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렬 중위 해병대1사단 포병여단
“국가가 여러분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을지를 묻지 말고, 여러분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생각하십시오.”
전 미국 대통령 존 F 케네디가 취임식에서 낭독한 구절이며, 애국심을 주제로 한 강연이나 책 등에서 한 번쯤 언급되는 글귀이기도 하다. 그런데 사실 이 문장은 애국심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된 표현이 아니다.
케네디 대통령의 연설은 ‘인류 공통의 적인 독재, 빈곤, 질병, 전쟁 등에 맞서 다른 나라의 국민이나 다른 세대에 책임을 떠넘기지 말고, 미국 국민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이 모두 실천하여 자유를 지키자. 미국 정부는 언제든 준비되어 있으니 헌법에 맞게 적극적으로 행동하고 실천하는 국민을 국가가 얼마든지 도와주겠다’라는 세계시민주의를 서술하는 내용이었다. 문장만 따로 떼어놓으면 맹목적 충성을 요구하는 말이 되지만, 문맥을 알고 나면 이 연설이 조건 없는 애국심을 유도한 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례가 더 있다. 2015년 8월, 당시 미래창조과학부 산하 모 개발원의 이러닝 프로그램이 논란을 일으킨 적이 있다.
질문 1. ‘애국심’이란 ‘국가를 사랑하는 마음’이라고 정의하면 충분하다. 답은 ○일까, ×일까?
그런데 강의에서 제시한 정답은 의외였다. “정답은 ×입니다. ‘애국심’이란 개인의 이익과 국가의 이익이 충돌할 때, 국가의 이익을 우선 선택하는 것입니다. 이는 국가를 위해 자신의 소중한 것을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으로, 군인·공무원은 물론 연구자에게도 애국심이 요구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안중근 장군이 ‘위국헌신 군인본분’을 강조하며 애국심을 고양하고 추켜세운 것과 달리, 아일랜드의 작가 오스카 와일드는 애국심을 ‘사악한 자의 미덕’이라고 비판했다. 또 비뚤어진 애국심의 극단에 있는 국가주의와 전체주의 사상에서는 국가를 가장 우선적인 조직체로 규정하고 국가 권력에 광범위한 통제력을 부여하는 것이 애국하는 길이라고 했으니, 애국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지 않는다면 나라를 사랑한다는 허울 좋은 명분 아래 개인을 국가의 부품으로 전락시켜 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따라서 우리 군인들의 가슴은 무엇보다 애국심으로 박동해야 하지만, 이를 그릇된 방향으로 받아들이거나 표출해서는 안 된다.
70년 전 6월, 한반도에는 날카로운 총성과 참혹한 절규만이 맴돌았다. 하지만 그런 동족상잔의 비극 속에서도 자신의 목숨을 바쳐가며 조국과 국민을 위해 싸운 위인들이 있었기에 지금 대한민국은 눈부신 경제적 발전 속에서 안정과 번영을 꽃피운 나라가 될 수 있었다. 이전과 크게 변화된 모습 덕분에 깊은 상처는 새살이 돋아나며 기억 저편으로 사라지고, 평온한 일상에 젖어 시간이 흐르면 모든 게 자연스레 변하리라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한 세대를 넘어 다음 세대에까지 전해진 마음이 있었음을 기억하자. 이 땅에 나고 자랄 후손들, 우리 민족과 우리 겨레, 우리나라의 미래를 사랑했던 바로 그 마음이야말로 우리에게 필요한 ‘시대를 초월한 마음’이다.<국방일보 병영의창 2020.06.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