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은 해병대전략연구소 이사장님이(전 국방부장관, 전 해병대사령관) "해병대 역사와 전통"이라는 주제로 2005년 3월 14일 해병대사령부 전장병을 대상으로 실시한 강연 내용입니다. 관리자 02)318-3049 자료출처 : 해병대전략연구소 해병대의 역사와 전통 _ 강연내용 먼저 바쁜 시간을 이렇게 할애해 나를 영접해준 김인식 사령관을 비롯한 참모, 장병여러분들, 이 자리에 참석하신 공정식 사령관과 전략연구소 이정윤 소장, 간부여러분, 이렇게 참석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목은 ‘해병대 역사와 전통’ 이렇게 했지만 이 시간에 다 이야기하려면 시간이 제한되어 다 말씀드릴 수 없고 오늘은 미국 해병대와 우리가 어떻게 만났고 한국 해병대가 어떻게 이름도 없었는데요, 625전까지는 ‘해병대’라는걸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요. 625전쟁 발발이후에 해병대가 급속히 우리나라 사람들 뇌리에 놀라움과 경이로움을 가지고 다가섰는지와 그 후에 한미 해병대관계가 어떻게 발전해왔고 오늘의 관계로 유지가 되었는가 하는 것을 간결하게 말씀드리고요, 또 한미동맹이 왜 꼭 필요한가, 거기에 대한 필요성을 말씀을 드리고 결론을 맺으려고 합니다. 시간내 될는지 안될는지 모르지만 생각 나는대로 몇 마디 드리겠습니다.
젊은 이들은 흔히들 그럽니다. 패기가 있고 용맹이 있고 추진력이 강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나이든 사람들, 우리같은 사람들 보다는 아무래도 경험이 좀 모자라고 지혜가 좀 모자라는 것 같아요. 우리 늙은이들은 집에도 그러자나요. 노인네들 이야기 할아버지 아버지 이야기를 듣는 집안은 잘되고 부모이야기를 업신여기는 가정은 잘 안됩니다.
왜그러냐. 할아버지 할머니 들은 오랜 생활을 하는 동안 많은 경험을 쌓고 그 지혜가 젊은 사람보다 많은 거에요. 오늘은 공사령관님도 왔지만 내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해병대에 대한 나의 지식을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림으로써 앞으로 우리 해병대가 나아가는데 참고가 되지 않을까하여 나왔고요. 둘째는 작년 11월 23일, 내가 80회 생일이었습니다. 여러분이, 김인식 사령관이 전 예비역 사령관을 초청하고 특별 의장대 행사를 나를 위해서 배풀어 주었습니다. 오찬 마련해 주시고 생일 케잌도 마련해 주시고 해서 내가 그 자리에서 너무 감격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내가 해병대를 그만둔지가 42년 됐어 ............62년도에 해병대 사령관을 그만 두었으니까........작년에 하니까 꼭 42년이면 되더라고..........10년 이먼 산천이 변한다는데...........42년이면 산천이 네 번도 더 바뀌었을 텐대..어떻게 그때 사령관을 기억하고 80회 생일이 되었다고......이렇게 성대한 특별 의장대 까지 내주고..이런 군대가 또 세계에 또 어디있겠는야 하는게어요 해병대를 제외하고 ....... 나는 국방장관도 해 봤고.다른 여러보직 해봤지만 ......있을 때만 그 앞에와서 굽신거리다 그만두면 획 돌아서는게 우리나라 사람인데 한국 해병대는 어떻게 된 군대기에 42년이나 된 사람을 데려다 생일축하까지 해주는 부대가 이 지상에 어디있는냐 내가 너무 감격스러워서 내가 장관한거 보다 해병대 사령관한 것을 명예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때 내가 해병대를 떠났지만 우리 해병대 장학회를 생각해서 신사령관님이 초대 사령관이었는데 자기 유산을 정리해서 1억원을 장학금으로 쓰겠다고 오늘 나도 가지고 왔습니다. 1억을 가지고 와서 해병 장학금 김인식 사령관에게 오늘 전하고 얘기를 하렵니다.
본론에 들어가겠습니다. 내가 해병대를 창설한다고 해서 신현준 사령관께서 처음에 나보고 해병대 참모장을 맡아달라고. 그분이 나보다 선임이고 한 계급 높은 분이었어. 해군 진해기지에 참모장을 하고 계실땐데 날보고 참모장을 맡아달라고. 우리집에 와서 부탁하더라. 보통 분이면 사물실에 불러서 어이, 그 때 내가 중령인데 김중령 자네 참모장좀 맡아주게 할텐데 아 이분이 부인하고 같이 집에와서 무릎을 꿀고 머리를 숙이면서, 하급자 한테 말야. 그래서 아 사령관님 이러시면 안됩니다. 저는 자격이 없습니다. 나는 해병대라는게 뭔지도 어찌 감히 해병대 참모장이라는 자리를 맡겠습니까? 다른 장교들도 있으니까 유능한 장교한테 맡겨라 나는 못하겠다. 그런데 세 번이나 동부인해서 찾았왔어. 그런걸 난 첫째로 해병대를 전혀 모르니까 자신이 없다는거. 둘째는 해군에 해병대가 지상부대로 기지보초나 서고 군함에 보초나 서고 그럴정도의 부대라면 부대가 커 봤자 해군의 5분의1이나 6분의 1이나 작은 부대일텐데 대한민국 해군자체가 작은데 장래성도 없고 해서 못 가겠습니다라고 했는데 이분이 세 번이나 찾아와서 집에와서 무릎을 꿀고 부탁하는 거야. 사령관님 이러시면 제가 민망해서 않되겠습니다. 정말못하겠다, 나중에는 너무 그러니까 거절하는게 너무 황송하고 그분의 인격에 머리가 숙여졌다. 어쪄면 이런분이 있는가 세상에. 내가 자기 부한데 내가 뭐기에 이렇게까지 나를 필요로하는가. 나중에는 삼국지에 나왔던 삼고초려가 생각나서 이런 제갈공명이라는 분도 유현덕이라는 덕망에 머리가 숙여져 갔다는데 내가 뭐기에 그러겠느냐. 나중에는 사령관님 내가 아무것도 모르는데 사령관님의 인격에 머리가 숙여져서 견마애로를 다하겠습니다. 그래서 해병대 갔어. 해병대 전혀 몰랐어.
