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형 상병 해병대1사단 본부대대
나는 중학교 시절 남들보다 조금 깊게 진로에 대한 고민을 했다. 고민의 시간이 길어지면서 방황의 시기를 보냈다. 시간은 시간대로 흘러버렸고 어느 순간 뒤를 돌아보니 아무것도 남은 것 없는 학창 시절을 보냈음을 깨달았다. 나는 더 이상 시간을 허비할 수 없다는 생각에 과감하게 자퇴를 결정했고, 검정고시에 합격한 후 모험과도 같은 유학을 결정했다.
그렇게 나는 17살 겨울 두려움과 설렘을 가슴에 안고 영국으로 떠났다. 부모님과 떨어져 혼자 시작한 타국 생활은 모든 것이 어색했지만 새롭고 신기한 것투성이였고 생각한 것보다 순조롭게 지나가는 듯했다.
하지만 외로운 타국 생활이 이어질수록 나도 모르게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생겼다. 그리움과 고민이 많아진 어느 날 한인타운으로 혼자 축구를 하러 갔다. 그곳에는 혼자 운동을 하러 온 나와 다르게 많은 한국인이 모여 웃고 땀 흘리며 운동을 즐기고 있었다. 가족같이 어울려 웃고 운동하는 모습이 어찌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가족 같은 분위기로 영국에서 귀한 인연을 이어가는 그들은 해병대 전우들이었다.
영국에서 대한민국 그리고 해병대라는 인연으로 가족보다 더 가족처럼 지내는 그 모습이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나는 축구를 마치고 그날부터 해병대와 관련한 기사와 영상 등을 찾아보며 해병대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가 빨간 명찰을 가슴에 달고 싶어졌다. 그렇게 나는 잠시 학업을 멈추고 한국으로 들어와 해병대에 자원 입대했다. 그리고 어느덧 해병대 생활 1년을 앞두고 있다. 그동안 단 한 번도 내 선택을, 그날 그들과의 만남을 후회한 적이 없다.
힘들고 강도 높은 훈련, 기수를 바탕으로 한 확실한 위계질서, 하지만 그만큼 힘든 시간을 함께 견뎌온 전우를 향한 사랑, 선임에게 받은 애정을 후임에게 나누는 문화 등 내가 부족했던 점을 채워주는 곳이 바로 해병대였다. 무엇보다도 해병대에는 몸과 마음이 건강한 장병들이 있다. 사람을 진정으로 귀하게 여기는 진심과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해병대만의 문화는 장병 스스로가 만들어가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해병대에서 만난 인연들은 앞으로 걸어갈 내 인생에 긍정적인 기운이 돼 줄 것이다.
나는 해병대에서 인내와 배려를 배웠고, 사랑받는 법을 배웠으며, 가장 중요한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이는 앞으로 삶을 대하는 내 태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임이 분명하다. 나는 해병대의 일원으로서 국가를 수호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자신이 자랑스럽다. 과거 내가 영국에서 홀로 타지 생활을 시작해 대학교에 입학했던 순간보다 지금이 부모님 앞에 더 떳떳하게 설 수 있는 순간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나는 자랑스러운 해병의 이름으로 맡은 바 임무를 완수할 것을 다짐한다. [국방일보 병영의창 2021. 10.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