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 년 03 월 01 일 (통권 534 호)발행된 신동아의 기사중 해병대와 특전사를 비교한 글입니다.
▶ 적의 심장부 노리는 절정의 고수들
‘자원자’로 구성된 해병대와 특전사는 극한의 상황에서 반전(反轉)을 시도하는 특수목적군이다. 상륙전을 펼치는 해병대는 앞에는 적, 뒤에는 바다라는 배수진 속에서 승리를 도모한다. 특전사는 적국 한복판에 점(點)으로 떨어져 헤집고 다니며 승리를 도모한다. 이런 해병대와 특전사가 이라크에 파병된다. ‘한번 해병은 영원 해병’과 ‘안 되면 되게 하라’를 모토로 내건 해병대와 특전사 중 누가 진짜 강자인가.
이 글을 쓰기에 앞서 기자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육군 특전사를 먼저 쓸 것인가, 해병대를 앞에 놓을 것인가…. ‘한국군 최강, 해병대와 특전사’란 주제로 취재에 들어가자 양 부대 관계자들은 한결같이 자기네를 먼저 써야 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이라크 추가 파병부대로 확정된 ‘최고를 지향하는’ 두 부대의 자부심은 대단했다. ‘한번 해병은 영원 해병’과 ‘안 되면 되게 하라’는 구호를 가진 두 부대는 전원 지원자로 구성됐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러한 자부심이 심각한 혈투를 불러온 적이 있었다. ○○년 서울 여의도에서 국군의 날 행사 준비에 참여했던 두 부대는, 부대원들의 사소한 라이벌 의식이 확대돼 걷잡을 수 없는 패싸움에 들어갔다.
사상 최강을 자부하는 두 부대원들 사이의 싸움은 용쟁호투, 용호상박으로 치달았다. ‘최고’에 있어서는 한치의 양보도 하지 않는 그들이었지만, 지휘관에게는 복종했다. 양 부대의 지휘관들이 호각을 불며 달려와 “동작 그만-”을 외치자 그들은 놀랍게도 공중에 날리던 몸을 멈춰 착지했다. 그러나 ‘절정(絶頂)의 고수’들인지라 그 짧은 시간에도 살수(殺手)를 교환했다. 사상자가 발생한 것이다. 그로 인해 그해 국군의 날 시가행진은 조용히 취소되었다. 이러한 역사를 알고 있는지라 기자는 어느 부대를 먼저 쓸 것인가를 놓고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흘간의 고심 끝에 내린 결론은 ‘해병대부터 쓰자’였다. 국군조직법 제2조 2항은 ‘국군은 육군•해군 및 공군으로 조직하며, 해군에 해병대를 둔다’라고 명시돼 있다. 해병대는 국군의 근간이 된 법률에 등재돼 있는 부대인 것이다. 그러나 특전사는 법률이 아닌 육군 차원에서 만들어졌다. 부대 역사도 해병대가 더 길다. 해병대는 1949년 4월15일 창설되었고, 특전사는 1958년 4월1일 정식으로 출범했다. 모두 3성 장군이 최고 지휘관이지만 부대 인원은 해병대가 세 배 이상 많다. 보유 장비도 해병대가 훨씬 더 많다. 이라크 파병을 앞둔 한국군 최강 부대의 용감성에 대한 탐험을 시도한다.
【‘한번 해병은 영원 해병’의 해병대】
‘한번 해병은 영원 해병’은 영국 속담인 ‘Once a Marine, Always a Marine’에서 나왔다. 어느 나라에서든 뱃사람들은 근성이 있기 마련인데, 근성이 강한 영국 선원들은 ‘한번 뱃놈은 영원 뱃놈’이라는 뜻으로 이 속담을 사용했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는 뜻으로 회자됐던 것인데, 미 해병대가 해병을 뜻하는 단어로 Marine을 선택하면서 ‘한번 해병은 영원 해병’이라는 ‘멋진’ 뜻으로 바뀐 것이다. 반면 이 속담의 진원지인 영국에서는 해병대를 뜻하는 단어로 Comma-ndo를 선택했다. Commando는 ‘특공대’로 번역되는 경우가 많아, 바다 냄새가 나지 않는다. 해병은 역시 해병(Marine)으로 불러야 제 맛이다. 미국에서는 해군 병사를 Sea Man이라고 하고 한국에서는 ‘수병’이라고 불러, 해병과 구분한다. 해병(Marine)은 해병대원을 총칭하는 단어이면서 해병대 병사를 가리키는 단어가 된 것이다.