625전쟁이 나서 해병대 처음 만난 것이 진동리작전이었다. 1950년 8월 6일이었다. 미 해병대가 부산에 상륙해서 마산으로 와서 마산에서 진동리로 왔는데 진동리는 낙동강 방위선의 맨 좌측이다. 그리로 어떤 부대가 왔냐하면 인민국 6사단 사단장이름 방호산 범호자 메산자인 방호산 사단장인데 이 사단은 중국군대 있었는데 장개석 군대를 대륙에서 몰아 대만을 내쫓는대 앞장선 한국사람 부대다. 그것을 중공군에서 받아서 역전의 용사들이다. 제일 강하다고 하는 방호산 사단이 진동리 저 전라도 평양을 우회해서 파죽지세로 내려온 것이 진주. 진주에서 육군참모총장으로 계시던 최병덕 장군이 하동이라는데서 전사를 했어. 그 6사단하고 싸운는데 나갔다 전사를 했다. 그 사단이 마산 진동리로해서 김해로 부산을 점령하려 들어오는 거에요. 거기서 우리가 싸우고 있는데 미 해병대가 들어 왔어. 그날 얼마나 더웠는지 40도쯤되는 찌는듯한 여름이었는데 뭐 길 옆에 있는 담벼락 밑 호바잎파리가 축 늘어저 말라죽기 일보직전이었다. 식물이고 동물이고 축 늘어져있는 그 더운 볕에 오후 2시쯤 되었는데 미 해병대가 들어왔다. 더운데 전부 배낭매고 철모 썼는데 철모에는 해병대 독특한 위장망을 얼룩덜룩하게 쓰고 군복을 보니까 육군들은 초록색인데 미해병대는 초록색이 아닌 군함색이었다. 연한 회색인데 가슴에 보니까.usmc라고 되어있고 배낭에는 보니 판쵸, 우비, 개인호를 팠을때는 천막이되고 비올때 입으면 우비가 되고 판쵸를 말아서 배낭에 걸고 그 안에는 담요, 침낭을 말아서 배낭에 넣고 다리에는 각반을 쳤어. 각반을 아세요? 노란색 각반을 모래가 안들어가게 무릎아래 치고 있는데. 희한한 군대다라고 생각했다. 이 사람들이 미해병대구나. 그래서 내가 유심히 본거에요. 내가 해병대 참모장인데 아는 것도 없고 어디서도 해병대 재료를 얻을 수 없었고 누구한테 물을 수도 없고 아는사람도 없고 해서 내가 제일 먼저 이사람들 알아봐야겠다 해서 그사람들이 들어오는 것을 유심히 봤는데 포플러 나무 가로수가 서있고 가운데는 자갈 길인데 흙길인데 먼지가 뽀얗게 일어났다. 길 가운데는 미 해병대 차량부대들이 들어오는 거야. 짚차 엠뷸런스, 유선가설하는 자동차가 있는데, 미 해병대는 유선가설용 자동차도 무한트랙이야 탱크처럼, 논에도 들어가고, 밭에도 들어가고 산에도 올라가는 .....무한궤도 차량.으로 만들어논 짚차크기 차량도 있고.........그런것도 있고, 수륙양용차도 들어오고 세상에 못 본 장비들이........길 가운데로 들어오는데..탱크도 있고.포도있고 .........육군들이 갖고 있는거 다 갖고 들어오고, 아 대단한 군대가 들어오는구나. 그날부터 미해병대 코르세아라고하는 함제기 .........,,,,근접지원용...코르세아가 굉장히 느리더라. 독수리 날르는 속도로ㅗ....서서히 땅바닥으로 내려오더니......산 골짜기들 돌다 쑤욱 올라고고 공중에 돌아다니는데 미해병대가 오자마자 미행기들이 공중에 와있다 하루종일 대기한다. 지상부대에서 요구만 하면 그 자리에서 에어스트라이크 들어가는거야 육군들하고 다른게 내가 해병대라고 해서 보고 맘에 느껴서 그런지 몰라도 완전히 다른 군대구나. 예전에 태평양 전쟁때 일본군이 그렇게 독종이었다. 가다루카나루, 유황도, 오키나와 그 요새에서 일본군인들이 전멸했어 옥쇄라고 해서 전원이 죽었는데 그들을 부시고 온 부대니까 얼마나 강할까 했는데 진짜 그래.
하루는 그담날 아침인데 5연대 3대대가 있는데 대대장이 있는데 내가 가서 해병대라구 해서 찾아보려구 혼자 갔어. 갔는데 대대장이라는 사람이 중령인데 이름이 탑블렛이야. 볼 기회가 있으면 다크호스 6 라는게 있어. 탑블렛이라는 중령이 쓴 한국전 참가시 쓴 책인데 그 책에 나오는 대대장 그 사람이야. 5연대 3대대 본부에 들어갔어. 가서 얘기를 하려는데 영어가 안되자나. 그래 내가 KMC라고 이거를 보였더니 그사람 이 왓이즈KMC라고 묻더라. 그래서 코리안 마린코어라고 하니까 발음도 시원찬고 하니까 한참하더니 아 알겠다고. 몇이나 당신들 와있나 500명 정도 여기 얼마동안이나 싸우고 있었냐 열흘 이상 전쟁하고 있다. 내일 아침에 저 진주로 처들어 가겠다고. 한국해병대 우리하고 들어자가고. 근데 작전 명령은 미국 육군에 작전지휘하에 있는데 거기서 명령이 없으면 그렇게 못하자나.
우리부대는 완전이 패잔병이나 매한가지였어 우리 해병대 창설초기에 옷이 없어서 광목에다 시퍼런 국방색 잉크같은거 물들여 입고있었는데 철모도 없어서 철모 쓴사람 안쓴사람. 신도 운동화 군화신고 있는사람, 총도 99식, 엠원, 카빈도 몇게 있고 우리는 완전해 패잔병 같은 부대였어.
무전기도 없고 통신기도 없고 어디 연락하려면 전령을 보내는거야. 내밑에는 항상 각중대에서 전령 3명이 나와있어. 중대 3개 있으니까 9명이 내가 얘기하면 그 얘기를 듣고 전하려면 밤에라도 가는 거야 가다보면 자기 중대장이 어디 있는지 몰라 전달이 안돼. 그러면서 사람이 쫓아다니고 또 명령하면 제2전령이 가고 사람이 다니는 그런판인데 미해병하고는 천양지차
그 다음날 아침 전투가 있었는데 우리는 같이 안가고 남아있었는데 미 해병대사람 참 용감하더라 진동리에서 처들어가는데 아침 6시 공격하는데 괴뢰군들이 박격포 야포로 도로로 진격하는걸 타격하는데 미 해병대 엎드리는 사람 없어 당하는 사람은 엠불로 후송하고 가는 사람은 그대로 가는 거야 앞 고지에서 적이 쏘니까 근접지원하는 비행기가 저공비행해서 네이팜탄 로킷 폭탄 기총소사하며 들어가는데 그냥 올라가더라 우리하곤 다르더라 우린 적이 쏘면 엎드리고 잘 움직이지 않는데 미 해병대는 그대로 가더라 다치는 사람 죽는사람 그냥 두고 전진하더라 대단한 군대라고 생각했다.
그때 헬리콥터를 처음봤다. 산허리로 둘둘둘둘하는게 날아오더니 잠자라갔은게 말야 프로펠러가 ㅟ에 두개가 돌더란 말야. 저게 비행긴지 뭔지 논에 앉더라. 그러더니 거기서 문을열고 사람이 내리는걸 멀리서 봤는데 저게 뭔가 하는데 누가 헬리콥터라고 하는거야. 세상에서 처음봤다. 후에알았는데 미 해병대가 처음으로 헿리콥터를 개발했다 하더라. 그사람들이 한국전에 제일 먼저 가져온게 5연대 헬리콥터 였어. 그때부터 이제 해병대가 들어갔다 나오고 해서 직접 우리와 관계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통영전투를 하고 인천 상륙작전을 했는데 인천상륙작전 할 때도 미국해병대가 없었다면 우리 해병대가 육군으로 갈뻔 했다. 신현준 사령관이 제주도에 계실 때
제주도에서 모병을 했는데 제주도 오현중고등학교, 서귀포 성산포 학교들이 있었는데 모병을 했더니 3000천명의 고등학교 학생들 교사들이 응모해서 왔습니다. 이 3000면을 인솔해서 부산으로 나왔는데 신성모 국방장관이 대구에 있었어 해병대 사령관 급히 대구로 올라오라 신현준 사령관이 대구로 올라갔더니 신성모 장관이 자네 해병대 사령관이지. 몇 이나 데리고 왔어. 한 삼천명됩니다. 자네부대가 뭣이 필요하지? 우리 아무것도 없고 학도병들 학생복입고 다 왔다. 군복이고 뭐고 군장일체 무기도 필요하겠구만. 예 필요합니다. 다 줄테니 당장 이부대를 데리고 영천 안강전선으로 가라 신사령관님은 본래 군인출신이고 상관의 명령이면 절대복종이고 하니까.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장관과 약속하고 부산으로 내려왔다. 와서 해군 참모총장 손원일 제독에게 보고를 하니, 손 제독께서는 영어를 잘 했다. 이분이 미국 해군하고 자유롭게 대화도 하고 해서 사정을 잘 알았는데 가지마. 다른데 쓸때있어. 어딥니까? 그건 묻지마. 극비기 때문에 말 할 수 없다. 거긴 가지 마라. 국방장관에겐 내가 잘 얘기하겠다. 해병대 사령관 내말 듣고 가지 마라. 그래서 안 갔는데 그 다음날부터 군복, 철모, 총, 대검, 무전기, 보급이 막 들어오는거야. 거기서 학생복 다 벗고 총, 철모 다 가졌는데 배를 타라는 거야. 그래서 우리 해병대가 배를 타고 인천으로 가는데 부산 떠날 때 까지 인천으로 간다는 걸 아무도 몰랐다.
