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환 해병대1사단 군종실장·법사·중령
문명이 발전하고 삶은 풍요로워졌으며 진보하는 기술만큼 사람들 몸은 편안해졌지만, 마음은 그만큼 더 행복해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앞으로 세상도 기술의 핵심은 사람들의 안락함을 추구하겠지만, 우리네 삶이 ‘변화와 관계’라는 서로 주고받음 속에 있다는 진리를 알아차리지 못한다면 마음의 평안까지 이끌 수는 없습니다.
뉴턴은 떨어지는 사과를 보며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했고, 부처님은 깨달음을 통해 이 삶은 항상 변화하며 상호 관계 맺음의 인연 속에 존재(연기)함을 보셨습니다. 새로이 만든 것이 아닌 현실을 있는 그대로 거울에 비추듯 드러내 항상하는 진리를 보셨습니다.
사람은 홀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부모와 자식 관계로 시작되어 성장하며, 주변 사람과 관계 맺음으로부터 자아가 발달하고 존재감을 찾고자 합니다.
삶을 목표하는 대로 이끌고자 하나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주변의 기대와 바람을 외면하기 힘들고 그래서 때론 내가 아닌 다른 모습으로 변모하기도 합니다. 원하는 목표가 있고 그만큼 줄지 못한 간극의 크기만큼 힘들다, 괴롭다 합니다. 때론 내 불편함을 부당함으로 착각하기도 합니다.
모든 것이 변화한다는 이치를 아는 사람은 누군가 가진 어떤 것 때문에 자신의 행복을 망치지 않습니다. 행복해지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나 다른 사람들보다 더 즐거워지기를 바라기 때문에 괴롭다 여기게 됩니다.
이러한 괴로움은 대개 ‘내 마음’이라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누구보다 ‘내 마음’을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잘 모릅니다. 눈앞에서 인식되는 모든 것이 다 내 마음에서부터 작용됨을 모릅니다. 그래서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이 바로 나 자신임을 알지 못합니다.
왜 이런 괴로움이 생겨나는지 고민해볼 겨를도 없이, 밖의 대상을 찾아 미워하며 원망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감정들도 내 마음에서 먼저 시작된 것이기에 미움과 원망의 결과도 고스란히 나에게 돌아옵니다.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것은 이처럼 근거 없는, 상황 따라 달라지는 생각들로 채워진 ‘내 마음’ 때문입니다.
어제 웃으며 보냈던 사람을 오늘 분노로 마주하게 될 수도, 어제 아름답게 보았던 꽃이 오늘은 감정 따라 눈에 들어오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 우리 마음입니다.
상황 따라, 사람 따라 분별하는 이 마음을 결국 내가 만들어냄을 알아차려, 삶은 항상 변화하며 상호 관계 맺음 속에 원융회통함을 바로 보아야 합니다. 상황을 인위적으로 변화시키기보다 있는 그대로만 알아차리면 여여(如如·변함이 없는 마음)한 삶으로 이끌 수 있습니다.
공자는 평생 ‘변함이 없는 삶’을 살기를 원했고, ‘변함이 없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 하며, 사람들이 경계해야 할 세 가지를 말했습니다. ‘없으면서도 있는 척, 비어있으면서도 가득 들어있는 척, 그릇 됨이 작으면서도 큰 척’. 이러한 분별들이 괴로움을 만들고 부딪히는 경계마다 변함없는 마음을 유지하기 어렵게 합니다.
삶의 목표가 내 것을 계속 채우고 사람들에게 인정받음을 이상적인 행복이라 여기지만 ‘이무소득고(以無所得故)’, 결국 붙잡을 것은 없습니다.<국방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