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공수

해병공수 1차

by 운영자 posted Jun 19,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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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대한민국 해병대가 972년  6월 해병공수 1기생이 탄생하게 된다,
그전만 해도 선배님들의 이야기에 의하면 온갖 수모를 무릅쓰고 육군공수특전단 의탁교육을 받아 왔던 것으로 안다.
그 당시만 해도사단장님 각 연대장님 대대장님 지휘관님들의 관심사는 연 우리 해병대도 자대공수교육을 하여 쩜프까지 성공 할 수 있을까?
지대한 관심사로 떠 오르고 있었던 것으로 안다.
각 중대에 회람하여 희망자를 모집 하였고----본인도 관심이 있었으나 2연대 1대대 3중대에 소속되어 있던 나는
선배님의 추천으로 작전하사 인수 내정자 1순위에 있었다,
그런 와중에 하사관 학교시절  중대장님으로 계셨던 이수용대위님이 우리 3중대 중대장님으로 부임해 오시게 되었다,
어떻게 할 것인가?
이대로 남아 잘 아시는 중대장님을 모시고 작전하사 인수를 할것인가, 니면 사나이로써 공수교육에 도전해 볼 것인가,고민을 하다가 중대장실로 들어갔다,
"중대장님 공수교육 한번 받아 보고 싶습니다" 라고 했더니 야! 임하사 공수1기생이라 훈련이 무척 힘들 꺼야. 그만 작전하사 인수해서 나하고 있지?" 만류 하셨다,
하루밤을 지나는 동안 고민을 하다가 결국은 지원하게 된다,
체력검정을 거쳐 아마 기억으로는 120여명 최종모집을 한것 같다,
해병공수 1기.
교관님들 모두가 하사관 출신이 었고----훈련은 처음부터 강도가 높았다,
훈련 프로그램은  모든  대원들이 받아 온 기본 교육과  다른것은 없겠지만 름대로 해병대의 자존심이 걸린 1기생인지라 만큰 관심이 높았고 훈련을 호대게 시킨것 만은 사실이다,
공수구보, P.T체조로 부터 시작하여 거이 완숙 단계로 접어 들었고---- 4주째 날이 되었다,
마지막 훈련은  손풍훈련을 한다고-----
아무것도 모르는 대원들은 그저 평상훈련복을 입고-----지친 심신을 교육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나 역시 마친가지었고----그 당시 공수교육장이 사단 활주로 근방이었다,
포 진지가 군데군데 있었고 잔듸밭 자갈밭 배수로 등등등 관은 송풍훈련의 목적에 대하여 설명을 하였고---
20명이 일개조로 하여 조 편성을 하고 하사관을 제일먼저 실습자로 하였다,
나 역시 열외 일수는 없었고---교관님 은 그랬다,
"낙사산이 바람에 날리게 되면 사정이 없다. 탈출을 대비한 훈련이니 명심하고 남어지 19명은 100미터 달리기 하듯이 달려야 하고 호르라기를 불면 실습자는 배운대로 일어나야 되는데 10번을 일어나야 합격으로 한다. 알겠습니까?"
"옛!
아무런 요령도 없는 1기생. 촛자들, 어찌하여 교관이 시킨다고 100미터  달리기 하듯이 달렸느냐구?
누워있는 대원을 죽일려고 작정을 했제.다섯번은 일어났는데----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다,
눈을 떠 보니 6월의 태양빛은 몰개월의 모래사장을 달구워 가듯이 내 얼굴을 달구고 있었다,
내가 왜 여기 누워 있을까!
고개를 돌려보니 대여섯명 대원들이 나란히 누워 있지를 않는가,
눈물이 핑 돌았다,
아! 그래 송풍훈련을 받았지--- 그래 내가 훈련중이지-----
억지로 일어나 앉으니 훈련복 등이 다 달아 팔만 걸치고 런닝 샤스는  피 투성이가 된체 훈련복과 같이 앞으로 흘러 내리는것이 아닌가,등이 후끈 거리고 통증이 왔다,
우리 대원들은 병사로 돌아와서 뒤로 눕지도 못하고 위생하사의 치료를 받으며 근 4일간을 업어져 대기한 기억이 난다,
그 후 2기생부터 이 어리석은 선배들의 조언으로 손풍훈련날이 되어도 겁먹지 않았던 것은 동내의를 입고 나가는 지혜를 얻었기 때문이 아닐까?
이제 우리 해병대의 관심사 였던 쩜프까지 할 수 있을까?
또 문제는 낙하산은 육군공수 특전단 으로 부터 빌려와야 되고 비행기는 공군으로 부터 지원을 받아야 되는데
이게 아마 본인 기억으로는 잘 교섭이 되지 않아 아무 이유없이 훈련을 다 받고도 근 일주일을 넘도록 대기한 걸로 알고 있다,

 

hbcom_vh.jpg

사진은 해병공수 9차사진입니다. 


