한다. 국군의 임무와 사명에 충실하고, 국토방위라는 숭고한 사명감에 젖어 있어야 한다. 나아가 장병과 생사고락을 같이하는 임전무퇴의 전형적인 참군인이 되어야 한다.
장병들로 하여금 확고한 대적관과 필승의 신념으로 무장시키고, 실전 같은 교육훈련으로 전투프로로 거듭나게 해야 한다. 이를 위해 군 간부들의 전투복은 항상 땀에 절어 있어야 하고, 전투화는 흙투성이가 되어 있어야 한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북한의 도발책동을 분쇄하고, 나아가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는 완벽한 국방태세 완비에 헌신하겠다는 굳은 결의를 정신적 지주로 삼아야 한다.
최근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무력도발로 실추된 대한민국 국군의 명예가 하루빨리 회복될 수 있도록 군 간부 모두가 심기일전의 정신자세로 재무장하고, 완벽한 국방을 위해 혼신의 역량을 경주해 주기를 기대한다.(KONAS)
신원배(예비역 해병 소장, 대한민국재향군인회 사무총장)
우리 모두는 적을 적이라고 부르지도 못하고, 도발에 대해 즉각적인 응징도 하지 못하는 무기력한 군대를 만드는데 일조하지 않았는가.
2010년 11월 23일 북한군이 연평도에 무차별적인 기습포격을 자행함으로써 해병 2명이 전사하고 민간인 2명이 숨졌으며, 10여명이 부상을 입는 도발사건이 발생했다. 지난 3월 26일 천안함 폭침 사건으로 46명의 국군장병이 전사한데 이어 또다시 북한의 대남무력도발로 다수의 인명이 희생된 것이다.
국민들은 천안함 폭침사건과 연평도 무력도발을 통해 북한공산집단의 잔악무도함에 울분을 토하는 한편, 군의 무기력한 대응에 실망감을 금치 못하고 있다.
과장된 측면도 있겠지만 연평도 포격도발 이후 언론에 비친 군 간부들의 모습은 참담할 정도이다. 국토방위 수호와 전술전기 연마 등 당면한 과제는 외면한 채 정치권을 기웃거리거나, 진급과 보직을 위해서라면 물불도 가리지 않는 초라한 모습으로 비추어 지고 있다.
심지어는 “군의 정신력이 완전히 무너졌다.”, “군 장교들은 나라를 지키는 전사(戰士)가 아니라 행정화 또는 관료화집단으로 변질된 한심한 지경에 이르렀다.”는 극단적인 평가까지 받고 있다.
이러한 질타에 대해 대다수의 군 간부들은 극심한 모멸감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과거 정권이 잘못된 방향으로 강행 추진한 군 운용에 대해 고언(苦言) 또는 항변을 하기는커녕, 오히려 비위를 맞추는데 급급했던 대다수 군 간부들에 대한 뿌리 깊은 배신감이 깔려 있다는 사실을 잘 알아야 한다.
우리 군의 간부들이 이렇듯 초라한 모습으로 변모한 이유는 무엇인가? 이 점에 대해 군의 수뇌부는 진지한 자세로 뼈를 깎는 성찰을 해야 할 것이다.
북한의 대남무력도발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북한은 휴전 이후 지금까지 청와대 기습, 8·18도끼만행, 아웅산 테러, KAL858기 폭파, 남침용 땅굴 굴착 등 무려 2,800여 회의 무수한 무력도발을 감행해 왔다. 또한 분단 이후 지금까지 북한의 도발로 인해 16만 5천여 명의 국군장병들이 목숨을 잃었다.
우리 군은 이렇듯 호전적인 북한군과 대치하고 있다. 따라서 북한공산집단의 도발책동을 분쇄할 수 있는 국방대비태세 완비와 함께, 만약 도발이 있을 경우 즉각적이고 단호하게 응징을 할 수 있는 만반의 대책이 강구되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 군의 단호한 응징 조치는 1999년 6월에 발발한 제1차 연평해전까지였다고 생각한다. 당시 우리 해군은 북한군의 선제도발에 즉각 대응했고, 전투가 발발한지 불과 14분 만에 북한 어뢰정 1척을 침몰시키고 중형경비정 1척을 반침몰시켰으며, 4척을 대파했다.