‘한번 해병은 영원 해병’은 결코 빈말이 아니다. 해병대에 들어온 사람은 군복을 입은 때는 물론이고 벗은 후에도 해병으로 남는다. 이등병에서 사령관까지, 예비역에서 그 가족까지 모두 해병인 것이다. 그래서인지 해병대에는 “아버지가 해병 출신이라서 해병대에 자원했다”는 병사가 유독 많다. 특전사 장교들은 보병사단과 특전사를 오가는 경우가 많지만, 해병대원들은 전역하는 그 날까지 해병대에 머문다. 이러한 동질감이 단결과 용감성을 낳았을 것이다. 경북 포항시는 한국 해병대의 주력이 있는 곳이다. 한국 해병부대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베트남전에서 ‘신화를 남긴 해병’이라는 별명을 얻은 ‘청룡(靑龍)사단’일 것이다. 청룡사단은 해병대 2사단으로 불리는데 이 사단은 육군 ○○군단의 통제를 받으며 한강 하구의 김포반도에서 강화도까지 이어지는 휴전선 방어를 맡고 있다. 그러나 해병대를 아는 사람은 포항에 있는 해병대 1사단을 진짜 해병대라고 부른다. 해병대 1사단은 ‘해룡(海龍)’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그러나 ‘해롱해롱’ 하는 해롱으로 들릴 수 있다고 하여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대신 즐겨 사용하는 별칭이 ‘상륙사단’. 1사단은 국내 유일의 상륙군 부대로서 부대 마크에 ‘상륙’이라는 두 글자를 새겨놓고 있다. 1965년 이 상륙사단은 예하의 2연대를 차출해 월남 파병부대로 선정했는데, 이 2연대가 2여단이란 이름으로 베트남에 갔다가 돌아와 2사단(청룡사단)으로 발전했다.
▶ 유일한 국가 기동군 한미연합군이 낙동강 방어선으로 몰려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고 있던 1950년 8월17일 한 개 대대에 불과했던 한국 해병대는 경남 통영으로 단독 상륙작전을 감행해 인민군이 장악한 통영지역을 탈환했다. 이때 ‘뉴욕 타임스’의 마거릿 히킨즈 기자가 종군했는데, 그는 기사에 ‘그들은 귀신을 잡을 수 있을 정도로 용감했다(They might capture even the Devil)’는 문장을 남겼다. 여기서 나온 별명이 ‘귀신 잡는 해병’인데, 이 전통을 이어온 것이 바로 1사단이다. 2사단은 전선을 맡고 있어 대대별로 부대가 흩어져 있다. 그러나 1사단은 상륙만을 목적으로 하기에 포항시 도구동•일월동•청림동•오천읍 일대에 밀집해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말기 일본 육군은 이곳에 일본열도로 진격해오는 연합군을 공격하기 위해 가미카제(神風) 특공대를 띄울 비행장을 건설하다가 완성하지 못한 채 항복했다. 광복 이후에는 미 육군 부대가 진주하며 군정(軍政)을 펼쳤고, 6•25전쟁 때는 미 해병대 제1항공비행단이 주둔했다.
