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한 기회가 되어 우리 동네의 조그만 성당엘갔다. 그날따라 외부 초빙 신부님의 강론이 있던 날이다. 키도 작고, 짧게 깎은 흰 머리가 꽤 인상적이었다.
“이 성당 강 신부님은 몇 분 동안 강론을 하시지요?...10분?,...20분요?..., 그럼 저는 15분만, 아니 그것도
3분을 뺀 12분만 강론을 하겠습니다. ..이제 제 나이 70입니다. 지난 제 인생을 한번 쯤 돌아볼 때가 된 것 같아 뒤돌아보니 전 正義를 위해서 한평생을 살아 온 것 같습니다.
정의가 아니면 쳐다보지도 않았고, 목숨 바쳐 싸웠으며, 하나님한테도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을 위한‘배려’라는 것을 모르고 살아 왔다는 것도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내 고등학교 동창생 중 SK에 근무하는 김○○전무라는 친구가 있다. 울산에 근무하는데 몇 년 동안 틈 날 때마다 가까운 지인을 불러 골프를 쳤다.
그런데, 캐디 비, 물 값, 저녁식사까지 다 계산했다.
부담스럽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여 고맙다는 인사를 하니 이 친구는 아냐! 오히려 내가 고맙지...., 야! 이 사람아! 내가 평생 이 자리에 있나? 그리고 내 돈쓰는 것도 아니잖아! 오히려 없는 시간을 내서 여기까지 와 준 자네들이 고맙지.
맞는 말이다. 더욱이 그 친구는 자기가 할 말보다는 주로 듣는 편이었는데, 그래! 그래! 맞아, 바로 그거야! 무릎을 쳐가며 상대방 이야기를 아주 기분좋게 잘 들어 주는 친구이기도 하였다.
그래 바로 이것이 저마다 가지고 있는“그릇”이라는 것이구나! 그런 자리에 있다고 해서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 않는가?
가끔 학교일로 또는 다른 일로 부대에 들어가 후배장교들을 만날 때 느끼는 떨떠름한 감회가 있다.
“보이는 것만 보고, 있는 그대로만 본다.”는 것이다. 모든 사물에는 본질이라는 것이 있고, 겉에 보이는 것보다 빙산처럼 보이지 않는 부분이 더 크다는 사실과 보이지 않는 부분을 보려고 하는 노력이 없다는 것에 아쉬움을 느낄 때가 있다.
옛날 욕심 많은 부자가 자기 집 마당에 나무를 심었는데 그 나무가 아주 크게 잘 자라 넓은 그늘을 만들어 주었고, 지나가는 사람들은 그곳에서 잘 쉬어 가곤 했다. 그 꼴을 보다 못한 부자 노인은 그 그늘도 내 것이니 여기서 쉬어갈 수 없다면서 모두를 쫓아버렸다. 그것을 보다 못한 한 젊은이가 부자 노인에게 많은 돈을 줄 터이니 그 나무를 팔라 했고, 그 노인은 돈 욕심에 그 나무를 팔아 버렸다. 그리고 몇 일후 저녁무 렵, 그 젊은이가 다시 돌아 왔을 때 나무 그림자는 안방과 부엌, 그리고 그 집 모두를 그늘로 드리웠다.
이 그늘 진 곳은 모두 내 것이니 당신은 이곳을 비켜주시오......, 결국 그 노인은 그 집을 비워줘야 했다는 이야기다.
이 우화에서 젊은이는 보이지 않는 부분을 볼 수있는 본질을 볼 줄 아는 눈을 가졌다는 것이며,언젠가는 있는 것만 보려는 자는 본질을 보는 눈을가진 자에게 내 것 모두를 내 줄수도 있다는 이야기도된다.
법과 원칙도 중요하다. 더욱이 군이라는 특수 집단은 법과 질서가 무너지면 조직이 무너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눈에 보이는 외형적인 것에 불과한 것이지 본질은 될 수 없다.
전투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무기체계와 전술도 중요하지만 신뢰를 바탕으로 한 보이지 않는 정신력 또한 전쟁 승패의 관건이기도 하다.
목숨을 건 충성심을 얻어내기 위해서는 부하의 마음을 얻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을 법과 질서, 또 정의만으로 얻을 수 있다고 보는가?
내 나이 환갑이 되니 이제 세상이 조금은 눈에 들어오는 듯하다.
상대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는 내 마음을 먼저 주어야 한다. 상대가 마음을 주었을 때 또한 그 마음을 당연히 받을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을...
내가 높아지기 위해서는 나를 먼저 낮추어야 하며,내가 이기기 위해서는 먼저 굽힐 줄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도와줄 수 있을 때 도와주고, 베풀 수 있을때 베풀 줄 아는 것이 큰 사람의 도량이기도 하다는 것을...