저 제주도 남방 서귀포 앞바다를 돌아설 무렵 브리핑 할 때 인천이라 했다. 다음 공격목표는 서울탈환이다 그때 알았어. 그때까지는 아무도 몰랐어 그래서 인천상륙작전에 해병대가 상륙전에 참가하게됐는데 그때 만약 육군에 갔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총 한번 쏴본적 없고 제식교련도 받아본적 없거든
이런 오합지졸이지. 군복만 입었지 순전히 오합지졸인데 이사람들이 안강 거기가 한국육군이 맡았던 급한곳인데 갔다면 해병대 전멸했을 거다.
손원일 해군참모총장이 해병대하고 잘 알라서 인천 상륙작전하는데 해병대를 데려갔다. 그래서 해병대가 미국해병대 따라서 인천상륙작전 했습니다. 여러분은 우리 해병대 전사도 그렇고 신문에도 났지만 우리나라 수도를 우리 국군, 육군과 해병대가 탈환했다 해야 체면도 서기 때문에 우리 작전했던 것을 과장해서 한국해병대가 마치 다한 것처럼 이렇게 좀 한 것도 이지만 사실은 미국해병대가 오합지졸 같은걸 전방에 내 놓을 수 없자나요 그래서 각 연대마다 한국해병대 대대를 자기네들한테 배속을 시켜서 후방에 둬서 포로를 잡으면 포로수용소에 넣는거 도시에 남아있는 장비 공산군들 숨어있는 것 그런 임무를 서울에 들어올때까지 그걸 시켰어 앞에 내 놓으면 무슨 짓을 할지 모른 거야 한국해병대.
오발이 얼마나 심했는지 총도 만져보지 않은 사람들이 총을 갖고 있으니까 퉁하고 하면 몇사람씩 오발로 쓰러지는거야 오발 사고를 맊는라고 공정식 사령관 대대장 할 때까지 그랬지. 오발사고가 그때까지 끊이지 않았어. 하도 오발하니까 오발하는 사람은 총살한다고 엄명을 내렸어. 일부러 가짜로 총살하는 것도 보였어. 실지로 쏘지는 않고 탁 쏘면 팍 쓰러지고 저 놈 참 죽었다 그런 거 까지 쇼를 했다고. 하도 오발 해서. 우리 전투력이라는게 형편 없는가 그것만 봐도 알거다. 미국해병대가 우리를 키워주는거야 마치 세살먹은 유아를 키우는 것처럼 키워준거다. 여기 오기전에 사령관실에 잠깐 들렸는데 거기 손원일 해군참모총장이 우리 해병대 창설 3주년 되는 1952년 4월 15일날 창설된지 3년째 되는날 해병대에 대한 글을 보냈어. 나는 해병대가 정말 자랑스럽다. 창설된지 불과 3년 됬는데 그 전투력이며 전력이며 국민에대한 신뢰감이며 투지며 단결력이며 30년된 사람과 같다고 사람으로 말하면 3살 짜리가 30년 된 사람만큼 성장했으니 정말 자랑스럽다고 말씀이 계시고 다음에 자만하지 말고 앞으로 더 열심히 해서 이 전통과 명예를 이어나가도록 하라는게 다음에 이어졌어.
늘 사령관실 갈때마다 손원일 참모총장님 남기신 글 읽으면서 3년 밖에 안된 해병대가 아까 말한 것처럼 유아 젖먹이 같은 것을 누가 이렇게 만들어 줬는냐 미해병대가 그렇게 해 준거야. 거기에 미 해병대가 우리 연대에다가도 수석고문 작전고문 정보 군수 고문 공병 항공연락장교 함포연락장교 포병연락장교 전부 연대본부에 보내줬어 그뿐 아니라 대대본부에도 보내줬어 대대장하고 함포연락장교가 따라다녔다. 항공연락장교. 작건장교 그래성 우리 하는 것을 전부 가르쳐주었습니다. 아까 사병들이 오발한다고 했지만 장교들도 형편없었다. 해군에 있던 사람들이 해병에 왔으니 뭘 암니까. 해군 군함에서 내린 사람들이 해병대 사병만 3000천명 가지고 않되자나요. 장교들이 있어야 소대장, 중대장, 대대장 있어야 하는데 이 사람들을 해군에서 데려오다 보니 해병대 기초훈련이 없었다. 그때 미국사람들이 작전명령을 보내는 것이 오버레이 명령이었다. 아무 지도도 아니고 그냥 종이에다 목표를 정해놓고 전투경계선을 그려넣고 공격출발선 H-hour 몇날 몇시. 이게 뭔지 모르겠더라고. 아무도 몰라. 내가 어느 대대가서 우리 고문한테서 불평이 많이 오더라고 1대대가 6시에 공격해야하는데 전연 안움직입니다. 일어나지 않은 놈도 있고 이빨닦는 놈도있고 6시 공격을 안합니다. 나가봤더니 진짜야 왜 공격을 안하고 있냐 하니 밥을 먹어야죠! 밥을 먹어야 싸우지 굶고 어떻게 싸움니까? 어디서 밥을 해 먹냐? 야외에 솥을 걸어 놓고 국을 끓이고. 요새그 불멸의 이순신 저녁에 하는 프로그램. 임진왜란 때 한국 수군들 그 사람들이 저 버판에 퍼질러 않아 숟가락으로 국떠먹고 이런 식으로 하는 거야 우리 군인들이. 그렇게 장교들도 그랬고 사병들도 그렇고 이런 군인들을 데리고 미국 해병대도 굉장히 속이 탔나봐요 1대대장으로 계시던 고길훈 장군이 있었는데 그때 고길훈장군이 대대장 할땐데 메이저 블루 라고 하는대대 고문이 하도 잔소리하니까 메이져 블루만 오면 돌아앉는거야 저사람만 보면 소화가 안된다고. 미국사람 그럴수 밖게 없자나요 작전명령을 내려도 이게 뭔지도 모르고 공격 H-Hour 면 떠냐야 되는데 작전 명령을 봤자 뭔지도 모르고 그러한 작전을 했습니다. 나중에는 서울을 탈환할 때는 104고지라고 연희대앞 지금 세브란스병원 근처였는데 거기 고지를 에어 스트라이크를 하고 1대대가 올라가 점령을 했는데 미 해병대 뒤만 따라가니까 이제 서울 탈환은 우리가 했다는 것을 신문에도 내야 하자나요. 그래서 손원일 해군 참모총장이 요구를 했어. 이번에 여기 탈환하는 것은 한국해병대가 해야겠다. 그래서 좋다 미국해병대가 빠지고 한국 해병대 1대대가 나갔어 그래 공격준비 사격을 하고 올라가는데 온 외신기자들이 다 와서 사진을 찍는 거야. 다 한국해병대가 얼마나 잘 싸우는가 보는데 인민군들이 얼마나 독한 놈들인지 우리는 전사면 진지를 대게 만드는데 미국 해병대에서 탱크가 나와 탱크로 두드리고 전사면을 에어스트라이크 하고 야포를 가지고 전사면을 뚜드리고 했는데 올라가 보면 적이 그대로 있는 거야. 괴뢰군들은 방망이 수류탄이라고 자루가 기다랗게 있는 맥주병처럼 생겼어. 자루를 잡고 던지면 더 멀리 가는데 배사면에 숨어 있다 우리 군인들이 뛰어서 헐떡거리면서 고지 꼭대기에 올라가면 배사면에서 방망시 수류탄을 일제히 던지는 거야. 하나 하나가 떨어지면 괜찮을 텐데 다섯 개 열 개 일제히 떨어지면 맨 선두에 섰던 사람들이 다 다쳐 밀려내려오는 거야. 위 사람이 밀려내려오면 아래 사람들이 따라 밀리는거야.
