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찬.jpg

이 승 찬 일병 해병대1사단



“거꾸로 매달아도 국방부 시계는 간다”는 말이 있다. ‘힘들거나 즐겁거나 시간은 흐르고 전역은 다가온다’는 뜻이다. 몇몇 군인이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시간에 대해 “어떻게든 지나간다”는 수동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이 안타깝다. 군대란 시간의 주권을 되찾게 해주는 소중한 경험이 돼야 한다.

신병교육대에서 시계를 반납하는 순간부터 시간은 숫자라는 그림자를 벗어버리고, 진솔한 모습으로 우리 앞에 던져진다. 소셜 커뮤니케이션, 의미 없는 술자리, 관심조차 없던 분야의 스펙 관리 등 세상의 요구로 인해 빼앗겼던 시간은 군인으로 첫발을 내딛는 순간 나에게 온전하게 환원된다. 군대는 이처럼 그동안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잃어버린 시간을 환급해주는 공간이다.

나아가 군대에서 시간은 모두에게 평등하게 다가온다. 어떤 학교에 다녔고, 어떤 직장을 가졌고, 어떤 부모 밑에서 자란 것과 무관하게 군화를 신는 순간 우리는 다 같은 해병일 뿐이다. 부족한 경제적 상황을 만회하기 위해 남는 시간에 아르바이트하던 친구도, 학업에 치여 진정 원하던 공부를 못 하던 친구도 여기에서는 개인 시간을 활용해 자기계발에 몰두할 수 있다. 모두가 시간 활용에서 동등한 기회를 부여받는다.

그러나 자유롭게 주어진 시간이 누구에게나 기회는 아니다. 자유가 책임을 수반하듯이 군인에게 주어진 시간은 짐으로 다가올 수 있다. 우리는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 주말에는 무엇으로 채워갈지 항상 고민할 필요가 있다. 해답을 찾지 못한 장병들에게 시간이란 더 이상 기회가 아닌 권태라는 무력감 속에 빠지게 되는 고통일 뿐이다. 하루하루를 채워나가는 것이 아니라 비워나가야 하는, 주권이 상실된 수동적인 날들의 연속인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루를 보내야 하는가?’라는 물음 앞에서 어떻게 시간의 주권을 회복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시간에 대한 인식 변화가 해답을 제공할 것이다. 군인들은 시간을 객관화해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시간이 영원하다고 여기며 하루란 그저 전역 날을 위해 무수히 지워나가야 하는 달력 위의 날짜에 불과하다고 여긴다.

시간을 죽이기 위해 시청했던 텔레비전, 좋아하지 않는 운동을 하며 흘려보냈던 순간들은 아무런 의미도 없이 달력 위 X 표시에 필요했던 잉크보다도 가볍게 휘발돼 사라진다.

우리는 시간을 내면화해야 한다. 지금이라는 순간이 무의미한 점들의 연속이 아니라 내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선이라는 걸 깨달아야 한다. 개인 시간에 독서하겠다는 선택도, 낮잠을 청하거나 게임을 하며 휴식을 취하겠다는 결정도 모두 과거의 부족함을 채우기 위한 노력이어야 하며 미래를 위한 투자여야 한다.

독서를 통해 궁금증을 해결함과 동시에 새로운 물음을 던지며, 휴식을 통해 피로를 해소하고 내일을 위한 동력을 충전하는 것이다. ‘나’라는 렌즈를 통해 바라본 시간은 무의미하게 잊혀 버리는 것이 아니라 삶을 창조해가는 과정이다.

군대만큼 내 삶에 질문하고 시간에 대한 주권을 되찾는 완벽한 환경은 없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의 적극적인 의지가 필수적으로 수반된다. 누가 그랬듯이 거꾸로 매달아도 국방부 시계는 흘러갈 것이다.

흘러가는 시간을 잡을 수 있는 열쇠는 자신에게 있다. 삶을 바꿀 수 있는 약 2년이라는 시간이 헛되지 않도록 나에게 주어진 오늘이라는 시간에 대한 주권자가 되어 살아보자.<국방일보 



  1. 국방일보 [김정학 기고] 멀리 가려면 같이 가라

    김정학 해병대 교육훈련단장·준장 사막이나 정글을 혼자 헤쳐나가는 것은 무모한 짓이다. 외로움과 두려움, 맹수의 습격 등을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프리카 속담 중에 ‘멀리 가려면 같이 가라’...
    Date2018.11.26 Views826
    Read More
  2. 세상과 소통하는 국방홍보원

    유 원 열 해병중사 국방정신전력원 정훈중급반 지난달 23일, 평소보다 1시간 정도 일찍 일어났다. 여느 때처럼 전투복을 차려입고 나서는 길, 날씨는 쌀쌀했지만, 마음은 설레었다. 이날 나를 포함해 국방정신전력원 ...
    Date2018.11.11 Views861
    Read More
  3. [김명환 종교와삶] 如如, 변함이 없는 마음

    김명환 해병대1사단 군종실장·법사·중령 문명이 발전하고 삶은 풍요로워졌으며 진보하는 기술만큼 사람들 몸은 편안해졌지만, 마음은 그만큼 더 행복해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앞으로 세상도 기술의 핵심은 사람들의 ...
    Date2018.10.30 Views770
    Read More
  4. 꿈과 희망이 있는 군 생활

