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형빈 상병 해병대2사단 선봉여단
우리 인생은 마치 한 마디 멜로디와 같다. 피아노 건반을 누를 때면 한 음이, 또 다음 건반을 누를 때면 또 다른 한 음이 나오기 마련이다. 피아니스트가 수많은 건반으로 어우러진 한 음을 만들어내면 흥미가 가는 명곡이 탄생할 수 있는 반면에 반대로 어울리지 않는 각각의 음을 내게 되면 불협화음과 비슷한, 전혀 구성이 맞지 않는 멜로디가 나오게 된다. 이러한 불협화음은 피아니스트는 물론이고 주변 사람들까지 괴롭게 하는 듣기 싫은 소음이 된다.
병영 생활에서는 우리 모두가 피아니스트다. 우리가 결정하는 수많은 선택은 각기 다른 음들을 내게 되고, 이러한 선택을 잘못하면 그 결과는 좋지 않다. 그렇기에 내가 무언가 행동을 하기 전 어떤 결정이 좋을지 신중하게 고민하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주변 환경이나 타인에 의해 다음에 칠 건반이 정해지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자신이 건반을 누르기 때문이다.
나는 해병대2사단에서 발생하는 사건·사고에 대한 처분을 결정하는 법무실에서 수송병으로 근무하고 있다. 행정업무가 많을 때는 간단한 업무를 돕기도 해서 병영 악습 척결을 위한 노력을 가까이서 보고 있다.
이곳에서는 크고 작은 이유로 가혹 행위·가해 혐의를 받고 찾아온 병사들을 보게 된다. 그들의 대부분은 처음에는 ‘장난인 줄 알고 했었다’며 자신이 한 행동의 심각성을 모르지만, 후에 그 행동이 얼마나 잘못된 것이었는지 알게 되면 진심으로 반성하고 후회한다.
하지만 이미 건반은 눌러졌다. 그 일로 인해 누군가에게는 치유할 수 없는 상처가 남겨졌고, 조사 결과에 따라 본인은 전우가 입은 상처에 대한 책임을 지게 된다. 그들의 행동은 자신의 건반을 잘못 누른 것은 물론이고, 타인의 멜로디까지 파괴하는 상황을 만든 것이다. 한 번 잘못 누른 건반의 대가는 상상 이상으로 크다. 이미 잘못 연주된 한 음으로 선율은 모두 무너졌다. 그 선율을 다시는 연주하게 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최악의 경우에는 아예 눌린 건반이 빠져버릴 수도 있다.
내가 법무실에서 여러 가지 사례를 보면서 절실히 느낀 게 있다. 자신의 피아노 위 건반은 자신이 칠 자격이 있지만 타인의 건반까지 연주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잘 흘러가던 멜로디를 완전히 망쳐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해병 생활신조에 나오듯 해병으로서 우리는 전우를 사랑해야 한다. 상·하급자, 선·후임으로 나눠 일방통행 같은 사랑이 아니라 그냥 해병이자 전우로서 말이다. 나를 비롯한 모든 해병은 타인의 건반을 함부로 누르거나 자신의 건반을 아무 생각 없이 눌러 조직에 불협화음이 나지 않도록 존중과 배려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 피아니스트인 나는 어떤 음을 낼지, 어떤 화음이 아름다운 선율을 이룰지 오늘도 고민하고 노력하며 피아노 위 건반을 친다. <국방일보 병영의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