이짓을 몇 번하니까 104고지는 전초기지였으니까 주저항선이 아니었어 그것은 빼앗았는데 연희대학 고지에는 김일성 친위대가 나왔어. 이놈들은 다리하고 다리에다 쇠사슬을 묶었어 도망 못가게. 결사대들인데 우리가 올라가면 아까 그식으로 꼭대기에서 때리고 때리고 하는 바람에 우리 해병대가 손해를 많이보고 결국 빼앗지 못하니까 미해병대 5연대가 다시 들어갔어 그것도 아까 말했던 3대대 타플렛 대대가 들어갔는데 그대대가 그 산을 빼앗는데 이틀이 걸렸어 그리고 우리한테와서 브리핑을 하는데 대대 병력이 800명이었는데 끝나고 나서 전투 병력이 400명 남았더라는거야. 400명의 사상자를 그 고지 탈환하는데 희생했다. 그래서 서울을 탈환했지만 해병대가 굉장히 미국해병대에 의해서 훈련을 하나하나 실전훈련을 받은거야. 그사람들이 우리 손을 붙들고 오버레이가 어떤건지 가르쳐주고 지도에다 맞추는 것도 가르쳐 주고 부대표시, 독더법도 가르쳐 주고 이게 실상이었어 우리가 갑자기 이렇게 된게 아니야 나는 여러분께 말하지만 이 세상에 여러나라가 해병대 갖고 있는데 대만 영국 불란서 인도네시아에도 있고 하지만 그런 해병대하고 관계보다는 다 각자가 갖고 있는 거지만 한미 해병처럼 어린 젖먹이를 데려다 이렇게 키위 3년동안 강력한 한국 한국해병대를 키워준 것은 그분들이 없었으면 생각도 못했을 거야. 육군들은 한국해병대가 커지는 걸 굉장이 미워했어 서울도 우리 한국해병대가 탈환했다고 하니 육군얼굴이 다 쌍통이 깨지는거 아니야 그러니 해병대가 미워서 저느무 새끼들 빨리 없어졌으면. 근데 미 해병대가 계속 키워주어서 성루탈환도하게되고 그때우리는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지도위에 표시되어 있는 부호도 알고 포병부호 공병 탱크 보병 부대 단위 표시 부대 전개 탈취 목표 전부 그때 공부해서 현지에서 그만큼 배워서 올라간거야
그다음엔 이북에 들어갔는데 여러 가지 작전을 하다 제일 곤란한게 추위 때문에 고생했다 미 해병대도 장진호에서 4000명의 사상자가 났는데 반 이상 얼어서 죽었어 고드름처럼 얼은 죽은 시체를 로프로 목을 메어 스키 끄는 것처럼 눈 위로 끌고 함흥까지 끌고 내려와서 죽은 사람도 있었다. 미국 해병대를 보고 내가 놀랜 것이 전우애가 그렇게 뜨거운거 처음봤어 처음에는 장진호에 조신이라고 함경북도 추운데 꼭대기까지 올라갔을때 중공군이 7개사단이 포위를 했다 미 해병대를 한개 사단을 7개사단이 포위를 했는데 빠져나갈 길은 하나 밖에 없었다. 산을 꾸불꾸불 올라가는것.
곂곂이 중공군이 끊어버린거야. 근데 마침 그때 장진호 호수가에 조그만한 비행장이 있었다. 비행장에서 사람들을 비행기로 함흥으로 빼는 것이 어떻겠냐 하는 안이 나왔다. 그래서 작전참모하고 사단장 연대장들이 모여 하는데 제일 문제가 뭐냐하면 이 비행장을 누가 경비하냐 하는 거였다. 적어도 1개 대대가 경비를 해야 빼서 싣고 가겠는데 맨 마지막에 철수 할 때 이 대대하나는 완전히 다 죽는 거야. 비행장 경비하는 대대는 누가 막아줄 거야. 그때는 앉을 비행기도 없는 거고 그거는 중공한테 포위되서 대대하나는 날아가는 거야. 그래서 그때 사단장이 스미스라는 사단장인데 우리 해병대는 어느 누구하나 죽게 내버려둘 수 없다.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사는게 해병대다. 우리는 지금부터 공격이다 공격방향은 남쪽. 함흥이 우리 공격목표다. 그리 가기 위해 우리는 겹겹이 쌓여있는 적을 우리는 격파하면서 나간다. 여러분들은 그 심정을 알겠는가? 어느 대대하나 하나를 알면서 죽게 만들수는 없다 이거야. 해병대는 사단장이하 죽어도 같이죽고 살아도 같이 사는게 해병대 전통이다. 이래서 그 험난한 길을 그렇게 많은 사상자를 내면서 사천명의 사상자를 내면서 빠져나왔다. 포를 한 문도 탈취당한게 없어. 사단에 포병이 155mm 105mm 있었는데 72문의 포가 있었는데 미 해병대는 포 한문도 탈취 안당하고 몽탕 다 나왔어. 그런것도 우리해병대도 많은 공부가 될 줄알고 여러분들 이런 것은 기억해 두면 좋겠다. 어느 대대 하나 비행장 경비하는 대대를 희생시킬 수 없단말야. 그걸 다 살리기 위해서 그렇게 험난한 길을 떠났던 걸 아는 사람 별로 없었던거 같다.