그리고 미 해병대 1항공비행단이 철수한 1959년 경기도 금촌에 있던 해병대 제1상륙사단이 이곳으로 옮겨왔다. 상륙작전을 펼치려면 전선을 맡고 있지 않아야 하는데 1상륙사단은 포항으로 옮겨옴으로써 명실상부한 상륙작전용 부대로 재편될 수 있었다. 전쟁이 일어나 국가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했을 때, 국가 전쟁지도부는 적의 옆구리를 치고 들어가는 작전을 세워 전세 역전을 꾀한다. 적의 중허리를 자르고 들어가 제2전선을 만드는 강력한 ‘국가 기동군’이 바로 해병대 1사단이다. 해병대 1사단은 하루나 늦어도 이틀 만에 전 사단을 기동시킬 수 있는 국내 유일의 신속대응군이다. 신속대응군은 보병은 물론이고 포병•기갑•공병 등 여러 병과의 부대가 한데 모여 있어야 한다. 1사단은 3개 보병연대와 1개 포병연대, 그리고 수색대대•해안개척대대•상륙장갑차대대•전차대대•공병대대 등을 사령부 주변에 빽빽이 포진시켰다. 전통적으로 해병대를 상징하는 빛깔은 진홍색이다. 해병대는 이름표도 붉고, 티셔츠와 트레이닝복도 붉으며, 깃발도 붉은 색 일색이다. 원색인 적색을 많이 쓰면 ‘촌스럽게’ 느껴지기 마련이지만, 붉은색 일색의 거대 군중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전혀 다른 느낌을 준다. 일조점호와 일석점호 때 각 해병 중대에서는 붉은 티셔츠를 입은 구릿빛 사내들이 몰려나와 깃발을 들고 줄지어 뛰기 시작한다. 1만여명이 넘는 1사단 요원들이 뛰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수백 마리 붉은 용이 뒤엉켜 돌아가는 것만 같다. 가까이 다가가면 그들이 내뱉는 함성과 땀내가 후각과 청각을 자극한다. 시커멓고 붉은 ‘적룡(赤龍)’의 기운. ‘무섭다’ ‘이것이 진짜 군대구나’. 사람에 따라 표현은 다르겠지만 그들이 만드는 기세에서 형언하기 어려운 웅혼(雄渾)함이 밀려나온다.
▶ 웅혼한 赤龍의 기운 상륙사단은 ‘뒤에는 물, 앞에는 적을 둔’ 배수진(背水陣)을 치고 싸우는 부대다. 이렇게 위험한 작전을 펼치는 데도 용감함에 매료된 젊은이들은 앞 다투어 자원(自願)한다. 해병대 교육훈련단은 15일 단위로 신병을 입소시키는데 이때 입대 경쟁률이 최하 3대 1이다. 각급 학교의 학년이 바뀌는 겨울이 되면 경쟁률은 10대 1 이상으로 올라간다. ‘한 집안 한 아들’이 보편화된 시대에 이렇게 많은 ‘아들’들이 훈련이 고된 해병대에 자원하는 것은 특이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병(兵) 964기로 교육훈련단에 입소한 김민호(20)군은 여섯 번 떨어지고 일곱 번째에 ‘간신히’ 합격했다. 해병대가 싸움 잘하는 사람을 뽑던 것은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체력 좋은 청년은 넘쳐나기 때문에 실력이 좋거나 행실이 방정하다는 기록이 있어야 해병대에 합격할 수 있다. 김군이 6전(顚)7기(起) 한 것은 바로 출석 상황 때문이었다. 그는 공고 출신인데 취업을 나가느라 고3 때의 출석부가 엉망이었다. 그렇게 해병대 입소시험에 떨어지며 반년을 허비하다 보니 육군으로 입대하라는 영장이 날아올 시기가 닥쳐왔다. ‘죽어도 해병을’ 고집한 그는 해병대사령부의 모병 담당 장교를 찾아갔다. 그는 “고3 때 취업 때문에 출결이 나빴지, 품행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죽어도 해병대에 가고 싶다”고 읍소했다. 김군은 그 후에야 비로소 붉은 명찰을 달 수 있었다고 한다.
