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연평부대 박승범 상사
고대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의 저서 『정치학』에서 ‘인간은 본성적으로 국가(사회) 공동체를 구성하는 존재’라고 말했다. 이는 곧 타인과의 관계를 기초로 사회적 공동체를 구성할 때, 비로소 인간은 존재 가치를 가진다는 것이다. 한자 사람 인(人) 역시 한 일(一) 자의 사람 두 명이 모여 서로를 지탱하는 모습을 하고 있다. 이처럼 사람은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존재로, 타인과 관계 속에 함께 살아가는 사회적 통념을 따른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나 이행하는 국방의 의무. 입시를 위해 쉼 없이 달려온 20대 청춘들은 대부분 대학 진학 후 군에 입대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본격적인 단체생활을 시작하며, 작은 사회를 간접적으로 경험하고, 관계에 필요한 존중과 배려·소통·공감·예의 등을 배워간다. 이런 의미에서 군대는 관계 배움의 장이기도 하다.
나는 북한으로부터 불과 3㎞ 남짓 떨어진 서해 북단 연평도에서 해병들과 함께 교육훈련, 경계작전, 부대관리를 하고 있다. 연평도에서 근무한 지 10개월이 지났지만, 아직도 나의 20대 시절과는 사뭇 다른 지금의 장병들과 가까워지는 게 어렵기만 하다. 20년 전 기성세대 시각으로 그들을 바라본 탓에 이해하지 못하고 답답할 때도 많았다. 그렇게 고충을 겪던 중 해병대 리더십센터에서 주관한 갈등관리 리더십을 수강하면서 그들을 지혜롭게 이끄는 관계의 지혜를 터득했다.
강의의 주제는 ‘관계를 시작하는 대화의 기술: 공감과 경청’이었다. 언어적·비언어적 요소(태도·행동·얼굴) 활용 방법, 대화의 문을 닫게 하는 나쁜 습관을 주로 다뤘다. 간략히 요약하면 대화가 원만하고 효율적으로 이뤄지려면 먼저 공감이 필요하고, 이것이 충족됐을 때 상대방은 서서히 마음의 문을 열어 진정 어린 대화를 시작한다. 그리고 그 대화를 통해 자연스레 신뢰가 쌓이고 믿음이 생긴다고 한다.
경청의 자세 또한 필요하다. 간부들의 흔한 실수 중 하나가 바로 해병들의 대화에 전혀 공감하지 못하고, 단순히 문제를 해결하려는 대화 방식을 취하는 것이다. 이러한 잘못된 경청 방식 때문에 대부분의 하급자 또는 해병들과의 대화 기회가 상실되고 오해가 야기된다.
물론 리더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먼저 하급자에게 자신의 의도나 업무 수행의 제반 사항을 명확히 지시·전달해야 하므로 자칫 이 두 가지를 놓칠 때가 많다. 하지만 리더는 구성원들의 소리에 경청하고 공감할 줄 아는 소통의 자세를 지녀야 한다. 만약 이것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당장의 성과는 달성될지 몰라도 훗날 조직은 불신 속에서 조금씩 병들고 말 것이다.
기성세대와 MZ세대, 20대부터 50대까지 공존하는 군대의 환경상 위에서 언급한 내용을 모두 실천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공감과 경청’의 자세로 상호 공존하고 대화하면 머지않아 우리는 지금보다 훨씬 나아진 소통의 군대문화를 만들게 될 것이다. <국방일보 병영의창 2021.08.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