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대광 상사 해병대6여단 감찰실
해병대는 인권 강화를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나 역시 해병대원으로서 전우의 인권을 지키자는 각종 표어·포스터 등을 통해 수시로 접했지만, 정작 그 의미를 공감하고 실천하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앵무새 죽이기』(하퍼 리 저)라는 성장소설을 통해 존중과 배려라는 덕목의 참가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어린아이 스카웃은 주변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성숙한 숙녀가 되라고 강요받지만, 9살인 그녀는 서투른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는 훌륭한 아버지와 이웃들과의 소통을 통해 스스로 껍질을 깨고 세상을 성숙하게 볼 수 있게 된다.
진정한 성인이란 무엇일까, 어떻게 몸과 마음이 성숙한 인간이 될 수 있을까, 책장을 넘기며 수도 없이 생각했다. 나는 어린 스카웃처럼 모든 일을 내 위주로 판단했다. 주위의 고통은 그들의 사정일 뿐이고 내 주변엔 상식적이고 합리적이지 못한 사람들뿐일 것이라는 오만으로, 미숙한 동물의 모습을 드러낸 지난날이었다.
그러나 인간은 자생보다 공생을 택해 발전한 동물이다. 많은 사람의 인생을 내가 간접 체험할수록 그들의 고통을 외면하는 것은 내 가슴이 찢어질 듯 나를 아프게 했다. 인간이 동물과 차별되는 능력은 바로 ‘공감’이다. 본능에 이끌리고 욕구에 휘둘리는 자아가 덜 발달한 유년기를 넘어 사회로 들어가기 위해 갖춰야 할 존중과 배려는 공감에서 시작된다.
스카웃은 아버지가 오빠에게 공기총을 선물하며 앵무새를 쏘면 안 된다고 한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곧 모르는 어떤 흑인의 인권을 지키기 위해 본인의 목숨도 희생할 준비가 된 아버지의 각오와, 끝내 그걸 지키지 못한 그의 슬픔을 목격한다.
그것은 내 삶이 소중한 만큼 다른 삶을 생각하고 보듬어주는 참된 사랑이었다. 인간이라서 가능한 무조건적인 베풂과 정이었다. 이윽고 그녀는 앵무새의 소중함을 깨닫고 하나의 성숙한 인간으로 거듭난다. 앵무새를 죽이면 안 되는 이유도 깨달았다.
누군가의 고통은 우리에게 동일한 작용을 한다. 나만 피해 간다는 법칙은 없다. 분명 언젠가는 인생에서 감당 못 할 통증이 덮쳐오게 마련이다. 슬픔과 마주해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것에 손길을 내주는 일은 오직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위대한 행위다. 인간이 인간다워지는 진정한 순간이다.
책을 읽고 난 후, 현재 우리 해병대와 우리 사회에 최우선으로 필요한 것은 존중이라는 의미의 성숙이라고 생각했다. 존중과 배려를 주고받으며 고귀한 가치를 깨달은 스카웃처럼 우리도 이런 선순환을 반복해야 한다. 아픔을 같이 느끼고 따뜻한 정을 나누는 일은 해병대 전반을 발전시키고 이를 베푸는 해병대원, 받는 해병대원 모두의 존엄성을 수호하는 최고의 가치 있는 행위다.
우리의 하루는 누군가의 보이지 않는 정성스러운 기도로 이루어져 있다. 직접적으로, 감각적으로 와닿는 것이 아닐지라도 분명 우리가 편하고 행복하게 지낸 순간들은 그만큼 주위의 존중과 배려가 있었다. 기억하자! 이제는 우리가 보답해야 할 때다. 우리는 편견 없는 눈으로 서로의 손을 잡아주고 사랑해줄 의무가 있다. 그리할 때 바로 마음이 강인한 해병대원이자 하나의 성숙한 참된 인간이 될 수 있으므로.<국방일보 병엉의 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