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교찬 일병 해병대2사단 12대대
나는 떠올린다. 처음 해병대에 지원했을 때의 굳건한 마음가짐을. 그리고 천자봉에 올랐을 때의 힘찬 호흡을. 마침내 ‘빨간 명찰’이 심장을 관통했을 때의 강렬한 박동을. 나는 아직도 이 순간을 포함한 여러 기억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가는 경험을 한다. 이 같은 소중한 순간의 기억은 내 병영생활의 뿌리가 됐고, 원동력이 됐다.
어느 날 대한민국의 남자라면 누구나 가야 하는 입대의 순간이 왔을 때, 내 눈에 해병대라는 세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사실 아버지께서는 내가 해병대라는 큰 산을 넘지 않았으면 했다. 해병대라는 높은 산에 도전했다가 포기할 것이라고 걱정하셨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머니께서 “도전하는 청춘의 시기는 지금이다. 그래서 우리 아들이 더 자랑스럽구나”라고 격려해 주셔서 자신감을 얻었다.
그렇지만 해병대원이 되는 과정은 험난했다. 무려 네 번에 걸쳐 해병대에 지원했지만, 계속되는 탈락으로 자신감은 점점 희미해졌다. 돌파구가 필요했다. 나는 부정적인 감정을 떨쳐버리고, 더 단단한 해병대원이 되기 위한 몸만들기에 몰두했다. 이를 통해 내 체력과 정신력은 더욱 강해졌다. 이와 같은 간절한 마음이 전달됐을까. 나는 마침내 해병 1275기로 당당히 입대할 수 있었다.
하지만 빨간 명찰을 달기 위한 과정은 그야말로 혹독했다. 소형 고무보트(IBS)를 타고 동료들과 노를 저으며 거친 파도를 헤쳤고, 비상 이함훈련으로 높이의 두려움을 극복했다. 유격훈련과 각개전투훈련은 해병대원으로서 자신감을 충전하는 밑거름이 됐다.
그중에서도 천자봉 행군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나는 행군 과정에서 해병대원으로서 끈끈한 전우애를 확인했다. 모두가 체력적인 한계에 달해 자신의 몸도 가누기 힘든 상황에서도 전우를 위해 서로를 격려하고, 의지하는 모습은 뜨거운 해병대 전우애를 느끼기에 충분했다. 마침내 힘든 천자봉 행군을 마친 후 그토록 염원하던 빨간 명찰을 가슴에 달았다. 오직 해병이기에 가능했던 이런 경험의 소중함을 나는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있다.
이러한 경험은 내 삶의 초심으로 남겨 앞으로의 병영생활뿐만 아니라 전역 후 사회에 진출해서도 이어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해병대가 나에게 심어준 소중한 삶의 자양분이기 때문이다.
나는 국가와 국민을 위해 맡은 바 임무를 수행하는 해병대원이다. 아직 해야 할 일이 많은 일병이기에 혹시나 처음 빨간 명찰을 달았을 때의 초심을 잃지 않았나, 언제나 마음가짐을 재무장하고 있다. 그리고 다짐한다. 해병대원으로서 영광스러운 전역의 그날까지 초심을 유지하고, 국가와 국민을 위해 임무를 완수하겠다고 말이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해병대다운 자세일 뿐만 아니라 해병대 훈련 과정에서 나눴던 뜨거운 전우애에 대한 값진 보답이기 때문이다. <국방일보 병영의 창 2022.0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