이러한 결과가 나온 것은 그 때까지만 해도 군 수뇌부들의 응징 의지가 확고했기 때문이다. 그 당시의 우리 군은 “남북관계가 어떻게 변하든 우리 군의 임무는 절대 변할 수 없다.”는 확고한 의지와 자세를 견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북한군 도발에 대한 군의 응징은 여기까지였다. 2002년 6월에 발발한 제2차 연평해전과 2009년 11월에 발발한 대청해전은 우리 군이 패했다고는 할 수가 없지만 단호한 응징과 보복이라는 차원에서는 대단히 미흡했다.
제2차 연평해전에서는 수세적인 밀어내기식 전술로 대응하다가 북한군의 선제공격으로 참수리 고속정 1척이 침몰당하고 6명이 전사했다. 대청해전에서는 북한 경비정을 침몰시킬 수 있는 상황에서 곱게(?) 돌려보냈다. 당시 브리핑에 나선 군 고위 장성은 충분히 격침시킬 수 있었지만 남북관계를 고려해 공격을 자제했다고 자랑스레 말했다. 이렇듯 피동적이고도 무기력한 대응자세는 금년에 발생한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러한 對應자세는 국민의 정부가 뿌린 ‘불량씨앗’이 원인이다. 국민의 정부는 1999년 6월 15일 남북정상회담 이후 “이제 한반도에서 전쟁은 없다.”라고 공언했다. 심지어 “NLL에서 밀리지 말라, 먼저 쏘지 말라, 확전하지 말라.”로 요약되는 소위 ‘3대 말라’의 해괴한 교전규칙을 하달함으로써 우리 장병들을 총알받이로 내몰았다. 이 교전규칙은 참여정부까지 이어졌다.
이 뿐만이 아니다. 더 이상 북한에 대한 적대적인 자세를 취하지 못하도록 군 수뇌부들에게 무언의 압력을 가했으며, 그 본보기로 제1차 연평해전에서 대승을 거둔 지휘관의 군복을 벗겼다. 이러한 ‘햇볕정책’의 여파로 북한군은 싸워 이겨야 할 주적이 아니라 오히려 눈치를 봐야 할 대상으로 바뀌기 시작했고, 장병들의 적개심도 희박해지기 시작했다. 그 결과가 제2차 연평해전에서 고속정 침몰과 6명의 해군장병 전사로 나타난 것이다.
적군의 도발로 함정이 침몰되고 다수의 장병들이 전사한 상황에서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국군통수권자라면 당연히 분노하고, 단호한 응징과 보복을 병행했어야 했다. 그러나 당시 정권은 영해를 지키려다 전사한 장병들의 주검을 철저히 외면하고 무시했다. 국군통수권자는 월드컵 경기에 참관하여 활짝 웃으며 박수를 치고, 군 수뇌부들은 장병들의 영결식에 참석조차 하지 않았다.
제2차 연평해전에서 전사한 故 한상국 중사의 부인 김종선씨는 전사자를 홀대하고 유가족을 냉대하는 당국의 행태에 울분을 참지 못했다. 결국 김씨는 남편이 목숨 바쳐 지킨 조국을 등지고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뒤를 이은 참여정부는 한술 더 떴다. 그나마 명맥만 유지하던 ‘주적개념’도 “시대에 맞지 않는다.”는 궤변으로 삭제해 버리고, 주적개념에 대한 교육도 하지 못하도록 했다.
그리고 국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한미연합사 해체와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추진을 강행했고, 병력 대폭 감축과 복무기간 단축을 골자로 하는 ‘국방개혁2020’을 추진함으로써 국군의 무장해제와 국방력 약화에 앞장섰다.
이처럼 지난 정권은 한반도공산화를 최종목적으로 하는 북한의 대남적화전략전술을 간과한 채 ‘햇볕정책’, ‘남북화해협력정책’으로 불리는 친북일변도의 대북정책으로 일관하면서 군의 손발을 묶고 장병들의 정신무장을 와해시켰다.
북한으로 하여금 대남적화전략전술을 실천에 옮기도록 부추기는 일련의 정책들이 입안되고 결정되던 그 때, 그 시점에서 대부분의 군 간부들은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았다.