그다음 흥남에서 철수할 때 저 중공군들이 저 평양 지금 평안남북도 있는 그쪽으로 밀고 와서 원산까지 밀고와서 점령해벼렸어. 그런데 그 위에 함경남북도로 들어가있던 유엔군 한국군 우리 한국해병대도 가있었는데 육로로는 빠져나올 수는 없고 할 수 없이 흥남 부두로 해서 한국군하고 미군하고 다 나와야하는데 그때 한국군과 미군하고 합쳐 군대만 10만명, 군수물자가 35만톤. 35만톤 물자와 인원 10만명을 빼내와야 하는데 함경남도에 들어갔더니 많은 비난민들이 환영을 하면서 인민군들이 어디숨어있다 하면서 우리 군인들이 토벌하고 했는데 이사람들도 우리가 나온다고하면 다 죽게되었자나. 이 인원들이 공교롭게 10만명이야. 군인 10만 피난민 10만. 그때 군단장이 알몬드라는 소장인데 자기는 군인 철수도 배가 모자라 철수시킬 수 없다 하는데 마침 해병대 커널 포니라는 대령이 있었는데 이분이 10군단 참모부장이었다. 이 참모부장 포니하고 내가 데리고 있던 통역이 현봉학이라는 분이 있었는데 그분 고향이 함경북도 함흥이었어. 이분하고 포니하고 굉장히 친했는데 피난민도 데리고 나와야겠다 해서 군인들만 철수하는게 아니라 피난민 철수하느라고 미국군대 철수하는 차량빼는데, 자동차 실는데 자동차 적재함에 피난민 올려놔라 차 바퀴 밑에 넣고 탱크 바퀴 밑 탱크 탑 실을 수 있는데로 피난민들 데리고 가야한다고. 이사람들 대부분이 크리스찬인데 크리스찬을 죽게 내버려두면 안된다고 이사람들 꼭 데리고 가야한다고 현봉학이하고 포니하고 알몬드 군단장에게 세 네 번 찾아가서 항의를 했다. 결국은 알몬드 군단장이 그대로 수용해서 그 배에, 그식으로 군수물자 사이에 끼어넣어서 피난민들 빼오고 빅토리아호라고 하는 수송선가져오라 해서 그 빅토리아 호에 만 사천명이 탔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탔는지. 그사람들이 화장실이 없자나 그래서 바닥에 신문지에 배설해서 바다에 던지고 나중에는 종이가 없으니까 어떻게 똥을 누는가 하면 배 난간을 쥐고 궁둥이를 물위로 해서 바로 물로 떨어지게 그래서 잘못하면 물에 떨어저 죽는거다. 그런데 배가 바로 가면 좋은데 흔들리니까 설사한 똥 줄이 주루루 나있는거야. 여기 뭍어가지고. 이거를 바람에 마르니까 이늠이 안떨어져. 그래가지고 그 수송선에 만 사천명을 싣고 거제도에 내려놓고 했는데 거제도에 비석을 세웠는데 금년 5월 27일 세웠는데 피난민들 정착해서 살았다는거 그렇게 해서 피난민들 빼 냈는데 미 10군단에서는 공병물자, 철조망 목재 유류같은거 실으러 들어온 배가 있었는데 그말자를 부두에 쌓아놓고 폭파시켰다. 그대신에 그 배에 피난민들 태웠다. 물자가 더 소중한가 인명이 더 소중한가. 물자를 버리더라도 사람살려야된다. 10만명을 그렇게 수송했다. 나는 이거 잊지를 못해 세계 어느나라군대가 말이지 그나라에와서 우리 피난민들 살린다고 군수물자 폭파시키고. 그렇게 우리는 그런사람들의 은혜를 잊으면 안돼. 그걸 했던 사람이 포니 대령 미 해병대야
그리고 거기서 미 해병대가 너무 추우니까 해군 파카를 우리한테 줬다. 함상에서 입는 해군 파컨대 군함 함상용 파커 코트를 비행기로 실어다가 해병대 철수하는데 긴급수송했다. 그게 우리한테도 왔다. 그걸 입으니 얼마나 따뜻한지. 그게 훗날에 중동부 전선에 공병식 사령관과 연대를 편성해서 중동부전선에 나갔을 땐데 육군들은 보니 너무 추워서 저녁이면 산 능선에 모닥불을 피위서 불이 빨갛게 보이는거야. 야간에 교통호에. 그래 앉아서 불 쬐고 있는거야. 그걸 괴뢰군들이 왜 공격을 안하겠어. 왜냐면 옷이 너무 형편없었어. 3군단이 다 무너졌는데 우리 해병 연대가 들어갔더니 공정식 장군 지금도 이렇지만 예전에는 수염히 시커먹게나고 키가 장대하고 일본 군도까지 들고 할때 보면 일본 사무라이 대장 같았다. 대대장이 내려서 군단장한테 가더니 적이 어디있습니까? 군단장이 저기 보이는 산있는데 저기라고 다 도망갈 준비를 다하고 작전 상황판 베니어 판에 그린걸 트럭에다 싣고 자동차 방향은 남쪽으로 돌리고 요이땅 하면 그판에 우리가 들어갔어 신사령관님하고 나하고 공사령관하고 들어갔더니 해병대 잘왔어 공사령관이 어디를 뚜드릴까요 아니까 저기 보이는 맨 저기라고
그래서 1대대를 하차시켜서 들어갔는데 가보니 별것도 아닌거야. 괴뢰군둘도 너무 춥고 배고파서 이것들도 빈사상태야 포도 없고 있어봤자 따발총 수류탄있고 한데 우리해병대가 가니까 육군들이 우리르 보고 놀래서 해병대 1대대가 차에서 내려 정렬을 하는 것을 보더니 이거는 미군보다 더 좋고 씩씩하다 말이야. 내 육군 사단장 안하고 해병대 대대장 할래 그럴 수밖에 없자나요 미국 해병대식 무기 다 가지고 파커입고 키도 크고 건장한 사람들이 정렬하는 것 보더니 나는 사단장 안하고 해병대 대대장 하겠다. 얼마나 우리도 고무가 되었는지 가보니 우리 육군도 빈사상태야 괴뢰군도 잡아보니 빈사상태야 그런데 우리 1대대가 가니 추풍낙엽이지. 대대장이 이리 무서운 사람인데 한번은 포로를 잡았는데 여자야. 연대장님 여자포로를 잡았는데 눈요기좀 하지요. 에이 공사령관 당신이나 하라고. 빨리 보내라 쓸데없는짓 하지 말고 그런 에피소드도 있지만 우리 해병대가 가는데는 거의 육군지역에 가니까 괴뢰군들도 그렇게 굶어서 비실비실 하고 우리 한국군도 그렇고 사실 가보니까 육군이 너무 불쌍사더라고 도돠줬으면 도와줬지 도움받을 것 하나도 없더라 거기서 전쟁 계속해서 쓸고 올라갔는데 지금 용평스키장있자나, 영월에서 용평 스키장까지 산을 그대로 걸어올라갔다. 용평스키장 산 꼭대기에서 보니까
서울에서 강릉으로 다니는 자동차 길이 보이더라. 육군 트럭이 지나가고 있었는데
그걸 보니 눈물이 나더라고 하도 중동부 전선에서 얼음 속에서만 자고 먹고 얼음물을 건너고 자동차라고 한대도 쓸데없어 지형이 그러니까 눈속에서 자고 나중에 거기까지 갔는데 도로르 만난 기쁨에 눈물이 쏟아 지더라고 그렇게까지 얼음속에서 전투를 했는데
화천 춘천에서 싸움할때는 미국해병대 5연대가 우리 좌일선 우리가 가운데 이쪽이 미해병대 1연대. 똑같이 정면을 배당받아 싸우는데 한나도 우리가 못하지 않았다. 그사람들이 후퇴하더라도 우리는 지켜냈다.
