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한 원사 해병대9여단
9월 1일은 제주 해병대의 날이다. 이날은 제주 해병 3·4기생들이 6·25전쟁 당시 위기에 놓인 대한민국을 수호하기 위해 인천 앞바다로 출정한 날이다. 해병대는 지난 2001년부터 매년 해병혼탑 참배, 기념식, 참전용사 감사 오찬 등 다양한 보훈 행사로 참전용사들의 헌신·희생을 기리고 있다.
올해로 제주 해병대의 날이 22주년을 맞았다. 이번 기념일에는 코로나19로 대폭 축소됐던 각종 행사가 3년 만에 정상화됐다. 특히 지난달 28일 ‘해병 3·4기 호국관’ 개관으로 선배 해병들의 역사를 다시금 상기하는 좋은 기회가 됐다. 제주도 서귀포 대정읍에 있는 호국관은 1950년 8월, 3·4기생들이 열악한 환경 속에서 고된 훈련을 받으며 출정을 준비했던 실제 막사를 복원했다. 이곳에는 해병대 창설 초기 ‘호국충성 해병대’ 초석을 다졌던 그들의 발자취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1950년 6월 25일 제주도 전역에 전쟁 발발 소식이 전해지자, 죽음으로 조국 수호 대의를 함께 하겠다며 혈서지원을 했던 제주 학도병들과 교사들. 그들의 나이는 대부분 10대 중반(당시 중학교 2~6학년)에서 20대 초반에 불과했다. 급박한 전황 탓에 변변치 않은 무기, 제대로 된 군사훈련조차 받지 못한 청년들이었지만 그들의 가슴은 죽음의 두려움보다 나라를 구하겠다는 뜨거운 결의로 가득 차 있었다. 그렇게 그들은 ‘펜 대신 총’을 들고 전장으로 향했다.
1950년 9월 15일 특유의 전우애와 단결력을 앞세운 해병 3·4기는 인천상륙작전을 시작으로 서울수복작전, 도솔산지구전투, 김일성·모택동지구전투, 장단·사천강지구전투 등 최전선에서 단 한 번의 패배 없이 임무를 완수하며 ‘무적해병(無敵海兵)’의 신화를 이룩했다.
호국관에 전시된 피 묻은 빨간명찰과 총탄이 관통한 철모, 안전귀환을 염원하는 천인침(전쟁에 참전한 사람의 무운장구를 빌기 위해 1000명이 한 땀씩 꿰매어 천을 만들어주는 풍습)과 각종 전투 공적을 바라보고 있으면 ‘애국·애민정신, 끈끈한 단결력, 두려움을 모르는 용맹함과 투지, 싸우면 이기는 강한 군대 등’ 오늘날 해병대를 대표하는 수식어가 어떻게 해병 3·4기에서 비롯됐는지 느낄 수 있다.
호국관 개관을 준비하며 3·4기 선배 해병들을 찾아뵈었다. 이제 상수(上壽·100세)를 바라보는 노병이 됐지만, 6·25전쟁을 회상할 때면 그들은 한목소리로 “다시 그 날이 오면 옛날보다 더 치열하게 싸워야지”라고 말씀하신다.
해병대는 그들의 업적을 담은 호국관을 잘 보존·발전시켜 호국정신과 전통을 계승하고, 국민 안보의식을 고취할 수 있는 교육의 장으로 활용할 것이다. 이를 토대로 해병 3·4기의 발자취가 항상 우리 곁에 살아 숨 쉬도록 하겠다고 다짐한다. <국방일보 병여의창 2022.08.31 인터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