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다!
최영준 병장 해병대2사단 상장대대
[국방일보 병영의창 2021.01.12] 스물다섯. 나는 남들보다 다소 늦은 나이에 입대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임용시험을 거쳐 초등학교 교사가 됐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스물네 살이 됐고, 미루고 미루던 입대를 앞두고 있었다. 포항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에게 해병대는 익숙했다. 주변에도 해병대를 나온 친구가 많았고 무엇보다 해병대 출신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나 역시도 자연스럽게 해병대를 선택했다.
다소 늦은 나이에, 그것도 해병대를 선택한 나에게 주변 사람들은 많은 걱정을 내비쳤다. 나 또한 걱정이 됐던 건 사실이다.
그렇게 7주의 훈련단 생활을 마치고 중대로 전입했다. 전입 첫날 중대원들에게 나이를 밝히자 다들 의외라는 반응과 후임임에도 어려워하는 기색을 보였다. 중대에서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나이이다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주변에 피해를 주는 건 아닌가?’, ‘주변 사람들 말처럼 너무 늦게 와서 고생길이 되는 건 아닌가?’라는 생각에 고립된 군 생활을 할 것 같은 불안감이 생겼다. 하지만 군 생활을 하면 서 그것은 기우(杞憂)에 불과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입대 전 적지 않은 사회경험자로서 대원들에게 조언을 해주는 상담가 역할을 자청했다. 심지어 나보다 경험과 나이가 많은 간부님들도 나를 중대원들과의 연결고리라 생각하며 의견을 물어보고 도움을 요청하셨다. 이처럼 나를 믿어주는 간부님들과 중대원들에게 실망감을 주지 않기 위해 맡은 임무에 최선을 다했다. ‘중대 인권지킴이’ ‘생활반장’ 등의 직책을 맡아 활동하며 나는 중대에서 ‘누구보다 믿고 맡길 수 있는 해병’, ‘뭐든지 열심히 하는 해병’으로 인정받았다.
또한 나는 부대 적응을 어려워하는 후임들과 많은 시간을 보냈다. 먼저 다가가 생활에 어려움은 없는지, 힘든 일은 없는지 물어보고 고민을 들어주며 전투체육시간을 활용해 축구·농구 등 중대 단결 활동을 이끌어 갔다. 언제부터인가는 후임들이 내가 만화나 영화에 나오는 장로(長老) 같다며 장난스럽게 놀리기도 했다. 누구보다 든든한 선임이자 형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입대한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스물일곱 살이 돼 전역을 앞두고 있다.
내 삶에서 가장 찬란하게 빛나는 청춘 시기에 아무나 갈 수 없는 해병대에서 잊지 못할 경험을 할 수 있었다는 것에 감사하며 앞으로도 ‘영원한 해병’으로 살아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