그러니까 미국해병대에서 뭐라고 하냐면 한국 해병대 넘버원이라는 거야 유에스아미 갓댐이다. 아미가 옆에 있으면 언제 뚤릴지 모르니까 매번 앞에 있는 적도 보고 옆에 있는 적도 봐아한다는 거야. 코리안마린하고 있으면 앞에 있는 놈하고만 싸우면 되는데 유에스 아미하고 싸우면 360도로 전쟁을 해야한다는 거야. 우리보다 더 잘 싸운다고 그렇게까지 해병대가 성장했다. 그런 배후에는 눈물겨운 형제같고 부모같은 사람이 우리를 밀어주고 도와주고 아껴주어 커진거다. 다음은 행정적인거 몇가지 말하겠다
내가 제1연대장 마치고 해병대 사령부 용두산에 사령부가 있었을 때 마침 해병대 사령부에도 미국고문단이 오게됐다. 내가 오기 3일 전에 왔더라. 용두산이라고 하는 일본 신사자린데 광장에 천막을 40동 처놓고 거기서 사령부가 일을 했는데. 처음에 가니까 고문단이 와서 일을 보더라고. 내가 제일 먼저 요구한게 미해병대 편성표좀 달라. 장비표. 우리 해병대도 미 해병대와 똑같은 편성과 장비를 가졌으면 좋겠다. 그랬더니 수석고문이 좋다고 그래서 그 분이 미 해병대 편성표와 장비표를 갖다줘서 번역을 했어. 그 편성표 그대로 그리라면 그릴 수 있다. 그때 보니 미 해병대 1개 분대가 13명이더라. 화력조 4사람씩 3개. 분대장까지 해서 13명이더라. 그런데 화이어 팀 마다 BAR이라고 하는 것이 화이어 팀마다 하나씩 다 있는 거야. 분대 공격을 할 때도 두 개 화이어팀이 사격을 지원 하면 하나 화이어 팀이 우회를 해서 뒤를 차단하기도 하고 공격 한 화력조씩 구분 전진하는거야 약진하는거야. 막 바로 외우다 싶이 했어. 얼마나 고마웠는지 이대로 8군에 올려보내고 미 합참에 요구를 해가지고 미국 해병대와 똑같은 장비와 편성표 이걸 갖다가 미국에서 승인을 받은거야. 그 사람들이 사령부에 고문을 와가지고 그거를 해줬어. 그 다음에는 또 한가지는 해병대가 해병대답게 될라면 교육훈련이다 교육훈련.. 미국의 각 관티꼬에 가봐라 관티꼬에 가면 모든 그 종의 훈련을 갖다가 미 해병학교 관티꼬에서 교육을 하는데 베이식스쿨도 있고, 주니어스쿨 신이어스쿨 모든 각 특과학교들이 다 거기 있는데 한국 해병대를 거기다 보내가지고 미국 도미 유학도 보내고 진해에다가 교육단을 만들어서 거기서 해병대훈련을 상륙훈련을 거기서 해야 된다. 이래 내가 또 진해 해병 교육관장으로도 가 있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교육단에 가봤더니 여러분들 그때 가봐서 아는 사람이 있을지 몰라도 해병대 왜 그 기지사령부 있지 않아요 거기 도로에서 바닷가가 전부 지금은 해병기지가 다 되어 있었는데 거기 한가운데 삼분의 일이 미뉴지, 미뉴지 해병대에는 이 쪽 일부하고 이쪽 일부 만 조금 가지고 가운데 삼분의 일은 완전히 미뉴지였어요. 그거 누가 가지고 있었냐면 김지태 라고 해서 왜 저 요새 말씀되고 있는 정수 장학회 있잖아요. 정수장학회 이전 소유자가 김지태씨 에요. 그 사람 제사공장하고 뽕나무 밭이 거기 있었어. 여기가 일제 때 부터 거기가 뽕나무 밭이고 제사공장인데 일본해군들도 그 사람들 못 들어냈다고 근데 미 해병대 수석 고문이 대통령한테 가가지고 이승만대통령한테 찾아 갔어 대개 수석고문이 대령인데 대통령이 대령은 잘 안 만나요 팔군 사령관 대장은 만나지만 대령은 잘 안 만나 근데 이승만대통령은 미국해병대라고 하면 대령도 만나주는 거야 해병대 수석고문이라는 말을 듣고 오케이 만났어 만났 드니 그 얘기를 하면서 여기 있는 땅 가운데 땅 이걸 민간인이 갖고 있는데 우리가 관티꼬처럼 다 하나로 해서 여기다가 해병학교들을 여기다 다 지어야겠는데 이걸 우리 해병대 불알을 막게 해달라고 이래 이승만대통령 특명으로 재무부장관 상공부장관 이 분들 갔다 시켜가지고 진해에 내려가서 그 땅을 김진태 한테서 내수해라 그래 해병대 한테 주라고 그래가지고 저 상공부장관하고 재무부장관이 진해시청까지 오고 나도 그 회의에 참석하고 해군에서도 본부에서도 오고 시내 통제부 사령관에서도 오고 결국 김지태가 안나갈라고 버티다가 나중에 손들고 밀양으로 갔어 다 뜯어가지고 그렇다고 미국 해병대가 그렇게 까지 했어 그담에 또 하나 얘기해야할게 있어 수석고문이 그때까지만 해도 해병대 사령관이 소장이야 소장 해군 참모총장 공군 육군은 중장이고 참모총장 해병대 사령관은 소장 이었어 그 때 김석범 사령관 땐데 수석고문이 대통령 찾아 갔어 한국해병대도 중장을 시켜야겠습니다. 다른 군은 다 중장인데 한국해병대 이렇게 전공도 많고 앞으로도 한국해병대가 싸워야 할 부댄데 아 이런부대 사기를 고려해서라도 어떻게 소장을 줍니까 각하께서 국방부 장관한테 중장을 주라고 한번 명령 하십쇼 그랬더니 이대통령이 오케이 알았어 그래가지고 김석범 소장이 당장 그날부로 중장 그러다보니 신 사령관은 어떻게 하나 신 사령관 이분은 초대사령관인데 소장으로 합참에 가 있었어 그래가지고 이왕이면 이 분도 중장주자 이래가지고 신 사령관님도 중장 되버렸어 우리 힘으로는 암만해도 중장이 안 되는데 그 사람들이 가가지고 막 밀어붙이니깐 그렇게 되버렸어 막 할 얘기들이 너무 많지만 한가지만 더 하겠어 포항기지를 우리가 어떻게 얻었는가 포항.. 거기는 미 해병대 에어윙 근접지원하는 비행기들이 그 포항기지를 쓰고 있었는데 이 사람들이 휴전이 되면서 철수를 하고 미 해병대가 전쟁 후에도 거길 관리를 했습니다. 하다가는 한국 해병대를 전방에 있는 거를 불러다가 여기서 상륙 훈련을 시켜야 겠다. 포항 거기 해변이 좋지 않아요. 모래사장이 쫙 있고 하니깐 거기 데려다가 일개 대대씩 데려다가 훈련을 하는거야 한 열흘씩하고 올라가고 또 일개대대가 와서 열흘 하고 올라가고 이렇게 해서 해병대대들이 와서 하다가는 그 다음에는 연대 알오엘티 라고 연대 상륙단이 와서 또 교대로 포항에서 훈련하고 가게 하고 포항에있는 막사는 시멘트 콘크리트 가지고 지었어요 그 때 임시로 막 아무렇게나 짓는게 아니라 미국 해병대 정식 막사와 같은 막사를 연차적으로 조금조금 짓더라도 완전히 미 해병대 식으로 거기다 지어줬어요 그리고 포항에 훈련 그거 하느라고 삼십만평의 그 훈련장을 갖다가사단 주둔하는 그 주변............. 삼백만평을 떼어서 해병대 줬어요 대단한 일들을 한 겁니다. 그래서 우리 해병 사단이 포항에 가가지고 지금 그렇게 하고 있지만은 내가 뭐 일일이 얘기를 다 못 하는데 그 사람들이 그때 한국에 오지 않았으면 우리가 어떻게 오늘날의 삼년동안에 성인 30년 성인과 같은 어엿한 해병대로 성장할 수 있었나 하는거 손원일 제독이 오늘도 써 놓은걸 내가 사령관실에서 봤지만 그 사람들의 그 우정 이거는 격별합니다. 