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주락상사 해병대6여단
문득 어린 시절 읽었던 『키다리 아저씨』라는 소설이 떠올랐다. 고아원에서 자란 ‘제루샤 애벗’이라는 소녀가 이름 모를 후원자의 도움으로 대학에 진학해 새롭고 재미있는 세상을 경험하는 성장 이야기이다. 후원자는 후원의 조건으로 한 달에 한 번 감사 편지를 쓰게 한다. 애벗은 이 이름 모를 후원자를 ‘키다리 아저씨’라 부른다.
어릴 적 내게도 이러한 키다리 아저씨들이 있었다. 우리 집은 부유하지 못했던 탓에 문화생활을 누리거나 사교육을 받을 엄두를 낼 수 없었다. 그렇지만 나는 복지관 소속의 많은 ‘키다리 아저씨’들의 도움으로 뮤지컬, 음악회, 레프팅 등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남부럽지 않은 교육도 받을 수 있었다. 이처럼 ‘키다리 아저씨’들은 생면부지의 나를 위해 가진 것을 나누고, 베풀어 줬다. 나는 성장하면서 그 은혜를 잊은 적이 없다. 그리고 나 역시 어른이 되면 누군가에게 나눔을 실천하는 키다리 아저씨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나는 지난 2010년 해병대 부사관으로 임관하면서 이제 나눔을 할 수 있다는 기대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해왔던 결심을 실천하기 위해 임무를 수행하면서 봉사활동에 나서는 것은 어려운 점이 많았다. 그렇게 혼자 고민하던 중 내가 직접 봉사에 나서지 않더라도 어린이들을 위해 기부를 하는 것만으로도 나눔을 실천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변치 않는 초심을 가진 키다리 아저씨가 되기 위해 나만의 규칙을 정했다. 기부액을 매달 1만 원으로 시작해 근속 연수에 비례해 늘려가는 것이다. 그렇게 첫해 일년에 12만 원을 시작으로 12년 차가 된 지금은 매달 12만 원을 소외 어린이를 위해 기부하고 있다.
기부처를 정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처음에는 막연히 어린이 구호 활동을 하는 단체에 기부를 했으나, 내가 기부한 돈이 어떻게 쓰이는지 잘 몰랐다. 그러나 사이버대학에 진학해 사회복지에 관한 공부를 하게 되면서 소년범의 재사회화에 관심이 깊어졌다. 소년범들은 퇴소 이후의 생활환경이 그 전과 바뀌지 않아 범죄에 다시 노출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다른 범죄 유형에 비해 재범률이 높다고 한다. 그렇게 사회적 관심의 사각지대에 있는 아이들을 위한 자활 단체에 기부를 결심했고, 뚜렷한 목적이 있는 기부라 더 보람된 마음으로 지속할 수 있게 됐다.
내 주변에 기부를 하고 싶지만 어떻게 시작해야 좋을지 몰라 방법을 묻는 사람들이 있다. 이러한 예비 키다리 아저씨들에게 나는 두 가지 노하우를 전하고 싶다.
첫째는 적은 금액이라도 꾸준히 하는 것. 둘째로 내가 돕고 싶은 상대를 정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만 생각한다면 우리 사회를 더욱 따뜻하게 하는 나눔에 동참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나는 국민이 어려울 때 가장 먼저 앞장서는 해병대 구성원으로서 기부를 통해 얻은 봉사 정신으로 국가와 국민을 위해 나에게 맡겨진 임무에 최선을 다할 것이다. <국방일보 병영의창 2021.06.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