    이 승 찬 일병 해병대1사단 “거꾸로 매달아도 국방부 시계는 간다”는 말이 있다. ‘힘들거나 즐겁거나 시간은 흐르고 전역은 다가온다’는 뜻이다. 몇몇 군인이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시간에 대해 “어떻게든 지나간다”...
    Date2018.10.29 Views723
    Read More
  5. 기다리기만 하던 나를 뛰게 한 버킷리스트

    장 병 헌 병장 해병대2사단 짜빈동대대 어느덧 전역을 두 달 남짓 남겨둔 병장이 됐다. 그동안 나는 크고 거창한 것보다는 병영생활 중에 실천할 수 있고, 구체적이며, 실현 가능한 것들로 나만의 버킷 리스트를 만들...
    Date2018.09.05 Views989
    Read More
  6. '필승 DNA'에 '혁신' 이식 더 막강해진 '무적 해병'

    창설 69주년을 맞아 국가전략기동부대 대한민국 해병대가 달라지고 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해병대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다. 1949년 4월 15일 진해 덕산비행장에서 창설된 해병대는 6·25 전쟁 당시 수많은...
    Date2018.05.16 Views1003
    Read More
  7. 해병대의 초심찾기 ‘참해병 혁신운동’

    조순근 대령 해병대1사단 행정부사단장 ‘작심삼일(作心三日)’이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결심한 마음이 사흘을 가지 못하고 금방 풀어진다는 뜻이다. 그래서 결심했던 일이 결실을 보려면 지속해서 마음을 바로잡는 것...
    Date2018.03.22 Views1607
    Read More
  8. 백령도와 해병대가 성장시킨 나

    김 태 환 (예)해병중위 전 해병대6여단 정훈참모실 ‘나도 국민이 힘들어할 때 도와주고 부하들보다 궂은일에 앞장서는 멋진 해병대 장교가 될 거야.’ 제주도에서 나고 자란 나는 어려서부터 해병대인을 꿈꿨다. 태풍 ...
    Date2018.03.08 Views938
    Read More
  9. 신화를 남긴 해병대 전통을 계승하자

    김 재 현 중위(진) 해병대2사단 선봉연대 1967년 2월 15일 새벽, 짙은 안개가 끼고 비가 내리는 베트남의 쾅나이성 손틴군 짜빈동 인근의 야트막한 30m 고지. 청룡부대 11중대는 2개 연대 규모의 월맹 정규군과 3시간...
    Date2018.02.25 Views849
    Read More
  10. 국방개혁 완성을 위한 제언

    김 종 화 소령 해병대2사단 작전참모실 작전계획과 과거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맹자는 “천시는 지리만 못하고, 지리는 인화만 못하다(天時不如地利, 地利不如人和)”라고 해 인적자원을 전쟁의 결정적 승리요인으로 보...
    Date2017.12.18 Views942
    Read More
  11. 꿈과 희망을 통한 전투력의 배가

    조순근 해병대령해병대사령부 항공단창설준비단장 병영 내 악성 사고는 ‘적’만큼이나 경계하고 조심해야 한다. 부대 장병들의 사기를 저하시키고 이로 인해 유·무형의 전투력 손실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전우에 대한 ...
    Date2017.10.29 Views1044
    Read More
  12. 해병대 창끝부대 소대장의 다짐

    김상아 중위(진)가 중대전술훈련의 일환인 4박5일간의 130km 완전군장 행군에서 선두에 서서 소대원들을 이끌고 있다. <사진 부대 제공> 내 꿈은 초등학생 시절부터 군인이었다. 그런 내가 해병대 ROTC 장교를 지원한...
    Date2017.10.29 Views12858
    Read More
  13. 나를 강하게 만든 혹서기 100㎞ 산악무장행군

    오주현 일병 해병대1사단 행군은 힘들다. 군대에서 행군은 더욱 힘들다. 산악행군은 더더욱 힘들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한여름 산악행군은 더더욱 힘들다. 그러나 우리는 7월의 한여름에 전우들과 함께 100㎞ 산...
    Date2017.08.06 Views1573
    Read More
  14. 달의 뒤편 이야기

    나 상 진 소위 해병대2사단 차갑고 어두운 밤, 한적한 길을 걸어본 적이 있는가. 그렇다면 한 번쯤은 달빛이 어두컴컴한 길을 밝게 비춰주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한밤중에 빛을 내며 우리를 안전하게 인도하는 달빛...
    Date2017.07.18 Views891
    Read More
  15. 내게 많은 것을 준 해병대

    이재민 일병 해병대 군수단 수송대대 “위잉~위잉~에옹에옹~.” 2017년 5월 16일 08시10분, 호송차 사이렌이 중대 장거리 수송훈련 시작을 알렸다. 평소 운전에 자신이 없던 나는 이번 중대 장거리 수송훈련의 주된 임...
    Date2017.06.25 Views892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 8 9 10 11 12 13 14 15 16 17 ... 37 Next
/ 37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