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별 소령 해병대2사단 중앙청대대
군 간부라면 누구나 군인의 길을 선택하게 된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필자는 고등학교 재학 시절, 해군사관학교(해사) 생도들이 모교 홍보 때 선보였던 마도로스의 당당한 모습을 보고 장교라는 직업에 막연한 동경이 생겼다. 그 이후 직업군인이 된다면 대한민국 안보에 미력이나마 기여할 수 있는 명예로운 삶을 살 수 있겠다고 판단해 조국의 호국간성이 되기로 결심했다.
해사에 입교해 장교가 되고자 매 순간 최선을 다했고, 사활을 걸었다. 학교에서 방과 후 운영하는 체대입시반에 짬짬이 참가해 운동법을 배우며 부족한 체력을 보완했고, 쉬는 시간마다 언어·영어선생님을 찾아 논술 등에 관해 조언을 구했다. 필자가 군인이 되는 것을 반대하셨던 부모님께는 해사 필기시험 당일 1교시 평가가 끝나고 나서야 전화를 드렸고, 평가 결과에 상관없이 군인의 길을 걷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진솔한 마음이 전해져서일까? 불호령을 예상했으나 부모님도 아들의 꿈을 인정해 주시고 아낌없이 응원해 주셨다.
돌이켜 보면 그때가 내 삶의 주인으로서 첫 도전이었다. 이후 필자의 삶은 늘 도전의 연속이었다. 졸업 전 마지막 학기에 해군 장교 혹은 해병대 장교의 길을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섰을 때는 ‘어느 길을 걸어갈 것인가’ ‘어느 길이 조국에 더 기여할 수 있는가’에 대해 학업을 전폐할 정도로 몇 주 동안 고뇌했다.
그때 옆에서 많은 조언과 격려를 해 줬던 이는 2년간 룸메이트였던 동기생이었다. 특히 졸업을 앞두고 떠난 여행에서 전국의 군사유적지를 돌며 선조들의 얼과 애국심을 느끼고 토론하면서 진로에 관한 많은 이야기를 나눈 끝에 뚜렷한 신념과 소신을 갖고 함께 해병대에 지원했다. 우리는 지금도 가장 친한 동기로, 삶과 일의 전우로 살아가고 있다.
그렇게 대한민국 해병대 소위로 임관한 뒤 대위가 되기 전까지 해병대라는 조직을 알아가기 위해 모든 시간과 노력을 바쳤다. 대위가 된 뒤에는 특정 분야 전문가로서 국가와 조직에 더욱 이바지하고자 무기체계·국제정세를 깊이 있고 정확하고 알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주경야독하는 노력을 알아주신 지휘관·부서장님이 해당 진로로 나아갈 수 있도록 격려·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덕분에 국방대학교에 입교해 동북아 국제관계연구소 학생 인턴 활동, 국방과학연구소 주관 유·무인 무기체계 개발 프로젝트 참가 등 여러 대외 활동과 연구를 하면서 국방과학 석사를 취득할 수 있었다. 이후 해병대2사단 작전과장 임무를 맡으며 존경하는 지휘관들의 명확한 지휘와 올바른 리더십 아래 철통같은 경계작전을 펴고 있다.
필자는 앞으로도 드론(무인기) 전력, 러시아 관련 연구를 통해 해병대 조직의 무기체계 전력 발전과 국방 기획정책에 조금이나마 기여하고자 한다. 부족하지만 늘 배우고 익히며 앞서 걸어간 훌륭한 선배님들을 따라 한 발 한 발 해병대와 조국에 헌신하는 삶을 살아갈 것이다.<국방일보 병영의창 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