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초거 일병 해병대 연평부대
“과연 내가 완주할 수 있을까?”
화생방, 각개전투, 주요 편제장비 견학 등이 포함된 50㎞ 전술 무장행군. 행군의 대장정이 시작되는 아침, 불현듯 걱정과 근심이 마음속에서 샘솟았다. 긴장한 탓인지 몸은 뻣뻣했고 속은 더부룩했다.
25㎏의 무장을 메고 1시간쯤 걸었을까? 갑자기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초거야! 그렇게 행군하면 몸 다 상한다.” 뒤를 돌아보니 땀으로 범벅이 된 선임이 느슨해진 내 무장 끈을 조여주며 진심 어린 표정으로 걱정하고 있었다. 가파른 오르막길과 높은 습도 탓에 짜증을 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지만, 먼저 나를 챙겨주는 선임의 든든한 모습에 함께라면 완주할 수 있겠다는 막연한 자신감이 생겼다.
무장의 무게는 달라진 게 없었지만, 몸은 한결 가벼워졌고 단숨에 1차 목적지 관측소에 도착했다. 표적정보를 제공하는 관측소, 연평도 핵심 전투 장비의 제원과 임무를 청취하고 주위를 살펴보다 어느덧 날이 저물어 전투식량으로 허기진 배를 달래고 해안 철책을 따라 야간행군을 시작했다.
얼마 후 악명 높은 ‘천국의 계단’에 도착했다. 깎아지른 듯 가파른 수천 개의 계단, 칠흑 같은 어둠에 해무까지 끼어 한 치 앞을 가늠할 수 없었지만, 선임들은 뒤에서 위험한 곳곳을 랜턴으로 비추며 후임들의 안전을 챙겼다. 심장은 고장이라도 난 듯 매섭게 요동치고, 거친 숨은 턱밑까지 차올랐지만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의지하며 첫날을 무사히 마쳤다.
새벽이슬이 내려앉은 이튿날 아침. 오늘은 필수훈련과제와 연계한 훈련이 주를 이뤘다. 밀려오는 졸음을 뒤로한 채, 각개전투교장으로 이동해 장애물·지뢰 등 실제 전장과 유사한 환경에서 상호 호흡을 맞추며 실전적인 전투 감각을 익혔다. 이후, 다연장 부대에서 폭발적인 화력을 뽐내는 차륜형 전투장비의 위용을 잠시 견학한 뒤, 연평도 포격전을 승리로 이끌었던 포병부대로 이동했다.
탄흔이 새겨진 포상을 둘러보며 그 당시의 전투가 얼마나 치열했는지 여실히 체감했고, 10년 전 이곳 연평도를 사수하기 위해 목숨 바친 선배 해병들의 결의와 투지를 느끼며 엄숙히 고개를 숙였다. 생생한 전투 현장에서 안보의 중요성을 되새기며 숙영지로 이동해 고된 이튿날을 마무리했다.
맑고 쾌청한 마지막 날. 몸은 돌덩이처럼 무거웠지만, 모두 힘차게 파이팅을 외치며 화생방 교장으로 향했다. 일말의 두려움을 안고 화생방 실습장으로 들어가 능숙한 선임들을 따라 정화통 제거·교체, 음료 취음 등 행동화 훈련을 끝으로 길고 길었던 3일간의 행군을 마무리했다.
불가능할 것만 같았고 매 순간이 위기의 연속이었다. 수없이 포기하고 싶었다. 하지만 앞에서 끌어주는 선임들과 고통을 함께한 전우들이 있었기에, 우리는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었다. 어느덧 추억이 돼버린 그때를 떠올리면, ‘함께’ 한다는 것의 가치가 얼마나 소중한지 다시 한 번 깨닫는다. <국방일보 병영의창 2020.08.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