이민 간 사람은 군에 입대하지 않아도 된다. 필리핀 이민자의 아들인 이충돈(20)군은 입대를 만류하는 어머니와 한판 전쟁을 치르고 김군과 동기가 되었다. 그는 왜 해병대에 왔느냐는 질문에 ‘누구나 해병이 될 수 있다면 나는 해병대에 오지 않았을 것이다’는 문구로 대답을 대신했다. 배수진을 마다하지 않고 상륙을 감행해 적진 깊숙이 들어가는 해병대의 용감성은 대원들의 이러한 저돌성에서 나왔을 것이다. 해병대는 정규 사단이기 때문에 ‘용사’만으로 구성할 수는 없다. 이발도 해주고 밥도 해주고 기계도 고쳐주는 다양한 특기병을 필요로 하는데, ‘용사’ 후보생들만 주로 지원하다 보니 만성적으로 기술병 부족을 겪는다. 해병대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해군으로 입대해 종합기술학교에서 특기 교육을 받은 수병 중에서 임의로 기술병을 차출하기도 한다. 수백 명의 수료생 중에서 해병대로 뽑혀가는 기술병은 대략 20∼30명. 각 부대로 ‘팔려가기’ 전 대기병 생활을 하는데, 이때 해병대로 갈 기술병에게는 빨간색 트레이닝복이, 해군으로 갈 수병에게는 청색 트레이닝복이 제공된다. 대기 기간 중 이들은 가끔 트레이닝 색깔 별로 나눠 전투 축구를 벌이곤 한다. 이때 해병대 쪽 책임자는 빨간 트레이닝복을 모아놓고 “우리는 해병이다. 싸우면 이기고, 지면 죽는 해병이다”는 구호를 선창하며 ‘반(半)협박’조로 정신교육을 시킨다. 이것이 엄청난 전과를 가져온다. 군대 축구가 으레 그렇듯 시합은 인원 제한 없이 펼쳐지니 10대 1로 병력이 열세인 빨간 트레이닝복은 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시합도중 엎어져 나뒹굴다 들것에 실려 나가는 것은 청색 트레이닝복 일색이다. 자원이든 차출이든 빨간 트레이닝복을 입으면 그때부터 미친 듯이 뛰어다니는 것이 해병이다. 이러한 집단 최면에서 ‘악으로 깡으로’의 해병대 근성이 발현된다. 신병들이 자대로 흩어질 때도 해병대의 특성이 여실히 드러난다. 6주간의 교육을 끝내고 더플 백을 앞에 놓은 이들은 눈물을 쏟으며 동기와의 이별을 아쉬워하는 것이다. 단지 훈련을 같이 받았다는 것만으로도 뜨거운 동지애에 눈물을 뿌리는 것은 해병대에서만 발견되는 ‘특이한’ 현상이다.
외아들로 집안에서 귀하게 여기는 김성겸(병 965기)군은 수색대에 지원했다가 떨어지자 눈물을 쏟았다. 상당수의 육군 병사들은 수색대에 차출되면 ‘죽었다’라고 복창한다는데, 수색대에 못가서 안달하는 사람이 있는 곳이 해병대인 것이다. 해병대 1사단은 정규 사단 중에서 천리행군을 하는 유일한 부대이다. 행군 도중 날이 저물면 산속에서 숙영을 하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그 지역의 해병 전우회가 찾아온다. 6•25전쟁 전에 입대한 팔순의 2기생 할아버지가 며느리•손자까지 동원해 먹을 것을 들고 산속으로 찾아올 때는 해병대원들도 아연 실색한다고 한다. 이러한 동질감은 한미 연합훈련에 참가한 미 해병대에 대해서도 그대로 발휘된다. ‘한번 해병은 국적을 막론하고 같은 해병’인 것이다. 한국군의 이라크 추가 파병이 거론되었을 때 미국에서는 가장 먼저 한국 해병대의 파병을 희망했다고 하는데, 이는 한미 해병대간의 우애와 동질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해병대는 강하다. 그러나 사람이 이끄는 조직이라 허점이 있다. 해병대는 부사관이 아니라 사병을 주축으로 한 부대인데 노무현 정부가 사병의 복무기간을 일률적으로 2년으로 줄이는 바람에 해병대는 숙달된 고참 부족 현상을 겪고 있다. 때문에 해병대만은 몇 개월이라도 복무기간을 연장했면 하는 것이 해병대 요원들의 바람이다.
