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할 수 없었던 나의 꿈
이건철 상사 해병대2사단 선봉여단
[국방일보 병영의창] 내가 태어나고 자란 경기도 가평에서는 빨간 명찰의 해병대 장병을 보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해병대에 가고 싶다거나, 군인이 되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하지만 지금 나는 대한민국 해병대 부사관으로 당당히 근무하고 있다.
사실 나는 어린 시절 소아마비를 앓았던 아픔이 있다. 형과 함께 자전거를 타며 동네를 휘젓고 다니는 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어느 날 내 다리가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다. 놀란 어머니는 나를 업고 병원으로 향했고, 소아마비라는 진단을 받았다. 단순히 근육통 정도로 생각했는데 평생 한쪽 다리가 불편한 채로 살아가야 한다는 의사의 말에 절망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포기하지 않으셨다. 어머니는 1년여간 나를 등에 업고 강원도 춘천에 있는 한의원에 다니셨다. 한의원 진료를 받을 때마다 다리에 침을 맞는 것이 아프고 두려웠지만 내 손을 꼭 붙잡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어떠한 내색도 할 수 없었다. 어머니의 등에서 나는 생각했다. 포기라는 단어를 알려주지 않으시려는 어머니의 사랑에 빨리 나야겠다고. 그리고 ‘스스로 일어나자’는 말을 수없이 되뇌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본 옆집 삼촌의 각 잡힌 전투복과 팔각모, 특히 빨간 명찰은 내게 이유를 알 수 없는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강인하고 당당한 모습의 삼촌을 통해 해병대의 일원이 돼 있는 내 모습을 상상했다. 그렇게 나는 해병대를 가야겠다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머니의 헌신적인 사랑 속에 굳은 의지를 갖고 재활 치료를 시작했다. 처음엔 다른 사람과 같이 걷는 것을 목표로 했다. 할 수 있다고 용기를 주시는 어머니의 응원 덕분이었을까? 다리에 힘이 생기기 시작했고 곧이어 축구를 할 수 있을 정도로 회복이 됐다.
그렇게 나는 조금씩 괜찮아졌고, 지난 1994년 12월 24일 해병대 부사관으로 임관할 수 있었다. 교육훈련단에서 보낸 8주는 고된 훈련의 연속이었지만 나는 묵묵히 해냈다. 아마도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누구보다 일찍 배웠기에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으리라. 그리고 지금까지 28년째 그 누구보다 강인한 해병대의 일원으로 복무하고 있다.
내가 지금까지 복무할 수 있었던 또 다른 이유는 부족함이 많은 내게 주변에서 보내준 무한한 사랑과 격려였다. 열 번이면 열 번, 백 번이면 백 번 고쳐나가고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내 꿈을 모두가 응원해 주었기에 그것이 가능했던 것이다.
이제는 내 차례다. 내가 옆집 삼촌의 모습을 보고 꿈을 키우고 자신감을 배웠듯, 어떤 임무를 맡든 솔선수범하며 타인에게 본보기가 되는 해병대 부사관이 되겠다. <국방일보 병영의창 2021.0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