눈물겨울 정도로 전에 내가 전투단장을 하고 있을 때 그 우리 장교들이 부산 피난살이 하면서 굉장히 고생을 하고 있고 해서 미해병 사단장을 찾아가서 그 해병사단의 쓰레기 좀 지저분한 얘기 내 안할라고 하다가 합니다만 쓰레기를 좀 우리 해병대가 맡아서 청소를 좀 하게 하면 돈이 거 생기니깐 .............(?) 우리 장교들 생활비 보조비로 좀 보내고 싶습니다. 했더니 사단장이 좋다고 해서 그래가지고 전 사단에 명령을 내렸는데 해병 사단이 파주군 일대가 전부 해병 사단이 부대들이 그때 전개가 되어 있었어 그렇다고 우리 군인들이 직접가서 할 수는 없고 업자를 택해가지고 해병대 영어 잘하는 연락장교가 데리고 들어가서 전부 그걸 쓸어가지고 나와서 씨레이션 박스는 움막 같은거 짓는데 왜 지붕같은데 씨레이션 박스 왜 천장 지붕 미우고 깡통같은거는 가져다가 호롱불도 만들고 뭐 전부다 이용을 했는데 우리 사단의 장교들 후생비를 그 사람들이 주는 거를 가지고 그렇게 잘 썼습니다. 나중에는 미 해병사단이 가면서 거기에는 미 육군들이 그 지역을 인수를 맡았는데 미국 육군보고도 이 육군의 나오는거를 전부 한국 해병대 주라고 육군들도 거기 주둔하고 있는 동안까지 해병대에다 다 줬습니다. 그래 좋은거야. 그렇게까지 그분들은 의리를 끝까지 그렇게 지키고 한국 해병대에 대해서는 특별한 그걸 보고 봐주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말씀을 드리려면 그 미 해병대는 우리가 마치 앞에 말했던거처럼 젖먹는 젖먹이같은 것을 데려다가 직접 현지에서 가리켜주고 참 거 앞에서 행정적으로 전술적으로 모든 정신적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아가지고 오늘날의 해병대가 있다고 하는거 여러분 잊지 말아주면 좋겠습니다. 내가 늘 얘기해 사람은 늘 한번 받은 은혜를 잊으면 안되 짐승만도 못해 우리 개도 내가 가면 막 좋다고 들이구불고 오줌을 들이 질질질 싸고 침 구불고 개 그놈한테 내가 주는게 맨 고기 뼈따구 제대로 내 먹는거도 안주고 맨 먹다가 내 버리는거 주지 않네 그거 받아먹고도 주인한테 그렇게 좋다고 오줌을 싸울 정도로 디리 구불고 좋아하는데 하물며 말야 우리한테 그렇게 잘해준 사람들 저 인천상륙작전 했을때는요 우리 해병대한테 씨레이션 다 줬어 씨레이션 자기네가 먹는 거와 똑같은 씨레이션도 주고 해서 우리는 쌀밥도 해먹고 씨레션도 먹고 뭐 통영전투하다 거기 가보니깐 이게 갑자기 거지 아들이 부잣집 아들이 된 것 같애 얼마나 호화판이고 잘 해주는지 그렇게 참 우리한테 끔찍이 잘해주던 사람들입니다. 그래 지금 요새 사람들이 모르기 때문에 미 해병대 그걸 잊지말고 이 유대라고 하는 것은 다른나라 해병대와의 관계와는 다릅니다. 분명히 다릅니다. 그리고 우리는 월남에 가가지고도 한팀이 되어서 싸웠습니다. 정글에서 같이 싸웠어 다른나라에서도 해병대 안보내고 한국에서 해병대 보내가지고 같이 싸웠어 그 사람들도 그걸 고맙게 생각하고 있고 우리도 앞으로 전쟁이 나면 미국 해병대가 여기 와가지고 우리하고 연합 해병대를 만들어서 갈라고 참 정비를 다 하고 있습니다. 그래가 앞으로 이걸 잊지말고 우리가 개보다도 못하지 않을라거든 그 은혜를 잊지 않는 해병대가 되야 하겠다고 말씀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더 한가지 말씀을 더드릴 것은 한미 동맹 이거를 요새 흔히들 자꾸 소홀히 생각하고 요새 젊은이들은 한미 동맹 그게 없어지고 자주국방이나 하면 좋지 않겠는가 하는 그런 생각 갖고 있는 사람들도 있는데 여러분 우리나라 지형을 봤으니까 지형 잘 알지요. 우리 변두리 한번 보세요 전부 강대국이에요 우리보다 약한나라라고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는 그 때문에 자고로 맨날 외침 때문에 시달려왔습니다. 우리 국방대학원에서 발간한 책을 읽어봤더니 단기 사천 삼백 몇 년이던데 금년에 그 동안에 우리가 외침을 받았던게 구백육십회래 960회 대소 난리가 960번이나 일어났데 그것은 지형적으로 지정학적으로 어쩔 수 없이 입은 우리의 아주 슬픈 역사입니다. 그래서 우리 민요들 보면 아리랑 뭐 무슨 민요들 보면 너무 슬픈 노래뿐만이야 곡조가 전부 슬퍼 저기 여랑 뭐 정선 아리랑 그런거 보면 듣기만 해도 눈물이 자꾸만 날라고 하는 우리가 그런 슬픔 속에서 살아왔던 우리 한국 사람들이에요 이 사람들이 너무나 우리가 미개했기 때문에 그렇지 이런 나라가 앞으로 살아나가기 위해서는 손자병법에요 왜원교근공 이라는 말이 있어 왜원교근공 먼나라하고 교제를 두텁게 하고 가까운 나라하고 대항한다 이말인데 우리나라가 구한말에 만약에 미국하고 동맹이 맺어져 있었다면 우리가 일본한테 안 먹혔을거에요 바깥에 있는 먼나라하고 그 우리가 외교관계가 두터웠다면 가까운 일본이 우리를 감히 못 먹었을텐데 우리가 그걸 못한거에요 외교근공이라고 하는 것도 몰랐고 그렇게 할만한 능력도 없어서 그래 지금은 외교근공이 저절로 자동적으로 되어 있습니다. 6.25를 통해서 미국과 지금 이렇게 되어 있다는 말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일본도 우리를 깔보지 못합니다. 한미동맹이 있고 미일동맹이 있기 때문에 같은 동맹국간에 분쟁이 일어나는거 독도문제로 요새 저렇게 시끄럽지만은 독도문제를 되도록이면 더 큰 문제로 확대 안할라고 일본도 자제를 하고 있습니다. 이 외교근공이라고 하는 지금 되어 있는 이 구도를 파괴한다고 하는 것은 한국으로 볼때 결정적인 이거는 죽음의 길을 가는 한가지야 외교근공 의 그것을 생각해서라도 절대 미국과의 동맹관계가 파괴되어서는 안된다는거 말씀드리고 또 둘째는 외교근공을 하더라도 동맹을 맺더라도 상대방이 약한놈이면 별볼일 거 없잖아요 미국이 우리보다 약한 나라라면 뭐 일본이 쳐 오더라도 그 사람들이 아무 역할을 못하겠지만 당연히 미국이 세계 최강국이야 미국이 지금 세계 최강국이라고 우리 동맹국이 그런 나라가 있다는게 얼마나 든든합니까 나는 그 참 요새도 그렇게 생각해 저 미국이 만약에 우리의 적국이라면 우리가 어떻게 안심하고 살겠나 다행히 우리의 동맹국이니깐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여러분 미국의 군사 저 국방비가 얼만지 아십니까 금년에 4300억불이에요 4300억불 세계전체의 국방비가 7500억달러에요 7500억달러인데 미국의 국방비가 4300억불이면 반보다도 더 많은게 미국의 국방비에요 세계 온나라를 합친거 보다도 미국의 국방비가 더 많은거예요 군사과학연구비가 없는가 하면 세계 전 나라의 군사과학연구비를 전부해도 미국의 그 80% 그 미국꺼에요 미국.. 