북한은 노동당규약에 명시된 한반도 공산화를 달성하기 위해 약20만 명에 달하는 특수전부대를 비롯하여 120만 명에 가까운 병력과 핵을 비롯한 생화학무기, 각종 미사일 등 압도적인 비대칭전력으로 무장하고 있다. 그리고 지상군의 70%, 해군의 60%, 공군의 40% 이상을 각각 평양과 원산을 연하는 선 이남에 전진 배치하고 있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으로서 호시탐탐 도발의 기회만을 노리고 있는 북한집단과 대치하고 있는 우리의 안보현실을 고려한다면 만반의 국방대비태세 구축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이를 위해 군 간부들은 국방정책이 올바르게 수립되도록 노심초사해야 한다. 또한 국방정책이 잘못 추진될 경우에는 용기 있게 소신을 밝히고, 시정조치를 강구해야 한다.
미국의 경우 싱글러브 장군은 주한미군 완전 철수를 공약으로 내건 카터 대통령에게 철수반대를 공개적으로 주장했다. 그러나 우리 군의 간부들은 이적행위에 가까운 국방정책이 결코 실행에 옮겨져서는 안 된다고 건의하거나 공개적으로 소신을 밝히는 등 무인(武人)이 견지해야 할 올바른 기개를 보여 주지 못했다.
군인의 충성대상은 국가이지 정권이 아니다. 따라서 사리사욕과 개인의 영달을 위해서 조국과 군 조직을 외면하는 유형의 군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모름지기 군인은 조국수호의 마지막 보루라는 자부심을 바탕으로 확고한 국가관과 사생관, 군인정신으로 무장되어야 한다.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則生 必生則死)’의 정신으로 왜적과 맞서 싸우던 충무공 이순신장군의 얼을 이어 받아 국가와 민족을 위해 초개와 같이 목숨을 버릴 줄 아는 의연한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스스로를 되돌아보자. 우리 모두는 敵을 敵이라고 부르지도 못하고, 도발에 대해 즉각적인 응징도 하지 못하는 무기력한 군대를 만드는데 일조하지 않았는가. 제1차 연평해전에서 적을 격파하고 전투를 승리로 이끈 용맹한 장군과, 적개심 교육을 해서는 안 된다는 정권나팔수의 궤변에 강력히 반박한 용기 있는 장군이 부당한 압력으로 군복을 벗게 되었을 때 분노하면서 강력히 항변한 적이 있었는가. 전작권 전환과 한미연합사 해체, 국방개혁2020이 지극히 잘못된 국방정책임을 알면서도 신상에 불이익을 받지나 않을까 두려워 소신을 제대로 밝히지 못하거나, 오히려 자신의 영달을 위해 악용한 사실은 없었는가. 적을 격멸할 수 있는 강력한 군대건설에 헌신하기보다 좋은 보직, 좋은 자리를 찾는데 혈안이 된 적은 없었는가를 진지하게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군의 존재목적은 평상시 전쟁억제와 유사시 싸워 이기는 전쟁승리에 있다. 군의 장수(將帥)는 이를 달성하는 핵심이며 주체이다. 따라서 대한민국의 군 간부들은 국군장병으로 하여금 적과 싸워 반드시 이기는 최정예 전투요원으로 육성할 책임이 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간부들 스스로가 변해야 한다.
정치적이고 관료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군 본연의 자세로 돌아와야 한다. 국군의 임무와 사명에 충실하고, 국토방위라는 숭고한 사명감에 젖어 있어야 한다. 나아가 장병과 생사고락을 같이하는 임전무퇴의 전형적인 참군인이 되어야 한다.
장병들로 하여금 확고한 대적관과 필승의 신념으로 무장시키고, 실전 같은 교육훈련으로 전투프로로 거듭나게 해야 한다. 이를 위해 군 간부들의 전투복은 항상 땀에 절어 있어야 하고, 전투화는 흙투성이가 되어 있어야 한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북한의 도발책동을 분쇄하고, 나아가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는 완벽한 국방태세 완비에 헌신하겠다는 굳은 결의를 정신적 지주로 삼아야 한다.
최근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무력도발로 실추된 대한민국 국군의 명예가 하루빨리 회복될 수 있도록 군 간부 모두가 심기일전의 정신자세로 재무장하고, 완벽한 국방을 위해 혼신의 역량을 경주해 주기를 기대한다.(KONAS)
신원배(예비역 해병 소장, 대한민국재향군인회 사무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