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아는 구봉서는 70년대 배삼룡과 더불어 브라운관을 사로잡던 코미디언이지만 동시에 그는 60~70년대 <애정파도> <오부자> <수학여행> <광야의 결사대> 등 400여 편의 영화로 스타 대열에 오른 베테랑 배우이기도 했다. 자칭 출세작인 <돌아오지 않는 해병>에서 그는 돌아갈 수 없는 해병들에게 웃음을 선사하는 전쟁터의 익살꾼 노릇을 한다. 40년 전의 추억을 묻기 위해 구봉서 씨를 만났다. 그 재담과 유머 감각은 하나도 녹슬지 않았다.
언제 <돌아오지 않는 해병>이 가장 생각나세요?
가끔 미국에서 연락이 오더군. 유현목 감독의 <수학여행>과 이만희 감독의 <돌아오지 않는 해병>의 영화 필름을 보내달라고. 그래서 비디오테이프만 수소문을 해서 보내곤 했지. <돌아오지 않는 해병>이 멋있긴 멋있었나 봐. 자꾸 찾는 걸 보면.
희극인으로 더 유명하신데, 어떤 계기로 영화에 출연하게 되셨어요?
45년부터 가극단에서 활동하다가 1958년에 <오부자>에 출연한 후부터 한 10년은 영화하느라 정신 없을 정도였어. <오부자> 제작자가 국도극장 앞에서 “도대체 이 극장 얼마야?” 큰소리 칠 정도로 손님이 많이 들었거든. <오부자>로 이름을 알리고 <돌아오지 않는 해병>으로 인기 절정에 오른 것 같아요. 어디든 희극 배우는 필요하잖아. 게다가 내가 한참 잘 나가던 때라 이리저리 현장에 불려다녔어.
처음 이만희 감독과는 어떤 말씀을 나누셨나요?
그냥 전쟁영화 한 편 같이 찍자, 했지. 나도 스케일이 큰 전쟁 영화를 찍고 싶었고. 이만희라는 양반, 참 머리가 비상했어요. 시나리오는 없었고 그날 그날 오늘은 이런 거 찍습니다, 하면서 콘티를 나눠줬어요. 그래도 그 콘티 나부랭이가 얼마나 정확했는지 몰라.
촬영현장의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고 하더군요.
영화 찍던 그해, 건국 이래 처음으로 엄청난 혹한이 닥쳤어. 영하 26도씩 내려갔지. 김포 평야에서 주로 전투 신을 찍었는데, 어떻게나 추운지 옷을 하도 많이 껴입어서 한 번 앉으면 일어서기가 힘들 정도였어. 또 폭탄을 어디다 묻었는지 정확한 위치를 배우나 엑스트라들에게 알려 주지 않았어요. 그거 알면 그쪽만 요리조리 피해 다닐테고 화면으로 보면 보기 싫으니까. 그런데 폭탄에 쓰러지는 중공군 역을 맡은 한 놈이, 질퍽거리는 논두렁으로 넘어가기 싫으니까 반대편 흙더미 쪽으로 넘어졌다가 한쪽 넙적다리를 날렸지. 그 부모가 와서 난리를 피웠어. 보상금 1억 원을 내놓으라고. 그러니까 현장 검증하던 경찰이 뭐라는 줄 알아? “여보쇼, 내 다리 잘라 가고 나한테 1억 주쇼.” (웃음)
해병대 지원을 받은 영화로 알고 있습니다만.
내가 해병대를 제대했는데, 그 덕분에 사령부 불려 가서 수고했다고 인사도 듣고 맛있는 것도 얻어 먹었어요. 그렇지만 그건 영화가 히트친 다음이고, 촬영할 때는 아무래도 어려웠지. 물론 서울 시경에서 총을 잘 쏘는 사람 데려오고 군인들 중에서 폭탄 잘 다루는 사람도 데려왔어요. 그래도 총알 피해서 도망가는 장면 찍을 때는 등줄기가 서늘해지더구만.
군인들과 함께 지내셨다면서요?
군인들과 천막 속에서 난로 켜놓고 김밥 들고 먹던 기억이 나지. 군인들이 엑스트라로 꽤 많이 나왔어. 상관들이 해병대 영화니까 무조건 잔말 말고 협조해라, 하면서 끌고 나온거야. 여기부터 저기까지 한번 왔다 갑시다, 하면 한번만 찍을 줄 알았는데 영화라는 게 어디 그래? 찍고 또 찍고 하니까 열받은 거야. “자, 이제 여기서 담배 한 대 피시고 휴식하세요” 하니까 다들 막 욕을 하더라고. “염병할…. 담배는 주지도 않고 피래?” 그러면서.
미군에게 엉터리 영어하시는 장면은 콘티에 있던 대사였어요?
유어 세임 메이드 인 유에스에이? 그런 건 다 애드립이지. 그래서 감독이 날 쓴 거야. ‘전장에도 양지는 있구나’ ‘죽지만 않으면 육박전도 해볼 만한 운동이야’ 이런 대사는 감독이 쓴 건데 아주 근사했어.
특별히 기억에 남는 장면 있습니까?
육군하고 해병대하고 신경전이 있던 장면. 럭키 클럽 바에서 마담이 한국군들은 나가라고 하고 해병대들이 다 때려 부시는 장면 있잖아? 국방부는 군인이 그러면 되겠냐고 그 장면을 자르라고 하고 해병대는 또 해병대 사기 꺾지 말라고 맞서는 바람에 겨우 그대로 나왔지. 그리고 결말 부분에 내가 죽으면서 “내가 재미있게 말하면 늬들이 웃었지? 이제 내가 죽으면 누가 느이들을 웃겨 주니…,” 하는 장면 있지 않어? 영화 내내 우스갯소리하다가 그 장면 찍는데 코끝이 찡해지더구만.
같이 출연하신 분들 중 지금도 연락 닿는 분이 계신가요?
최무룡은 죽었고 장동휘 씨는 아파서 시골 가 있고 황해 씨도 누워 있고. 바쁘고 늙고 그러니까 만날 기회가 없어. 꼬맹이 (전)영선이는 몇 년 전에 교회에서 한 번 봤어. 너 혹시 아무개 아니냐, 먼저 말을 거니까 그제서야 알아 보더구만. 그런데 그 이후로는 못 만났어.
영화 배우보다는 희극 배우로 더 유명하신데, 아쉬운 점은 없으신가요?
400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하고서도 영화상을 한 번도 못 받았어. 지금도 그렇지만 코믹 연기 하는 사람에게는 상이 잘 돌아오지 않아요. 심각한 연기 할 뭐도 없고 웃긴다고 상을 주겠어? 그래도 희극은 그때 하고 나서 잊어 버리지만 영화는 안 그렇잖아. 늘 머리에 남는 거고 가슴에 남는 거고. 그러니 40년 전 찍은 영화로 이렇게 인터뷰도 하지. 그리고 영화가 개런티가 훨씬 많았어. 그게 참 좋았지.(웃음)
<자료출처 : 오해병211님의 네이버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