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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단파병을 마치고 - 김철하

by 운영자 posted May 26,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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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 수단 임무단에서의 경험과 기억들은 평생 어디에서도 얻을 수 없을 것이고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나만의 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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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 철 하

 

두 달여의 준비기간을 마무리하고 ’07년 11월 일행들과 함께 두바이를 거쳐 카르툼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고 만 하루만에 도착한 수단은 낯설기만 했다. 이슬람의 전통복장인 잘라비야, 히잡 등을 입은 모습, 사진은 절대 금지라는 선임자들의 충고, 머리 위의 태양으로부터 받는 뜨거운 열기와 쉬이 찾아오는 갈증, 아랍풍의 건물들과 단조로운 외부 색채, 엄청난 수량의 나일강을 보면서 내가 새로운 곳에 와 있음을 깨달았다.
야자나무로 정원을 가꾼 깔끔한 건물에 자리한 대사관을 방문하였을 때 대사님을 비롯한 많은 분들이 우리의 안전을 걱정하는 당부의 말을 들었다. 그러나 겪어보지못한 사람에게는 소귀에 경읽기나 마찬가지였다. 카르툼에서의 전입교육을 마치고 섹터 본부에서의 운전면허 시험을 치르고 팀사이트에 배치받으면서 전임자들과 많은 한국분들의 이야기의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 아랍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북부 수단과는 달리 남부 수단은 문화, 종족, 종교 등 모든 것이 차이가 있으며 북부의 카르툼과는 전혀 다른 나라에 와 있다는 착각마저 들었다.
아프리카의 북동부에 위치한 수단의 이름은 아랍어로 검은 땅이라는 의미의‘Bilad al Sudan’에서 사하라 사막 남쪽을 묘사하기 위해 사용되는 단어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250만 km2의 땅을 가진 수단은 세계에서 7번째로, 한반도 면적의 11.3배에 해당하는 땅을 가지고 있다. 광대한 땅을 가진 수단은 상대적으로 다양한 기후를 포함하는 나라이다. 북쪽으로는 건조한 사막이 형성되어 있으며 중앙지역은 사바나 초원, 남쪽지역은 습지와 무성한 열대림으로 형성되어 있고 전반적으로 해발 400미터 가량의 완경사의 들판을 형성하고 있다. 수단에서 빼 놓을수 없는 것이 전체 길이 6,000km에 이르는 나일강으로 수단을 통해 그 길이의 절반을 흐르며 수단의 젖줄이 되고 있다. 수단은 150개 이상 종족이 섞여 생활하고 있으며 각 종족은 그들 자체의 종교, 언어, 역사, 관습, 삶의방식을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종족 간의 차이는 분쟁의 원인이 되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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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건기가 시작되는 12월 초에 배치받은 팀사이트는 남북 수단을 연결하는 도로 근처에 있었고 백나일강을 통해 많은 병력들이 움직이는 것을 관측할 수 있는 멜룻에 위치하고 있었다. 전입과 동시에 시작된 옵서버본연의 임무인 정찰은 항상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곳곳에 웅덩이가 패여 있는 비포장 도로를 몇 시간 달려 목적지에 도착하더라도 UN에 비협조적인 지휘관의 경
우 대답을 회피하거나 지금 바쁘니 다음에 다시 방문해달라는 일방적인 통보만 하고 사라지는 경우도 있었다.
실재로 200km 지점으로 나간 정찰에서 트랜스미션의 고장으로 5시간을 견인해왔던 일도 있었다.
’08년 1월말까지 북부 수단군(SAF)이 경계선 북쪽으로 철수가 계획되어 있어서 이동 부대의 병력과 무기의 수량을 파악하는 M&V는 거의 매일 실시되었고 팀의 책임구역을 벗어날 때까지 낮과 밤 시간에 관계없이 호송임무도 수행하였다.
SAF군의 재배치가 완료되자 남부 수단군(SPLA)과 남북부 통합군(JIU)에 대한 M&V 만을 하게되어 한결수월해졌으나 국민투표를 위한 인구조사 지원임무가 부여되어 관련서류를 실은 인도군 트럭을 호송하여 오지까지 전달하였고 도로와 교량이 없는 강 건너 마을에는 배편을 협조하여 보내주기도 하였다. 포괄적 평화협정에 의하여 UNMIS는 남부수단의 독립여부를 결정하는 2009년의 국민투표의 지원까지를 그 본래의 임무로 하고 있기 때문에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군인들에 대한 M&V가 마무리 되면서 주민들에 대한 부분의 임무가 더 늘어나게 되었고 작전지역내에 위치한 각 마을의 실태를 파악하는데 주력하였다. 주변 마을의 대표자들을 통해 확인했던 문제점은 식수 부족, 학교 및 병원의 부재, 식량 부족을 꼽을 수 있으며 이것들은 남부수단의 공통적인 문제점이다. 또한 도로, 통신, 방송 등의 사회 인프라가 구축되지 않아 부락단위로 살고 있는 사람들은 세상 돌아가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을 정도로 단절되어 있었다. 이 모든 것이 1960년대에 시작되어 휴식과 내전을 반복하면서 빚어진 파괴와 발전 장애에 기 인한 것이었다.

