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해창 병장 해병대 연평부대
단풍이 붉게 물든 2019년 가을, 나는 평범했던 일상을 뒤로한 채 해병대에 입대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어느덧 전역을 앞둔 말년 병장이 됐다. 유년 시절 대부분을 미국에서 보낸 내게 해병대에서 복무한 18개월은 인생 어느 순간보다도 의미 있고 소중하다.
얼마 전 당직 근무 중 당직사관께서 전역을 앞둔 내게 “해병대에서 많은 것을 배웠나?”라고 질문을 던지셨다. 나는 늘 그래 왔듯 “예, 그렇습니다!”라고 우렁차게 대답했다. 해병대에서 뜨거운 청춘을 보낸 나는 진정 무엇을 배웠을까? 많은 단어가 뇌리를 스쳐 지나가지만, 그중 ‘삶에 대한 인내와 끈기, 도전적인 자세’를 첫손에 꼽겠다.
입대 전 나는 오랫동안 간직한 꿈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현실과 적당히 타협하며 편안함을 쫓았다. 미국과 카타르에서 유학하고 화학공학 인턴을 하는 등 남부럽지 않은 커리어와 스펙을 쌓았고 그것에 만족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현실에 안주하려는 나 자신에 회의감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새로운 도전을 꿈꾸며 미국 시민권을 포기하고 대한민국 해병대에 입대했다.
‘젊은이여 도전하라!’ 포항 교육훈련단에서 처음 마주했던 문구다. 해병대 특유의 끈기와 인내를 함축하고 있는 이 문구는 도전적인 삶을 갈망하던 나에게 비수처럼 꽂혔고, 곧 군 생활의 모토(motto)가 됐다. 그리고 가입교 기간에 육체와 정신을 강하게 단련하던 나는 스스로 한계의 끝을 느끼고 싶어 해병대 수색대를 자원했다.
하지만 의욕만 앞섰을 뿐 쉽지 않았다. 장거리 수영은 완주하지도 못하고 중도 포기했고, 결국 수영 테스트 불합격으로 퇴교당하는 수모를 겪어야만 했다. 하지만 이렇게 물러설 수는 없었다. 나는 다시 도전해 잠영 50m·수중 결박·지옥주 등 힘든 훈련과정을 모두 극복하고 자랑스러운 수색인이 됐다. 실무지 전입 후에도 나 자신과의 싸움은 계속됐다. 한겨울 살을 에는 강추위에도 야산을 누볐고, 강도 높은 훈련과 작전 임무에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돌이켜보면 매 순간이 고난과 도전 그 자체였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정신없이 지내고 나니, 어느새 전역이 눈앞에 다가왔다.
실패에 좌절하지 않고 진취적으로 목표를 성취하게 했던 해병대의 도전정신은 현실에 안주하려는 나를 채찍질했다. 그리고 전역을 앞둔 시점, 나는 그 무엇도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가득 찬 해병이 돼 있다.
이제 곧 망망대해와 같은 사회로 나갈 것이다. 거센 바람과 풍랑에 부닥칠 때도 있겠지만 누군가 만들어놓은 길이 아닌, 아무도 가지 않은 오지를 개척하고 도전하는 삶의 항해사가 되고 싶다. 해병대에서 배운 도전정신으로! <국방일보 병영의창 2021.0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