이 모든 것의 뒤안길에“사랑과 배려”라는 것이있고, 그리고 그릇이라는 잣대가 있다. 이제야 베푸는자의 즐거움이라는 의미를 조금은 알 것 같고, 그래서 삼람은 한번쯤은 뒤를 돌아보며 살아갈 필요가 있는 지도 모르겠다. [2009 해병대지]
“이 성당 강 신부님은 몇 분 동안 강론을 하시지요?...10분?,...20분요?..., 그럼 저는 15분만, 아니 그것도
3분을 뺀 12분만 강론을 하겠습니다. ..이제 제 나이 70입니다. 지난 제 인생을 한번 쯤 돌아볼 때가 된 것 같아 뒤돌아보니 전 正義를 위해서 한평생을 살아 온 것 같습니다.
정의가 아니면 쳐다보지도 않았고, 목숨 바쳐 싸웠으며, 하나님한테도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을 위한‘배려’라는 것을 모르고 살아 왔다는 것도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내 고등학교 동창생 중 SK에 근무하는 김○○전무라는 친구가 있다. 울산에 근무하는데 몇 년 동안 틈 날 때마다 가까운 지인을 불러 골프를 쳤다.
그런데, 캐디 비, 물 값, 저녁식사까지 다 계산했다.
부담스럽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여 고맙다는 인사를 하니 이 친구는 아냐! 오히려 내가 고맙지...., 야! 이 사람아! 내가 평생 이 자리에 있나? 그리고 내 돈쓰는 것도 아니잖아! 오히려 없는 시간을 내서 여기까지 와 준 자네들이 고맙지.
맞는 말이다. 더욱이 그 친구는 자기가 할 말보다는 주로 듣는 편이었는데, 그래! 그래! 맞아, 바로 그거야! 무릎을 쳐가며 상대방 이야기를 아주 기분좋게 잘 들어 주는 친구이기도 하였다.
그래 바로 이것이 저마다 가지고 있는“그릇”이라는 것이구나! 그런 자리에 있다고 해서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 않는가?
가끔 학교일로 또는 다른 일로 부대에 들어가 후배장교들을 만날 때 느끼는 떨떠름한 감회가 있다.
“보이는 것만 보고, 있는 그대로만 본다.”는 것이다. 모든 사물에는 본질이라는 것이 있고, 겉에 보이는 것보다 빙산처럼 보이지 않는 부분이 더 크다는 사실과 보이지 않는 부분을 보려고 하는 노력이 없다는 것에 아쉬움을 느낄 때가 있다.
옛날 욕심 많은 부자가 자기 집 마당에 나무를 심었는데 그 나무가 아주 크게 잘 자라 넓은 그늘을 만들어 주었고, 지나가는 사람들은 그곳에서 잘 쉬어 가곤 했다. 그 꼴을 보다 못한 부자 노인은 그 그늘도 내 것이니 여기서 쉬어갈 수 없다면서 모두를 쫓아버렸다. 그것을 보다 못한 한 젊은이가 부자 노인에게 많은 돈을 줄 터이니 그 나무를 팔라 했고, 그 노인은 돈 욕심에 그 나무를 팔아 버렸다. 그리고 몇 일후 저녁무 렵, 그 젊은이가 다시 돌아 왔을 때 나무 그림자는 안방과 부엌, 그리고 그 집 모두를 그늘로 드리웠다.
이 그늘 진 곳은 모두 내 것이니 당신은 이곳을 비켜주시오......, 결국 그 노인은 그 집을 비워줘야 했다는 이야기다.
이 우화에서 젊은이는 보이지 않는 부분을 볼 수있는 본질을 볼 줄 아는 눈을 가졌다는 것이며,언젠가는 있는 것만 보려는 자는 본질을 보는 눈을가진 자에게 내 것 모두를 내 줄수도 있다는 이야기도된다.
법과 원칙도 중요하다. 더욱이 군이라는 특수 집단은 법과 질서가 무너지면 조직이 무너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눈에 보이는 외형적인 것에 불과한 것이지 본질은 될 수 없다.
전투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무기체계와 전술도 중요하지만 신뢰를 바탕으로 한 보이지 않는 정신력 또한 전쟁 승패의 관건이기도 하다.
목숨을 건 충성심을 얻어내기 위해서는 부하의 마음을 얻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을 법과 질서, 또 정의만으로 얻을 수 있다고 보는가?
내 나이 환갑이 되니 이제 세상이 조금은 눈에 들어오는 듯하다.
상대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는 내 마음을 먼저 주어야 한다. 상대가 마음을 주었을 때 또한 그 마음을 당연히 받을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을...
내가 높아지기 위해서는 나를 먼저 낮추어야 하며,내가 이기기 위해서는 먼저 굽힐 줄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도와줄 수 있을 때 도와주고, 베풀 수 있을때 베풀 줄 아는 것이 큰 사람의 도량이기도 하다는 것을...
이 모든 것의 뒤안길에“사랑과 배려”라는 것이있고, 그리고 그릇이라는 잣대가 있다. 이제야 베푸는자의 즐거움이라는 의미를 조금은 알 것 같고, 그래서 삼람은 한번쯤은 뒤를 돌아보며 살아갈 필요가 있는 지도 모르겠다. [2009 해병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