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형 교 중위(진) 해병대2사단 백호여단
해병의 긍지, 해병 생활신조, 장교의 책무, 국군의 이념과 사명. 후보생 시절부터 임관 후 초군반을 수료하기까지 수없이 외워왔던 여러 문구다. 각기 내용은 조금씩 다르지만, 이 문구들이 공통으로 가리키는 것은 바로 ‘군인정신’이다.
임관 후 1년이 돼가는 시기에 운 좋게 국방정신전력원에서 진행하는 군인정신과정에 참가할 기회가 생겼다. 교육 중 한 교관이 생각지 못한 질문을 던졌다. “장교의 책무를 외울 수 있습니까?” 기억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임관 전 숱하게 외웠던 군인정신에 관한 모든 문구가 어렴풋한 기억으로만 남아있었다. 부끄러웠다. 돌이켜 보면 지난 1년간 업무에 익숙해지고 여유가 생겼지만, 한편으로는 현실에 안주하고 타성에 빠져 있었다. 군인정신이라는 네 글자는 가슴속에서 빛을 잃은 채 희미해져 가고 있었다.
교육 마지막 일정으로 국립서울현충원을 방문했다. 묘역 한 곳을 지나면서 해설사께서 “베트남전에서 해병대 청룡부대가 대승을 거둔 짜빈동 전투 참전용사들이 묻혀 있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그러고 보니 2월 15일은 짜빈동 전투 전승기념일이다. 1개 중대로 2개 연대 규모의 적을 격파하고 외신으로부터 ‘신화를 남긴 해병’이라는 찬사를 받은 눈부신 역사이자 해병대 청룡부대에서 근무하는 내게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전투다. 하지만 짜빈동 전투에 관해 내가 아는 것은 교육자료에 나와 있는 교과서적인 내용뿐이었다. 전투에 참여했던 해병 개개인이 어떤 마음가짐이었을지 고민해본 적은 없었다. 혹시 이것이 나의 부족한 군인정신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평소라면 열어볼 엄두도 나지 않는 두꺼운 회고록과 전사들을 모두 꺼냈다. 그리고 실제 전투에 참여한 분의 목소리를 통해 그 내용을 전해 듣고 싶어 당시 화기소대장으로 참전했던 김기홍 장군님께도 전화를 드렸다.
1967년 짜빈동에서 용맹하게 싸웠던 청룡부대 11중대, 그들에게도 분명 두려움이 있었다. 그러나 두려움을 뒤로하고 그들이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군인이었기 때문이다. 손에는 소총을 들고 몸과 마음은 군인정신으로 무장한 채 그들은 주어진 임무를 완수했다.
물은 그 자체로 형태를 보이지 않는다. 담는 그릇에 따라 그 크기나 모양이 달라진다는 얘기다. 군인정신도 마찬가지다. 즉 우리 자신의 모습에 따라 군인정신의 크기와 모양이 달라진다. 짜빈동 전투에서 지휘관이 보여준 군인정신은 위급한 상황에서 부하들의 눈을 피하지 않고 신속·정확한 대응을 지시하는 리더십이었다. 전투에 임한 해병들의 군인정신은 누군가의 경우 지휘관에 대한 충성심이었고, 누군가는 주어진 임무를 완수하겠다는 책임감이었으며, 다른 누군가는 죽음을 각오한 채 물러서지 않고 소총 한 자루를 들고 싸운 용기였다. 각기 다른 모양이지만, 그들은 자신만의 그릇 속에 군인정신이라는 무형 전력을 가득 채워 담고 있었다.
해병대 청룡부대에서 정신전력 함양이라는 중대한 임무를 맡은 내게 다시금 질문을 던져본다. 당신의 그릇은 군인정신으로 가득 차 있습니까?
<국방일보 병영의 창 20202.0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