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한 대위 해병대2사단 1여단
지난 15일은 짜빈동전투 54주년이었다. 나는 현재 청룡부대 11중대의 중대장으로 짜빈동전투의 주역이었던 11중대의 신화를 잇고 있는 지휘관이다.
1967년 2월 15일 짙은 안개가 끼고 비가 내리는 새벽, 베트남 쾅나이성 짜빈동의 야트막한 30m 고지에서 청룡부대 11중대와 2개 연대 규모 월맹 정규군의 전투가 벌어졌다. 3시간여의 사투 끝에 11중대는 기지를 사수하고 적을 격퇴했다. 15명의 선배 해병이 장렬히 산화했고, 243명의 적을 사살했다. 영화·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이 전투는 우리 대한민국 해병대의 명예로운 전투사에 남았고, 아직도 ‘신화를 남긴 해병대’라는 구호로 회자되고 있다.
짜빈동전투는 불리한 여건과 극한 상황에서 빚어낸 빛나는 승리였다. 수색·정찰을 통한 정확한 정보판단과 철저히 준비된 중대전술기지의 방어태세, 신속하고 정확한 화력지원의 삼박자가 절묘하게 들어맞았다. 무엇보다 승리의 중심에는 위기상황에서 빛을 발하는 해병대 특유의 전투정신이 있었다.
해병대의 전투정신을 몇 줄의 글로 정의할 수는 없겠지만 우리 중대는 그중 하나를 세 가지 신뢰(三信)라고 부른다.
첫 번째 신뢰는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이다. 교육훈련에 매진하고 전술전기를 숙달했다면 그 땀과 노력은 언젠가 반드시 자신에게 돌아온다. 그러므로 우리는 스스로의 능력을 갈고닦기 위해 힘써야 하며 이에 확신을 가져야 한다.
둘째는 ‘전우와 부대에 대한 믿음’이다. 혼란스러운 전장에서 내 곁에서 함께 싸우는 전우는 전투를 수행하는 또 하나의 원동력이자 든든한 버팀목이다. 전쟁은 개인이 혼자만의 힘으로 수행하는 것이 아니다.
끝으로 ‘지휘하는 상관에 대한 믿음’이다. 지휘관이 내리는 지시를 따르면 살아남을 수 있고, 승리할 수 있다는 확고한 믿음이 갖춰졌을 때 부하는 온전히 전투에 몰입할 수 있다.
6·25 전쟁부터 이어져 온 해병대 특유의 가족 같은 단결력이 바탕이 된 이러한 신뢰는 불가능한 전투를 신화로 만든 가장 큰 원동력이라 생각한다.
1967년의 11중대는 강도 높은 교육훈련과 수많은 실전경험을 바탕으로 전투원 개개인이 승리를 확신할 수 있는 전투 전문가들이었다. 그들은 이역만리 타국에서 생사고락을 함께하며 피보다 진한 전우애로 맺어진 또 하나의 가족이었으며, 부대를 지휘한 중대장 정경진 대위는 부하들의 신뢰와 충성에 승리로 화답했다.
2021년의 11중대를 지휘하고 있는 나의 지휘 표어는 ‘어게인(Again) 짜빈동 중대’다. 54년 전 불가능을 신화로 만든 선배 해병들의 명예와 전통을 이어 오늘의 11중대 역시 세 가지 신뢰를 바탕으로 서부전선을 굳건히 지켜낼 것을 다짐한다.<국방일보 병영의창 2021.0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