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수 국방일보 기고] 한 줄 메모의 가르침
한명수 국군지휘통신사령부·해병대령
누구에게나 삶의 변화를 가져오는 변곡점이 있으며, 때로는 장황한 글이나 말보다 간결하고 짧은 글, 말 한마디가 더 큰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20여 년 전 중대장을 마치던 날, 한 해병 중대원이 롤링 페이퍼에 감사 인사와 함께 ‘신언서판(身言書判)’이라는 글을 적어 주었다. ‘신언서판’은 당나라 시절 인재를 선발하는 네 가지의 기준이다. 그의 글은 ‘군인에게 신언서판은 무엇인지?’에 대한 물음을 던져주었고 해병으로서 나만의 ‘신언서판’을 만들어 주었다. 오늘은 나의 ‘신언서판’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한다.
‘신(身)’은 체력과 외적 자세다. 체력은 군인에게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조건이다. 또한 현재의 삶을 변함없이 유지하기 위한 필수 요소이기도 하다.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는 말처럼, 우리는 군인으로서 끊임없이 자신의 몸을 관리하고 보살펴야 한다. 외적 자세는 체력과 불가분의 관계이기도 하다. 나이가 있음에도 외적으로 반듯한 선배 전우들을 보면 외적 자세는 투철한 군인정신에서 나오는 아우라와도 같은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언(言)’은 올바른 인성이다. 말에 관한 명언은 수많은 고서에 기록돼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사람의 내적 인품은 내뱉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 묻어 나오며, 그 말을 통해 다른 사람들은 나를 평가하고 능력을 가늠하게 된다.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로 다양한 소셜 미디어에서 현란한 달변을 통해 유명 인사가 된 사람들이 몇 마디 말실수로 비판을 받고 그 자리에서 물러나는 모습을 보면 많은 말을 쏟아내는 것보다 좋은 말을 골라서 할 줄 아는 것이 더 소중한 능력임을 알 수 있다.
‘서(書)’는 넓고 깊은 지식이다. 인류가 문자를 발명하게 된 계기 중 하나는 선대의 깨달음을 후대에 전하고 싶다는 간절함이었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말처럼, 단순한 베끼기가 아닌 남의 지식을 빌려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우리의 능력이 지금의 찬란한 현대 문명을 만들어냈다고 할 수 있다. 선조들의 이러한 노력을 본받아 다양한 분야의 전문적인 지식을 습득하기 위해 매일 공부해야 하며 미래의 변화를 예측해 후손들에게 대비책을 전수해야 하는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
‘판(判)’은 지혜로움이다. 이스라엘 왕이었던 솔로몬은 백성들의 송사를 듣고 선악을 분별하는 지혜를 구하였고 하나님은 그에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셨다. 계급과 직책이 높아질수록 자연스럽게 사람과 일을 판단해야 하는 일이 많아지게 된다. 그 순간의 판단이 누군가에게는 인생이 걸린 중요한 문제일 수 있으며 조직의 성패를 결정할 수도 있다. 따라서 개인이나 조직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올바른 판단과 조치를 할 수 있는 솔로몬의 지혜를 갖춰야 한다.
오래전 기억 속에 남아있는 한 줄 메모의 가르침이 마음속에서 변하지 않기를 소망하며 앞으로도 신언서판의 삶을 살아갈 것을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