▶ 사기•군기•단결•숙달 한국 해병대는 과연 강한가. 강한 근성은 춥고 배고프던 시절에 표출되지 국민소득 1만달러의 배 부른 시절에는 기대하기 어려운 것 아닌가. 이러한 의문에 대해 해병대 1사단의 기습특공대대장은 이렇게 대답했다. “미 육군의 통솔교범은 ‘지휘는 사기와 군기와 단결과 숙달을 올리는 것이 다’라고 밝혀 놓았다. 사기는 목소리가 큰 데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국가를 위해 희생할 수 있다는 자기 인식에서 나온다. 군기는 명령과 규정에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것이고, 단결은 사기가 집단적으로 표출되는 것이다. 숙달은 임무와 직무를 잘 수행할 수 있는 숙련도를 말한다. 해병대는 자원자로 구성됐기 때문에 사기와 단결에 강한 것이 장점이다. 가난하던 시절에는 오도된 사기와 단결과 군기를 과시하기도 했다. 명령과 규정에 자발적으로 복종하기보다는 반항하는 기분으로 사기와 단결을 과시한 것이다. 그래서 술 먹고 싸우고 윗도리를 벗어던지고 다니는 오도된 용맹을 과시한 대원도 일부 있었다. 자발적으로 복종하면 약한 것이라고 생각하던 때였으니 군기 또한 엄정했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러나 90년대 들어 자원자의 전반적인 수준이 올라가면서 오도되었던 사기와 단결과 군기가 정상화되었다. 이제 한국 해병대는 조국이 누란의 위기에 처했을 때 사기와 군기와 단결과 숙달을 발휘할 준비를 충분히 갖추었다고 믿는다. 이제 해병대는 머나먼 이국에서도 사기와 단결과 군기를 유지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도전하고 있다. 내 조국이 아닌 남의 나라를 위해 자신을 희생할 수 있을까. 이 길은 진짜 강군이 아니면 나아갈 수 없는 어려운 길이 아닐 수 없다. 한국 해병대는 그 험한 길을 향한 도전에 나섰다.”
【‘안 되면 되게 하라’의 특전사】
‘안되면 되게 하라’. 이처럼 모순적이면서 특전사의 특징을 잘 나타내는 말도 없을 것이다. 안 되는 것을 되게 하는 것은 ‘억지’인 동시에 ‘불가능은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실력’이 아닐 수 없다. 육군 특전사는 1•3•5•7•9로 나가는 홀수 번호의 여단을 갖고 있다. 이는 미 육군의 특수군사령부(Special Forces Command, 이하 특수군사)가 1•3•5•7•10의 다섯 개 특수단(Special Forces Group)으로 구성돼 있는 것과 유사하다. 미 육군 특수군사색는 그린 베레를 쓰지만 한국 특전사는 검은색 베레를 쓴다. 특전사 요원들은 두 개의 마크를 달고 있다. 왼쪽 어깨에는 낙하산과 독수리가 그려진 원형의 특전사 마크를 달고, 상의 오른쪽 가슴 주머니에는 여단 마크를 붙인다. 사자는 특전사 사령부, 독수리는 1여단, 호랑이는 3여단, 흑룡은 5여단(5공수는 현재 특수임무단으로 불린다) 마크다. 미 육군 특수단의 기본 단위는 12명으로 구성된 ‘팀’이다. 미 특수단은 A•B•C의 세 개 팀으로 구성돼 있는데 B와 C팀은 부대 지휘와 관련된 특수 팀인지라, 팀이라고 할 때는 대개 A팀을 지칭한다. 미 특수단의 팀은 대위가 팀장, 준위가 부팀장을 맡고, 작전•무기•공병•의무•통신 분야별로 두 명씩 모두 12명으로 편성한다. 반면 한국 특전사의 팀은 대위가 팀장, 중위나 소위가 부팀장을, 상사가 선임하사를 맡아 13명으로 구성되는 차이점이있다. 평시의 특전사는, 육•해공군과 함께 ‘각군(各軍)’으로 대접받는 해병대와 는 달리 육군소속 한 부대다. 그러나 데프콘2 이상의 전시엔 육•해•공군 및 해병대와 같은 반열에 올라선다. 유사시 한미연합사는 예하에 지상군구성군사령부•해군구성군사령부•공군구성군사령부•해병대사령부와 함께 특수전사령부를 만들기 때문이다. 다섯 개의 구성군사령부 중에서 한국군 장성이 최고 지휘관을 맡는 것은 지상군구성군사령부(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을 맡는 한국 육군대장)와 특수전사령부(한국 육군의 특수전사령관인 육군 중장) 두 개이다. 한미연합특수전사령부는 한국 육군의 특전사와 미국 육군의 특수단 그리고 UDT로 알려진 한미 해군의 특수전 부대를 지휘하게 된다. 특전사가 육군은 물론이고 해병대와도 구분되는 가장 큰 특징은 부사관 중심으로 편제돼 있다는 점이다. 물론 특전사에도 사병과 장교가 있지만 이들은 특전사의 주인이 아니다. 사병은 행정이나 부대 경계 같은 지원 업무를 하기 위해 의무병으로 입대한 장정 중에서 ‘차출’되었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작전에 투입되지 않는다.
