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현 이병 해병대교육훈련단
아버지가 미국에서 공부하실 때 거기서 태어나 의도치 않게 복수국적을 갖게 됐다. 미국에서의 기억은 거의 없다. 아버지의 공부가 마무리돼 우리 가족이 한국으로 돌아온 건 내가 두살 때였기 때문이다.
초·중·고등학교를 모두 한국에서 졸업하면서 당연히 한국인으로 자랐고, 미국 국적을 느낄 틈이 없었다. 아버지께서도 미국 국적을 발판으로 아들이 제도상의 혜택을 받게끔 할 생각이 전혀 없으셨다. 덕분에 여느 복수국적 청년들처럼 병역의무 이행을 고민하지 않았다. 병역은 대한민국 청년으로서 당연한 일이었다.
‘해병대’ 이야기는 우연한 기회에 접하게 됐다. 나는 태권도를 좋아하는 개구쟁이였다. 어린 시절 생활복은 언제나 태권도복이었다. 학업에 매진해 꿈꾸던 공대생이 된 뒤에도 태권도 사랑은 식지 않았다. 수업이 끝나면 언제나 태권도부 도장으로 달려가 겨루기를 하면서 대학생활을 즐겼다.
그러다 내 인생을 바꿔 준 운명의 사나이를 만났다. 태권도부원 모두가 따르는 카리스마 넘치는 선배. 동경의 대상이었던 그 선배가 바로 해병대 출신이었다. “누구나 해병이 될 수 있다면, 결코 해병대를 선택하지 않았다.” 이 말을 입버릇처럼 하던 선배의 모습은 늘 상상해 왔던 이상적 인간 그 자체였다.
그는 삶에 여유가 있었고, 재치가 넘쳤으며, 몸과 마음이 건강하고 매사에 올발랐다. 그를 닮고 싶고 존경했기에 그와 같은 해병대의 길을 걷기로 했다. 험난하고 힘든 여정이 될 줄 알면서도 문을 두드렸고, 해병 1310기로 입대해 당당히 수료를 앞두고 있다. 항상 나를 믿어 주신 부모님께, 이런 변화를 가져다준 선배에게 이 모습을 보여 주고 싶다.
해병대가 가진 변화의 힘을 믿는다. 나와 주변 사람을 건강하고 밝고 자신 있게 바꿔 나가는 해병대의 힘을 말이다. 해병대 선임이었던 대학 선배에게 이끌려 해병대를 선택했고 6주간의 양성과정을 거치면서 올바른 안보관·건강한 신체·진취적 사고방식을 가진 ‘고영현 해병’으로 거듭난 내가 그 증거다.
사회로 돌아가 온전히 한 사람의 몫을 해내기엔 아직도 해병대에서 바꾸고, 해병대로부터 교육받아야 할 게 많다. 앞으로 맞게 될 1년 6개월의 실무생활 동안 그룹을 통솔하는 리더십과 상급자의 지도를 따르는 팔로어십, 잘못된 일에 휘슬을 불 수 있는 용기, 불의에 타협하지 않는 정의감을 배워 나를 바꿔 나가겠다. 태권도부 선배로부터 영향을 받아 변화했듯이 나도 주변에 건강한 영향을 미치는 또 한 명의 강하고 멋진 해병으로 거듭나겠다고 다짐한다. <국방일보 훈련병의 편지 2024. 11.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