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1주년을 기리며
권선혜 대위 해병대2사단 백호여단
백범 김구 선생, 도산 안창호 선생, 매헌 윤봉길 의사, 철기 이범석 장군….
대표적인 몇 분만 언급했지만, 머릿속에 떠오르는 임시정부 독립운동가들의 이름을 나열하다 보면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그들이 남성이라는 사실이다. 독립운동가의 성별이 무엇이었느냐가 결코 중요한 문제는 아닌데도, 우리 머릿속에 단번에 떠오르는 임시정부 여성 요인이 없다는 것은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그렇다면 임시정부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가운데 여성은 없었을까. 당연히 여성도 있었다. 임시정부의 지시를 받고 임신한 몸으로 폭탄을 던진 안경신 의사, 대한민국 애국부인회를 결성하고 임시의정원 황해도 대의원으로 활동했던 김마리아 열사, 한국 최초의 여류 비행사이자 한국광복군 비행대 편성에 주역으로 활약한 권기옥 선생 등 수많은 여성 독립운동가가 대한 독립을 위해 뜻을 모았다.
임시정부의 직속 군대이자 오늘날 국군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한국광복군에도 여성이 존재했다. 여성 광복군으로 서훈을 받은 29명은 전체 광복군 서훈자 중 19%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은 적진에 투입돼 정보수집·대적방송·심리작전 활동 등 독립운동의 전후방에서 중요 임무를 수행했다.
최근에는 숨어있던 여성 독립운동가들을 발굴하고 알리기 위한 각계각층의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독립투사 남자현을 모델로 한 영화 ‘암살’과 같이 문화예술산업에서는 여성 독립운동가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그들의 삶을 조명하고 있다.
군에서 활용하는 정신전력교육 자료 가운데에도 여성 독립운동가 관련 내용이 있다. 필자 역시 그러한 교육 덕분에 그동안 알지 못했던 숨은 영웅들을 만날 수 있었다.
‘지혜와 용기가 뛰어나고 용맹하여 보통 사람이 하기 어려운 일을 해내는 사람’을 ‘영웅’이라고 한다. 이들이 영웅이었던 이유는 ‘여성’ 독립운동가이기에 앞서 여성 ‘독립운동가’였기 때문이다. 여성의 활동이 다소 제한적이었던 사회 분위기에서도 이들은 자신을 ‘여성’이라는 성별로만 규정하지 않았다. 성별은 조국수호와 자주독립이라는 의지를 펼치는 데 장애물일 수 없었다. 오히려 여성이라는 성별을 임무 수행에 활용할 뿐이었다.
안경신 의사가 그 대표적인 예다. 그는 “내가 임신부이기 때문에 집중을 못 받을 것”이라며 일제의 눈을 피해 중국 상하이에서 평양까지 폭탄을 숨겨 들어왔다.
오늘날 나 역시 국군 장병의 일원이자 해병대 장교로서 조국수호의 임무를 다하고 있다. 주변에서는 “남성들도 힘들어하는 군대에 왜 들어갔냐” “여군으로 계속 군 생활을 할 거냐”라고 묻기도 한다. 그러나 조국수호라는 거대한 사명과 책임감 앞에 여성이라는 성별은 내게 아주 작은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101년 전 그들이 걸어온 길. 그들이 남긴 발자취를 따라 2020년 대한민국 해병대 장교로서 그 길을 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