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준 상병 해병대1사단 킹콩여단
해병대 입대 후 열흘도 채 지나지 않아 후회했다. 평생 운동을 해왔고, 힘들지 않을 거라 자부했던 내 생각은 완벽하게 빗나갔다. 하지만 전우들과 실무생활을 겪으며 조금씩 생각이 바뀌었다. 왜 ‘해병대’하면 ‘전우애’라고 하는지 알게 되면서부터다.
실무부대 전입 후 호국훈련을 하게 된 나는 바짝 긴장한 상태였다. 그런 가운데 본부중대의 주요 임무 중 하나인 주둔지 방호 훈련이 실시됐다. 전투식량을 먹는데 멀리서 공포탄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남들이 방탄복에 철모를 쓰는 모습을 보고 나서야 몸을 일으켜 방탄복을 입기 시작했다. 우왕좌왕 준비하며 남들보다 늦게 공포탄의 발자취를 찾아 달렸다. 대항군은 순식간에 푸른 숲속으로 사라졌다. 소득 없이 주둔지로 돌아오자 선임은 “원래 처음에는 당황스럽다. 근데 그 순간 침착해야 전투에서 동료 한 명이라도 더 구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다음 총성이 들렸을 때는 누구보다 빠르게 무장을 갖추고 전투태세를 취했다. 속으로 뿌듯함을 느끼던 찰나 선임 한 명이 “밑에!”라고 소리치면서 나에게 총구를 겨누는 대항군을 쐈고, 대항군은 자기가 죽었다는 것을 인지했는지 머쓱한 채로 일어났다. 선임에게 고개를 숙이며 미안함을 전달했다. 선임은 “내가 너 구했다”며 웃음을 보였다.
복귀 전날 이제는 총성이 울리지 않을 것 같다고 방심하는 순간 가까운 곳에서 총성이 들렸다. 곧바로 기동 타격 자세로 달려가다 대항군을 보고 나무 뒤에 은폐했다. 나는 포복으로 한 칸 앞의 나무로 전진했고, 대항군은 내가 처음 있던 나무를 경계하며 공포탄을 격발했다. 나는 침착하게 포복으로 전진했다. 적은 나를 인지하지 못했다. 그렇게 대항군의 등 뒤로 진입해 공포탄을 날렸고, 놀란 대항군은 허탈한 표정으로 “대단하십니다”라는 말과 함께 투항했다. 날 구해줬던 선임에게 대항군을 잡았다는 소식을 가장 먼저 전달했다. 선임은 “멋있다”며 짧지만, 진심을 담은 말을 건넸다. 단합된 모습이 보기 좋다는 중대장님의 칭찬을 끝으로 훈련은 종료됐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해병대 오길 잘했다’ ‘전우애라는 게 이런 거구나’라고 생각했다.
해병대는 이런 곳이다. 아무리 무서운 적과 마주친다 한들 우리에게는 무적의 방패가 있다. 바로 동료다. 살얼음 같은 추위에 장갑을 벗어주고, 자신도 배고프지만 동료에게 먹을 것을 건네고, 추운 곳에서 서로 껴안으며 체온을 나누는 곳이 해병대다. 장난스레 “전쟁이 나면 여기서 누가 남아있을까?”라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런데 지금, 이 질문을 나한테 하는 동료가 있다면 “다른 곳은 모르겠지만 우리 부대는 무조건 다 남는다. 그리고 나는 목숨 걸고 전우의 등을 지킬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국방일보 병영의창 2023.06.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