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현섭 중사 해병대 군수단
“적에게는 사자처럼 용맹하고 국민에게는 양처럼 선하라.” 1949년 4월 15일 대한민국 해병대가 창설될 당시 신현준 초대사령관이 강조한 말이다. 우리는 창설 이념을 계승해 현재는 ‘국민과 함께하는 해병대’라는 말을 새기며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지난 8월 경북 포항지역을 휩쓸고 지나간 제11호 태풍 ‘힌남노’의 위력은 예상했던 것 이상이었다. 직접 영향권으로 들어선 순간 창문은 부서질 듯 흔들렸고, 비바람이 몰아쳐 순식간에 주차장에 물이 차올랐다. 덜컥 겁이 났지만 옆에서 생애 첫 자연재해를 경험하며 두려움에 떨고 있는 여덟 살 아들에게 아버지로서 역할을 해야 했다. 태풍이 지나간 후 부대와 포항지역을 둘러보고는 큰 충격을 받았다. 도로에는 물이 허리 높이까지 차서 사람과 차량이 이동할 수 없었고, 건물 유리창은 산산조각 났으며, 가전제품·생필품 심지어 차량까지 인도에 뒤집혀 있었다.
우리는 국가와 국민의 안전을 수호하는 해병대이기 때문에 넋 놓고 앉아 있을 수는 없었다. 우리 부대는 태풍 피해복구를 위해 포항 곳곳에 배치됐다. 피해 가구를 돌며 밀려든 토사를 치우고, 침수돼 사용하지 못하는 가구·전자제품을 밖으로 꺼냈다. 주민들의 따뜻한 응원으로 지치는지도 모르고 구슬땀을 흘렸다. 우리가 가는 곳마다 주민들은 시원한 물과 음료를 내줬고, 또 어떤 집은 꼭 밥을 먹고 가야 한다며 복귀를 막기도 했다. 힘든 상황에서도 작은 희망이 얼마나 중요한지 느끼는 순간이었다.
어느 날 “해병대분들! 우리 좀 도와주세요”라는 외침이 들렸다. 아파트 1층에 거주하는 주민의 집은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었다. 온 집안이 진흙으로 가득했다. 그중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물건이 있었다. 그것은 빗물에 흠뻑 젖은 앨범이었다. 집주인은 복잡미묘한 표정으로 다가와 앨범을 펼쳐 보여 줬다. 빗물에 젖었지만 해병대 구형 전투복에 선명하게 보이는 계급장과 ‘빨간 명찰’이 눈에 들어왔다. 해병대 예비역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필승’ 경례로 심심한 위로의 마음을 전했다.
우리 부대엔 세탁과 건조를 할 수 있는 이동용 세탁 트레일러가 있다. 세탁소에서나 볼 수 있을 정도의 고성능 장비다. 우리는 세탁 트레일러를 이용해 대민지원을 펼치기도 했다. 입소문을 타면서 많은 지역주민이 지원을 요청했고, 가가호호 방문해 세탁물을 수령·배달했다. 전력을 다해 대민지원을 전개한 결과 부여된 모든 작업을 마무리했다.
대민지원 복장에 새겨진 ‘해병대’라는 단어가 자랑스러웠고, 어느 때보다 뿌듯한 순간들이었다. 그러나 포항지역 피해복구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완전한 회복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 우리는 언제나 국민과 함께하는 해병대 일원으로서 지역주민들이 하루빨리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국방일보 병영의창 2022.1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