지휘를 담당하는 장교는 작전에 들어간다. 특히 팀장과 부팀장을 맡은 위관 장교들은 부사관으로 구성된 특전요원을 끌고 최선봉으로 위험지역에 투입된다. 그러나 장교들은 보병사단으로 순환 보직되므로 영원한 특전인이 될 수 없다. 특전부사관은 1년에 4∼5차례 모집하는데 평균 경쟁률은 10대 1 안팎이다. 해병대는 안경을 쓴 사람도 자원할 수 있지만 특전사는 안경은 물론이고 렌즈를 낀 사람도 지원할 수가 없다. 신체 등급은 당연히 1급이어야 하고 무술 고단자에 수영 거리는 500m 이상이어야 한다. 또 운전면허가 있어야 한다. 물론 고등학교 학적부가 깨끗해야만 선발될 가능성이 높다. 특전단과 같은 뜻으로 회자되는 말 중의 하나가 ‘공수단’이다. 공수는 항공기를 타고 가 낙하산으로 강하하는 것을 뜻하는 Airborne에서 나왔다. 미 육군 특수군사는 SFC라는 부대 명칭 뒤에 ‘(Airborne)’을 붙여 공중강하가 가장 중요한 임무임을 암시하고 있다. 한국 특전사 역시 공수라는 이름을 즐겨 사용해, 1여단을 ‘1공수’, 3여단을 ‘3공수’식으로 지칭하는 경우가 많다.
점(點)에서 점(點)으로 기동 상륙전을 감행한 해병대는 교두보라고 하는 ‘면(面)’을 차지해 이를 확대하는 작전에 들어간다. 면이 있다는 것은 전차와 장갑차•자주포•헬기 등 중장비를 투입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이고, 중장비는 면을 확대해 들어가는 ‘결전(決戰)’의 주력 세력이 된다. 그러나 특전사는 낙하산으로 강하하기 때문에 소총과 기관총급 소화기만 갖고 간다. 전차와 장갑차는 물론이고 차량도 가져갈 수 없다. 따라서 특전사의 팀은 면이 아닌 ‘점(點)’으로 움직인다. 적지 한가운데에 몸을 숨기고 은밀히 기동하며 핵심세력을 파괴해 나가기 때문에 이들은 ‘안 되면 되게 하라’를 모토로 한다. 이러한 모토를 성공시킨 케이스로 거론되는 것이 이라크전쟁이다. 이라크전에서 미 특수군사 요원들은 전쟁 발발 훨씬 전에 낙하와 도보 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이라크에 침투했다. 정찰을 통해 이라크군 밀집 지역과 전략 요충지를 확인한 이들은 이를 본부에 보고하고 이로써 3월19일 다국적군은 이라크군을 충격과 공포에 빠뜨리는 ‘충격전’을 펼칠 수 있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전쟁 위협이 높아지면 한국 특전사 여단들은 사전 계획에 따라 맡은 지역으로 날아가 팀 단위로 흩어져 작전에 들어간다. 식량과 탄약은 공중 보급을 기대하지만 여의치 않으면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 나물도 캐먹고 짐승도 잡아먹으며 버텨야 하는 것이다. 자연보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요즘 야생동물 보호단체는 특전사 요원들이 훈련을 나갈 때마다 이들을 눈에 불을 켜고 살펴보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특전사는 농장에서 닭과 토끼를 사와 풀어놓고 잡아먹음으로써 보급이 끊어진 야지(野地) 생존술을 익히고 있다. 특전사 요원들은 명령이 있을 때 퇴출을 실시하는데, 개중에는 퇴출 도중에 실행할 임무를 부여받기도 한다. ‘점’으로 이동하며 새로 부여된 임무를 수행하다 보니 이들은 악조건하에서 행군을 할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해 특전사는 천리행군 훈련을 반복한다. 이따금씩 발생하는 무장간첩사건은 특전사가 실전을 경험하는 흔치 않은 경우다. 