 

수단군 장교들과 만나면 간혹 수단과 한국을 비교하며 수단의 발전 가능성에 대한 자신감을 심어주려 했었다.
한국전쟁 이후 반세기가 되지 않는 짧은 기간의 경제발전 등에 대하여 이야기하며 수단도 할 수 있다고, 해 보라고 하였으나 씁쓸한 대답 뿐이었다. 단일 민족 국가인한국이니까 가능했겠지만 100여개 이상의 종족으로 의견 조율이 되지 않는 수단에게는 요원한 이야기일 뿐이라는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무시할 수 없는 현실적인 이야기였다.
팀사이트 근무를 마무리 짓고 누렇게 변하는 들판을 보면서 카르툼으로 가는 비행기를 탈 때 많은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자정에도 30도를 넘는 열기속에서 스펀지로 만든 침대가 젖을 만큼 땀을 흘렸고 샤워 시설이 없어 화장실에서 물병으로 몸을 적시면 그나마 쉽게 잠들 수 있었던 민가 생활, 생존을 위해 쌀, 감자, 양파 만으로 식사를 거르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사람보다 많은 파리들 때문에 육류 구입을 포기했었고 대안으로 동료들과 산 닭을 구입해 야전취사를 했던 일, 정수를 해도 뿌연 색을 띄기에 반드시 끓여 먹어야 했던 지하수, 그나마 단수가 되면 밥 짓는 것을 미뤄야 했던 일,한밤중에 오한과 고열이 반복되는데도 도움을 요청할 수 없어 아침까지 버티다가 병원에 갔던 일, 샤워장에 뱀이 들어가 있어 캠프 거주자들이 기겁을 했던 일, 갑작스레 내린 호우에 휴가 나갈 헬기편이 취소되어 의기소침해하던 동료를 지켜보던 일, 임무 중에 여동생의 갑작스런 사망 소식을 듣고도 당장 달려갈 수 없어 밤새 울던 동료의울음소리......카르툼에서의 체크아웃 과정을 모두 마치고 다시는 돌아오는 일이 없을 것이라는 다짐을 하면서 수단을 떠났다.


1년만에 돌아온 한국, 휴가와는 또다른 느낌이고 떨어진 낙엽들과 옷 속을 파고드는 찬바람이 그렇게 반가울수가 없었다.
UN 수단 임무단에서의 경험과 기억들은 평생 어디에 서도 얻을 수 없을 것이고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나만의 보물이다. 미약한 힘이지만 어렵고 힘든 나라의 국민들을 돕는 임무를 수행하면서 그들은 피부색이 다를뿐 우리와 같은 사람이라는 것과 오늘 내가 한 행동들이 그들의 미래를 밝게 해 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내가 그곳에 있었던 충분한 이유가 될 것이고 힘들었던 기억은 추억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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