드디어 기다리던 비행기가 도착을 하였고 할주로에 나열된 낙하산 착용을  앞두고 얼마나 긴장이 되던지-----
소변이 자주 나와 애를 먹었다,
굉음을 내며 비행기는 이륙하였고---- 안강에 도착 하였을 때는  안강 강변사람들이 떼를 지어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는데 마치 개미떼 처럼 보였다,
밀이 익어 가는 6월
안강 들녁은 마치 백장미로 수를 놓았으며 T10,낙하조종이 미숙하여 힘을 쓰자말자 나는 재수없게도 강뚝 돌재방에 떨어져 옆구리를 찍고 강물에 떨어지고 말았다,
저만치 빨리 낙하산을 해수하여 집합하라고 교관은 핸드마이크로 소리소리 질러대고----
해병혼이 무엇인지 아프다 소리도 못하고 해병! 공수! 해병!공수! 구호를 외치며 대열에 합류하였고 지휘관님들의 악수를 받고 흐뭇하게 사단으로 돌아왔다,
교관님들의 시종일관 흐뭇한 표정은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부심이 그 님들의 얼굴에 역역히 나타났다,
공군왈 "육군특전단 아이들은 항상 한두명씩 쩜프를 못하고 내려 온다고"
"역시 해병대는 다르다고"
공수교육장 잔듸밭에서 축하 파티를 했다,
각 부대 지휘관님들은 줄을이어  막걸이를 실고 찾아 오셔서 축하를해 주셨고----
우리 해병사단의 아니 대한민국해병대의 경사로 높이 평가할 일이 아니였던가, 싶다,
우리 대원들은 워카에 술을 따라 서로 권하며 자축을 했으니 얼마나 기막힌 광경인가,
기마전을 하여 막걸리를 뿌리고------
군가를 부르고-----
그렇게 하여 축하의 날은 저물기 시작했고---
해병대 역사는 밤에 이루어진다고 하더니 역시나 그날 밤도 "하사관 집합!"
모두 술에 째려 정신이 없는데 무슨------나는 취기가 올라 몸을 가눌 수 없었고 잠시도 서 있자니 속이울렁거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애라 모르겠다 하고 기라성 같은 선배들의 눈총도 묵살하고 스러져 버렸더니 난리가 났다,
눈을 뜨고 정신을 차려 보니 의무실에 누워 있지를 않는가,
선, 후배 할것 없이 의무실로 찾아와서 걱정을 해 주었는데 후배왈 임하사님 때문에 즉시 해산하여 고마웠습니다, 라고--
어찌나 미안 하던지 아직도 그 꾀병은 아무도 모른다,
발설한 바가 없으니까------
같이 공수1기 훈련을 받으셨던 중대장(못밝힘)님은 세상을 다 얻은것으로 착각을 하셨던지 술에 만취되어 남문헌병들을 구타하여 아마 그당시 바로 전역된 것으로 알고 있다,  
유치한 가사를 후배 장하사와 같이 적어 금복주 곡에 맞추어 불렀는데 소이 1중대가라고 명하였다,

하늘에 사나이가 사는 곳 하늘에 붉은 베레모
희망찬 휴가외출 때에는 멋있게 마시고
이것이 하늘의 사나이들 세계 주먹 한방이면
걱정도 없어 짠-짠짠짠
쩜프할땐 아찔 얏!얏! 해병공수 1중대

74년 제대 1년 후 동원 훈련을 들어 갔더니 견학을 했는데 우리 해병자대에서 낙하산을 접는다고-----
현장을 보여 주었을땐 남달리 감회가 새로웠다,한 해병이 열심히 낙하산을 접고 있었다,

지금은 어느정도 발전이 되었는지 참 궁금하다.아직까지 비행기를 빌려쓰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지난 5월달 우리 막내가 기꺼이 해병대를 가겠다고 하여 입대를 했다,
도솔관은 그대론대 해병대 기념관은 명물이지를 않는가,
아! 해병대  감회가 무량하다.

 

자료출처 : 해병대하사관 90기 임모하사님의 플래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