무장간첩이 산악에 은신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면 육군은 보병 사단으로 산악을 포위하고 특전사 팀을 헬기에 태워, 간첩들이 은신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지역에 투하한다. 특전사 대원은 비트를 파는 훈련을 받았기에 점(點)에 불과한 무장 간첩의 비트를 쉽게 찾아낸다. 간첩은 대부분 이러한 수색작전에서 소탕된다. 일각에서는 특수전 부대인 특전사가 이라크에 민사작전부대로 파병되는 데 대해 의문을 표시한다. 이에 대한 답은 미국 육군에서 찾는 것이 빠르다. 한국 육군의 특수작전사령부에 해당하는 미군 부대는 미 육군의 특수작전사령부(Special Operations Command)이다. 이 특수작전사령부 산하에 특수군사령부(Special Forces Command)와 민사심리전사령부가 있다.
한국 특전사는 미군에 빗대 설명하면 특수군사령부로서의 역할을 강조한 부대이다. 그러나 미국의 특전사는 ‘게릴라전’을 펼치는 특수군사령부와 함께 민사작전을 펼치는 민사심리전사령부를 거느리고 있다. 이런 이유로 한국 특전사 역시 적은 횟수이긴 하지만 민사심리전 훈련을 거듭해 왔다. 한국군 최고 사령부인 합참에는 ‘민사심리전참모부’가 있으나 민사작전을 시행할 수 있는부대는 현재로서는 특전사가 유일하다. 지난 4년간 한국군은 동티모르에 상록수부대를 파병했는데, 이 부대의 근간이 특전사였다. 특전사는 특전대대 하나를 상록수부대로 선발해 6개월씩 파병했다. 그러니까 특전사에서는 이미 여덟 개 대대가 민사작전의 경험을 쌓아온 것이다.
파병과 민사작전 경험 축적 이라크에는 네 개의 특전대대가 파병돼 6개월씩 머물며 민사작전을 수행한다. 한국군이 3년간 이라크에 주둔한다면 24개 특전대대가 파병과 민사작전 경험을 쌓게 되는 것이다. 이라크는 동티모르에 비해 훨씬 더 위험하다. 과연 특전사는 이라크에서 민사작전을 잘 수행할 수 있을까. 지난 해 5월 서희•제마부대가 파병되었을 때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특전사 팀이 함께 파병됐다. 공병대인 서희부대가 공사를 할 때 가장 골칫거리는 이라크의 어린이였다. 전쟁에서 대부분의 학교가 파괴돼 갈 데가 없어진 아이들은 군부대가 공사를 벌이면 우르르 밀려나왔다. 어리다고 이들을 깔보았다간 큰일을 당한다. 실제로 민사작전에 나갔던 한 미군은 이라크 어린이가 건네주는 것을 무심코 받았는데, 받고 보니 안전핀을 뽑은 수류탄이었다. “어-” 하는 사이 수류탄이 폭발해 이 병사가 폭사했고 곁에 있던 병사도 다쳤다. 이후 미군은 곤봉을 들고 나와 어린이와 어른을 가리지 않고 몰려나온 이라크인들을 밀어냈다. 이것이 후세인 축출을 환영하던 이라크인으로 하여금 미군에 대해 적대감을 품게 한 계기가 되었다. 이와 똑같은 상황을 서희부대도 겪었다. 처음에는 어린이들이 몰려들고 이어 이라크인 남자들이 다가오면 공사장 경계임무를 맡은 특전사 요원들도 긴장할 수밖에 없다. 어떻게 이라크인을 공사현장에서 멀리 떨어뜨릴 것인가. 특전사는 이 문제를 간단히 해결했다. 임무에 투입되지 않은 요원으로 하여금 가까운 곳에서 태권도 시범을 보이게 한 것. 특전사 요원이 다리를 쭉쭉 뻗으며 발차기를 하자 아이들의 관심이 그쪽으로 쏠리며 졸지에 노상 태권도장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렇게 되니 할일 없는 이라크 남정네들은 공사장을 기웃거리기 힘들어졌다. 그렇다고 아이들마냥 특전사 요원을 둘러싸고 발차기를 할 수도 없으니 멀찍이 떨어져 나갔다. 이 경험이 민사작전을 위해 추가로 파병되는 부대에 적용되었다. 특전사는 민사작전을 펼칠 특전대대와는 별도로 태권도 교관팀을 구성키로 한 것이다. 아울러 이라크인들이 축구를 좋아하는 것을 고려해 축구공과 축구화 등을 다량으로 가져가 뿌릴 준비를 하고 있다.