병기를 만들어내고 하는거 이런 나라가 우리의 우방이 되었다고 하는거 그러기 때문에 북한이 핵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그렇게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거지 미국이 있기 때문에 북한이 쓰지를 못하잖아요 우리한테 미국이 없는데 우리가 어떻게 북한에 대해서 큰소리 칩니까 북한이 하자는 대로 움직여야지 안하다가는 핵의 세례를 받아서 한국이 전멸할텐데 그렇기 때문에 동맹국이 세계 최강국이 되어야 한다 이거예요 지정학적으로 그래서 해야된다 셋째는요 미국은 영토적으로 야심이 없는 나라예요 영토적인 야심이 없어 그 나라가 영토적인 야심이 있었다면 오키나와 같은거 일본에 돌려주지 않았을꺼에요 자기네가 오키나와는 군사적으로 필수한 긴요한 땅인데 왜 일본에 돌려줬겠어 필리핀도 안 돌려줬을꺼예요 필리핀도 2차대전때까지 그 필리핀이 미국의 식민지였어 그러나 미국은 다 돌려줬어 한국도 미국이 우리한테 영토적인 야심이 있었으면 제주도라도 내놓으라고 하던지 뭐 어디 남한의 절반이라도 내놓으라고 했지 일체 그 사람들은 그런 야심이 없습니다. 야심이 없는 나라하고 동맹을 맺어야지 야심이 있는 나라하고 맺었다가는 맺는 그날에 그나라에 먹혀 들어간다 이거야 지금 중국은 어떻습니까 동북공정이라고 해서 고구려를 갖다가 중국의 소국의 일부였다고 지금 그렇지 않습니까 일본도 그러지 않아요 일본보라고 해가지고 저 남조선 김해 일부가 일본 영토였다 일본의 왕이 다스린 곳이다 한국은 일본 본래부터 일본 땅이다 남쪽은 일본도 그러고 있어 독도라는 것도 일본땅이라고 그러고 있습니다. 이 나라들은 영토적인 야심이 있는 나라들..중국도 그렇고 러시아도 그렇고 여러분 우리가 어느나라하고 어느나라하고 동맹을 맺어야 합니까 영토적인 야심이 없는 나라하고 맺어야 된다 이렇게 되어 있는거를 자꾸 파괴할라고 하는거예요 아주 잘 되어 있는 놈을 넷째는 주한미군 때문에 한국의 국방비가 많이 세이브가 됐어 북한은 왜 못사는가 하면 자기네 힘으로 국방비를 조달할라고 하다보니 자꾸 이제 경제적인 그 예산을 갖다가 국방비에 쓸어넣고 우리는 미군들이 다 맡아주고 하기 때문에 아주 고가 한 장비들은 미군들이 다 맡고 우리는 그렇게 고가한 비용으로 안들이기 때문에 국방비가 세이브 된 년이 지금 50몇년을 쌓아놔봐요 그거 50년이라는거 엄청난 돈의 격차가 생깁니다. 그것을 우리는 국방비에서 세이브 된 것을 경제개발에 돌린거예요 미군들이 얼마나 우리한테 기여를 많이 해줬는지 아시겠죠 다섯 번째는 미국이라는 나라는 우리나라의 독립과 주권을 지켜준 나라예요 저기 태평양 전쟁때 미국이 일본을 꺾지 않았으면 한국에 어떻게 독립이 옵니까 일본 때문에 지금도 일본 밑에 먹혔지 물론 우리 선각자들이 독립운동도 한분도 있지만은 그 힘가지고는 일본을 꺾을 수 없습니다. 미국이 일본을 꺾었으니까 독립을 가져온거고 6.25전쟁때 우리나라가 다 먹힐뻔 북에 먹힐뻔 했는데 미해병대 하고 미국 군인들이 와가지고 우리나라를 독립과 주권과 민주주의 자유 이걸 찾아주었어요 그날은 그렇기 때문에 이 나라 하고의 그 우정을 그 사람들의 은덕을 생각하더라도 경제 개발을 여기까지 할 수 있게 만들어준 모든 것이 미국이 우리를 돌봐주었기 때문에 그런거야 한마디로 말하면 우리가 줄을 잘 선거야 미국에 줄을 섰어 러시아 소련에 줄을 섰던 북한이라든지 저 동그라파라든지 몽고라든지 용공이라든지 소련에 줄섰던 사람들은 다 못 살고 미국에 줄섰던 나라들은 다 잘 삽니다. 한국도 우리가 요행히 미국에 줄을 섰기 때문에 앞에 말했던 국방비에서도 세이브가 됐고 그 사람들이 휴전 후에도 우리한테 먹을 것 갖다주고 입을 것 갖다줘서 오늘까지 여기까지 온겁니다. 그래서 한미 동맹은 지금까지도 잘 지켜왔지만은 앞으로 이래 지금처럼 이래 흔들거리다가는 굉장히 굉장히 근심스럽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끝까지 우리가 이걸 잘 지켜나가면 우리나라는 안태하겠지만은 잘 못하면 큰일납니다. 공사령관이나 나나 우리 때문에 이 얘기 하는거 아니예요 우리는 이 세상에서 살만큼 살았고 이제 우리가 남았다는게 지혜밖에 없어 경험밖에 없어 우리 후손을 위해서 여러분을 위해서 어느길로 가는 것이 우리가 참 가야할 길인가 하는 것을 말해주고 싶은거예요 다른 아무 그것이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내가 말하는 이것을 아주 가슴깊이 새겨들었으면 좋겠어 요새 대학생들은 역사도 모르고 뭐 아무 소리도 막 하지만은 여러분 한사람한사람이 가리켜줘야돼 가리켜줘 오늘 내가 한 말을 어느정도 여러분이 알아들었지는 모르지만은 들은 말을 가리켜서 우리 후세들에게 우리 자식들에게 가리켜 줘야돼 나는 우리 손자들 올 때마다 이것 가리켜준다고 다른거 가리킬게 없어 손자들이 오면 옛날에 우리가 당했던거 6.25사변에 쓰라렸던거 미국이 우리를 도와준거 미 해병대가 우리를 어떻게 해줬다는거 나는 우리 손자들에게 가리키는거 그런겁니다. 내한테는 효도하라는거 안가리켜줘 그런거는 저절로 다 하는거니까 맡겨놓고 내가 할 것은 그걸 가리켜 주는 겁니다. 여러분도 아무쪼록 너무 장황합니다만은 그렇게 해서 우리 후손들에게 가리켜 주도록 그래가지고 지금 잘 되어 있는거야 후레임이 잘 후레임 월드가 잘 되어 있는거야 이걸 소중한 줄을 모르고 이걸 자꾸 때려부시는게 개혁인줄 알고 날뛰고 있는 지금 젊은 세대들에 대해 너무 안쓰럽고 해서 이런 말씀을 드리고 우리 해병대도 앞으로 잘 좀 해서 그 한미 동맹을 더 견고히 할 것과 우리 한미 해병대 관계를 더욱 가깝게 해나가주시기를 부탁드리면서 오늘 뭐 이거 특강보다도 그냥 뭐라고 할까 하하하 오늘 시간을 마치겠습니다. 장시간 경청에 주셔서 감사를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10.06.05 09:23
김성은 前 사령관 사령부강연(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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