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선민 병장 해병대1사단 3포병대대
입대 전 나는 대학 입시에서 실패를 맛봤다. 사람들은 내가 노력한 과정보다는 결과만으로 평가했고, 이런 모습은 내게 큰 아픔으로 다가왔다. 사람에 대한 두려움과 바닥으로 떨어진 자존감, 그 고통 속에 몸부림치다가 입대를 선택했다.
그렇게 난 도망치듯 해병대에 자원 입대했다. 하지만 해병대에서 내 인생을 바꿔 줄 뜻밖의 선물을 받았다. 내가 해병대에서 받은 첫 번째 선물은 해병대 정신이었다.
교육훈련단에 입교했을 때 나는 무기력한 상태였으며, 자신이 인생의 패배자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교육훈련단에서 배우게 된 ‘해병 정신’은 부족한 환경과 불리한 상황에서도 방법을 찾고 싸워 이기는 용기와 칠전팔기의 도전이었다.
훈련에 임하면서 내 머릿속엔 ‘나도 할 수 있구나’라는 긍정적인 사고가 자리 잡게 됐다. 이러한 마음가짐으로 군 생활을 하다 보니 생활반장 임무까지 수행하게 됐다. 그리고 전역 후에도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는 ‘용기’를 첫 번째 선물로 받았다.
두 번째 선물은 해병대만의 끈끈한 전우애다. 전역을 앞두자 기쁨만큼이나 걱정도 나날이 커졌다. 고민을 해봐도 결론은 나지 않았다. 그러던 나에게 답을 준 건 다름 아닌 전우들이었다.
그중 중대장님 말씀이 여전히 뇌리에서 잊히지 않는다. 내 고민을 들어준 중대장님은 “너 축구 잘하니? 그럼 축구나 열심히 해”라고 했다. 이 말이 무슨 뜻인가 곰곰이 생각하던 내게 중대장님은 웃으며 “지나친 고민은 되레 독이 되니 머리를 한 번 비워봐”라고 설명하셨다.
이 말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것을 깨우칠 수 있었다. 돈 주고도 못 살 소중한 타인의 경험이다. 물론 어디에서든 배울 수 있고 많은 경험을 얻어갈 수 있지만, 해병대는 두터운 전우애와 돈독한 관계가 특징이라서 서로에 대해 조금 더 솔직하게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게 한다. 그렇게 나는 1년6개월이란 시간 동안 많은 전우의 간접적인 경험을 들을 수 있었다.
해병대는 가장 힘든 시절에 나를 도와 줬다. 20대의 첫 실패에 허우적대는, 무늬만 성인인 어린아이를 ‘해병’이라는 이름으로 일으켜 세우고 사회에 나가 다시 한 번 당당히 맞설 힘을 줬다. 함께 견디고, 함께 웃고, 함께 이겨낸 전우들과 보낸 시간이 앞으로도 내게 웃음을 주는 활력소가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여기서 만난 소중한 인연이 실패로 인한 좌절과 무기력을 극복하고 다시 도전할 수 있게 도와줄 것이다. 그렇게 나를 해병이라는 이름으로 감싸 안아준 해병대와 함께한 ‘우리’라는 기억은 가장 값진 선물이 될 것이다.<국방일보 병여의창 2021.1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