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규 범 중위 해병대2사단 백호여단
당신에게 6월은 어떤 의미인가? 누군가에게 6월은 생일이나 기념일이 있는 의미 있는 달일 것이다. 다른 누군가에게는 더운 날씨를 맞아 휴가를 가거나 각종 취미생활로 스트레스를 푸는 시기일 것이다. 우리는 각기 다른 마음가짐과 자세로 6월을 맞이한다.
임관해 실무에 배치받고 처음 맞이하는 6월은 내게 남다른 무게로 다가온다. 지난 6일은 국가를 위해 희생한 이들의 넋을 기리는 현충일이었다. 또 70년 전 1950년 6월 25일에는 이 땅에서 전쟁이 벌어졌다. 2002년 6월 29일에는 월드컵의 열기 속에서 고(故) 윤영하 소령을 비롯한 여섯 명의 장병이 국가를 위해 싸우다 장렬히 산화했다. 대한민국은 국가와 민족을 위해 목숨 바쳐 헌신한 호국영령을 기리고 추모하고자 6월을 호국보훈의 달로 지정했다.
학창 시절에는 그런 것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군인인 아버지가 천안함 피격 사건으로 연락이 안 되는 것이 싫었다. 연평도 포격 도발로 아버지가 휴가를 나오지 못해 우울한 생일을 맞는 동생을 보는 것이 싫었다. 그렇게 어렸던 내 생각이 바뀌기 시작한 때는 사관학교에 입교한 이후부터였다.
전공이던 국제관계학과의 어느 교수님은 사관학교에 오랫동안 근무하신 분이셨다. 언젠가 그분이 하신 말씀이 있다. “지금 한규범 생도가 앉아있는 자리에 故 윤영하 생도가 있었단다.” 그때 자각했다. 나는 단순히 잠을 덜 자고, 남들과 다른 공부를 하고, 체력단련을 많이 하는 ‘대학생’이 아니라는 것을. 이 자리에 앉으셨던 선배님들은 포연탄우 속에서 부하들을 지휘하며 소명을 다하셨고, 끝내는 자기 목숨까지 국가에 바치고 전사자 추모비에 이름 석 자를 새기셨다.
이후 호국영령과 관련된 많은 장소를 다녀봤다. 인천상륙작전기념관, 해병대 전적지, 해군2함대 천안함과 참수리-357정, 현충원 등 다양한 곳에서 호국영령이 되신 여러 선배님을 만날 수 있었다. 이들의 모습은 저마다 달랐다. 싸운 장소, 시간, 모습까지 모두 달랐다.
다만, 한 가지 같았던 것은 그들의 마음가짐과 자세였다. 전투에 임하는 그들의 군인정신은 국가에 대한 충성심이었고, 주어진 임무를 완수하겠다는 책임감이었으며, 죽음을 각오한 채 물러서지 않고 싸운 용기였다.
군인의 아들이었던 내가 사관생도가 됐고, 지금은 어느덧 서부전선을 수호하는 최전방 경계작전부대의 소초장이 됐다. 한강하구 너머를 바라볼 때마다 위급한 상황이 도래했을 때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피와 땀, 나아가 목숨까지 바친 호국영령의 길을 기꺼이 따라 걸으리라 다짐한다.
전사자 추모비의 이름 석 자를 떠올리며 지금 내 오른쪽 가슴에 붙어있는 빨간 명찰을 본다. 나는 그들의 이름 앞에 내 이름 석 자를 자랑스럽게 내밀 수 있는가. 오늘도 그들을 기억하고 추모하며 스스로 되묻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국방일보 병영의창 2020.06.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