특수전은 군사작전은 물론이고 심리전 요소까지 동원해 안 되는 일을 되게끔 만드는 것이다. 이라크 파병을 계기로 특전사는 민사심리전을 전문으로 하는 부대 창설을 서두를 것으로 보인다. 특전사라고 해서 모두 똑같은 특전사가 아니다. 특전여단에는 ○개 특전대대 외에 여단 직속의 정찰대대가 있는데, 정찰대대는 특전대대보다 한 수로 위 평가받고 있다. 특전사 사령부는 707 특수임무대를 거느리고 있는데 이 부대는 정찰대대가 넘볼 수 없는 영역에 있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707 특수임무대원들은 장난을 치는 것이 ‘붕붕’ 날아다닌다고 할 정도로 빠르고 강한 사내들 일색이다. 부사관으로 구성된 특전사 요원들은 총검술을 익히지 않는 유일한 군인이다. 이들에게는 분열이나 행군 같은 일사불란함이 아니라 목표를 달성하는 집요함이 중요하다. 특전사는 왜 강한가란 질문에 대해 특전사의 고참 원사는 이렇게 설명했다. “일반 사단에서는 계급이 왕초라고 합디다. 장교는 실력이 모자라도 장교 대우를 받습니다. 그러나 특전사에선 실력이 왕초입니다. 장교일지라도 실력이 달리면 부사관한테 배워야 합니다. 위관 장교들이 중•상사와 태권도대련을 벌였다가 나가 떨어져 기절을 해도 문제가 안 되는 곳이 특전사입니다. 실력이 없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무서운 경쟁, 이것이 최강의 특전사를 만들었습니다.”
【에필로그】
한국군 최강 해병대와 특전사란 제목으로 취재를 하자 일부에서는 “누가 가장 강한 부대인가”라고 반문했다. 또 특전사와 해병대가 이라크에 파병된다고 하니 “그들이 이라크로 가버리면 우리나라는 누가 지키는가”라는 원초적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었다. 한국군에는 특전사와 해병대 외에도 육군의 특공여단, 해군의 특수전여단(UDT)과 해난구조대(SSU), 공군의 항공구조전단 등 여러 특수부대가 있다. 이라크로 가는 특전사와 해병대는 전체로 보면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으므로 ‘누가 나라를 지키는가’ 하는 걱정은 기우에 지나지 않는다. 한국군에는 이런 부대 외에도 공개할 수 없는 또 다른 특수부대가 있다. 이들은 유사시 한국을 위협하는 적국의 심장부를 강타할 ‘인간병기’가 된다. 현재 이라크에는 미국 등 37개국에서 나온 군대가 진주해 있으므로 특전사와 해병대는 간접적으로나마 자신을여러 나라 군대와 비교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이라크 파병은 한국군의 힘을 평가하고 강화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특전사와 해병대가 함께 감으로써 한국군은 최고의 민사작전부대가 될 것이다.
글: 이정훈 동아일보 주간동아 차장 hoon@donga.com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