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현 상사 해병대2사단 1여단
십수 년 전 입영통지서를 받고 교육훈련단을 들어설 때 그 긴장감과 떨림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극기주를 이겨내고 ‘빨간명찰’을 가슴에 달았을 때의 뜨거움도 아직 잊지 못한다. 임관식 때 동기들과 기뻐하며, 한편으로는 헤어짐을 아쉬워하던 순간과 실무에 배치받아 첫 출근을 하던 그때의 긴장감…. 계층에 따라 다를 수 있어도 빨간명찰을 받던 그 순간을 해병이라면 과연 잊을 수 있을까?
하사로 임관해 2사단으로 배치받은 후 버스를 타고 부대 앞을 지나가며 창문으로 바라본 글귀가 문득 생각난다. ‘젊은이여 해병대로.’ 이제 막 실무에 배치받은 부사관의 눈에는 정말 가슴 뛰는 문구가 아닐 수 없었다. 해병이라면 누구나 빨간명찰, 상륙돌격형 두발, 팔각모에 매료돼 해병대를 지원했을 것이다. 합격 발표 후 입대하기 전부터 ‘무적해병’ ‘귀신 잡는 해병’ 같은 문구를 볼 때면 이미 해병이 된 것만 같은 자부심이 느껴졌을 것이다.
하지만, 과연 지금의 우리는 그 자부심을 아직도 느끼고 있는가? 우리는 입대 전부터 여러 매체나 주변에 전역한 예비역 해병 또는 휴가 중인 해병을 통해 오도된 병영문화를 쉽게 접하곤 한다. 그리고 그것이 마치 해병대의 전통인 듯 굳게 믿는 예비 해병들과 병영 악습을 일삼는 해병들은 그렇게 생겨난다. 악습은 코로나19와 같이 쉽게 전염되는, 잠복기가 긴 전염병이다. 내가 언제 감염됐는지도 모르게 스며들어 잠복하다 후임이 들어오면 서서히 증상이 발현되는 것이다.
대부분의 해병은 악습이 잘못됐고 해서는 안 된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러나 소수의 몇몇 잘못된 해병들로 인해 반복적으로 전파되고 행해지고 있다. 때론 장난이라는 이유로, 때론 호봉제라는 이름으로, 또는 그 강도가 약하다는 이유 등으로 묵인되고 퍼져나간다.
우리가 진정 해병대를 사랑하고 위한다면 악습의 전염을 막을 수 있게 먼저 마스크를 착용하고, 주위에 경고를 울려야 하지 않을까? 악습은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척결해야 하는 대상이다. 악순환의 연결고리를 지금 끊어놓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처음 자부심을 심어줬던 해병대의 모습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누구나 될 수 없는 해병이라는 말 속에 ‘어떠한 악습도 견딜 수 있는’이라는 의미가 있으면 안 된다. 그것은 ‘정의와 자유를 위해 내 한 몸 기꺼이 희생할 준비가 된’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어야 한다. 우리는 안되면 될 때까지 하는 해병이기에 악습 또한 완전히 척결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해병대 창설 초기 선배 해병들이 그러했듯 나의 등을 믿고 맡길 수 있는 가족적인 단결력을 갖춘 전통을 올바르게 찾아가자. 선배 해병들이 보여주신 희생과 헌신, 연대와 협력 정신을 되살려 해병대의 자랑이 될 수 있도록 ‘해병대다운’ 모습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자. <국방일보 병영의창 2022.06.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