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형 중사 해병대 연평부대
2010년 11월 23일. 11년 전 오늘은 정전협정 이후 처음으로 북한이 대한민국 국민과 영토를 향해 무차별 포격을 가한 날이다. 당시 북한은 우리의 통상적인 사격훈련을 빌미 삼아 연평도 전역에 기습적인 포격을 가했고, 엄청난 연기와 화염이 순식간에 연평도를 뒤덮었다.
당시 포7중대 5포반장 임무를 수행했던 나는 포반원들과 자주포 안에서 낙탄 소리를 들었고, 처음에는 인근 포반의 탄이 불발된 것이라 짐작했다. 하지만 귀를 찢는 듯한 굉음이 계속 이어졌고, 동시에 포반원들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반장님! 자주포 주위에 탄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순간 북한의 포격 도발임을 직감했고, 중대장 지시에 따라 곧바로 대응사격을 준비했다.
그날 우리 포반은 침착하고 냉철했다. 두려움보다는 전의(戰意)에 불탔고, 일전불사의 각오로 누구 하나 물러서지 않았다. 눈앞에서 낙탄 상황을 목격하고도 두려움에 떨지 않고 자주포를 진지 안으로 이동시킨 이승영 해병, 죽음을 무릅쓰고 탄약을 재보급한 신병철 해병, 포상 밖으로 나가 단절된 통신 유선망을 복구한 정병문 해병 등. 머뭇거릴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우리는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대응했다. 사격을 거듭할수록 자신감에 가득 찼고, 끝까지 연평도를 사수하겠다는 일념으로 각자 임무를 완수했다. 긴박했던 두 차례의 대응사격을 끝으로 북한은 더 이상 추가 도발을 하지 않았고 우리는 마침내 승리했다.
당시 사격이 종료된 후에도 우리 포반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전투 상황을 유지했다. 비좁은 자주포 안에서 8명이 살을 맞대고 생활해야 했다. 육체는 조금씩 지쳐갔지만 정신은 또렷했고 마음은 뜨거웠다. 그렇게 2주가 지나고 나서야 상황이 종료됨에 따라 피해를 복구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특히 지난 10월 1일 제73주년 국군의 날 행사에서는 포격전 공로를 인정받아 무공포장을 받았다. 포격전 승전의 일원으로 받은 것이기에 감격스러웠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미안한 마음이 컸다. 생사고락을 같이한 포반원 모두가 함께 받아야 할 포장을 혼자 받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없었더라면 결코 이룰 수 없는 공로였다.
지금 나는 다시 연평도로 돌아와 두 번째 군 생활을 하고 있다. 오늘의 연평도는 막강한 화력이 보강되고 신축시설이 들어섰으며 장병 생활 여건 또한 많이 발전했다. 그뿐만 아니라 현행작전에 투입되는 해병들의 눈빛과 정신 역시 크게 변했다. ‘내 손으로 작전을 종결하겠다’는 강한 책임감은 과거보다 더욱 커졌다. 이들과 함께 근무하면 또다시 포격전이 일어나도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는 자신감이 솟구친다.
연평도 포격전 11주년. 오늘의 연평부대는 훨씬 더 강해졌고 더욱 잘 준비돼 있다. 서북도서에 해병대가 있는 한 우리의 승리 역사는 계속될 것이다.[국방일보 병영의창 2021.1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