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다시 일어서게 한 마라톤
서수호 중사 해병대2사단 2군수대대
나는 지난 2010년 1월 5일, 서른이라는 늦은 나이에 해병대 부사관으로 임관했다. 지난 2003년 병사로 전역한 후 7년 만에 다시 해병대에 재입대한 것이다. 그러나 사회생활을 하며 불어버린 몸무게로 젊은 날 날렵한 해병이었던 내 모습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하지만 굳은 결심으로 훈련에 임한 결과 부사관 양성과정을 마쳤을 때는 70㎏까지 감량에 성공해 과거 특급전사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하지만 첫 번째 시련이 찾아왔다. 훈련 중 척추를 다쳐 군군수도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 군의관은 전역을 권했다. 나는 임무 수행을 할 수 없게 됐다는 생각에 좌절했지만, 재입대를 결심했던 그 날을 떠올리며 4개월간 물리치료와 재활운동으로 몸과 마음을 단련했다. 그리고 기적적으로 임무를 수행할 수 있을 만큼 건강해졌고, 군 생활을 이어갈 수 있게 됐다.
그러나 또 다른 시련이 닥쳤다. 어머니가 뺑소니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데 이어 아버지까지 세상을 떠난 것이다. 나는 큰 충격으로 폭식과 폭음을 거듭했고, 체중은 순식간에 100㎏에 육박할 정도로 불었다. 그 결과 허리 통증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고, 군 생활을 더 이어나갈 자신감도 사라졌다. 매일 살아간다는 것보다 버틴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삶이었다.
그런 나를 지켜보던 한 선배가 진심 어린 충고와 함께 걷기를 권했다. 그렇게 나는 하루에 만 보 이상 걷기에 도전했다.
처음에는 3000보 만 걸어도 숨을 헐떡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만 보 정도는 상쾌하게 걸을 수 있게 됐다. 그때부터 1.5㎞, 3㎞, 5㎞로 거리를 늘렸고 10㎞부터는 기록 단축을 목표로 달리고 또 달렸다. 다행히 내 신체는 빠르게 회복됐다.
몸이 건강해지자 마음도 편안해졌다. 새롭게 삶을 시작하고, 대한민국 수호 의지를 다지기 위해 2018년 이름을 ‘서수호’로 개명했다. 또 평생의 반려자를 만나 가정을 꾸리고 예쁜 두 딸도 얻었다. 이처럼 새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으로 도전한 달리기 덕분에 건강을 되찾고, 마음의 안식처도 찾았다.
그리고 지난해 2군수대대로 전입해 생애 첫 마라톤에 참가했다. 임무 수행 중 다친 소방관을 돕기 위한 취지로 열린 이 대회는 코로나19 여파로 비대면으로 개최됐다. 훈련 중 척추를 다친 경험이 있던 내게 더욱 공감이 가는 대회였고, 내 응원이 투병 중인 소방관들에게 닿기를 바라면서 10㎞ 코스를 완주했다.
지난 42년의 삶 중 15년 동안 해병대에서 국가 수호 임무를 수행했다. 숱한 고난과 역경이 있었지만, 가족과 전우가 있어 극복했다.
나는 42.195㎞ 풀코스 마라톤 완주라는 목표를 세웠다. 이 작은 한 발짝이 앞으로 내가 해병대 부사관으로서 임무를 수행하는 데 큰 자양분이 될 것으로 믿는다. 서수호의 인생 마라톤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국방일보 병영의창 2022. 03. 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