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개 요
이 글은 어느 개인의 전투수기가 아니라 한국전쟁 중 이 땅의 젊은이들이 이 나라와 이 겨레를 위하여 어떻게 싸웠는가? 하는 것을 오늘의 세대들에게 단편적으로 그리고 그 일부분을 사실 그대로를 보여주며 또한 오늘의 젊은이들의 실전투에서의 참고를 위함이 이글의 목적이기도 하다. 동시에 그들의 청춘과 생명을 이 나라를 위하여 희생한 나의 동기생들, 전우들,그리고 특히 이 전투에서 산화한 제3소대 대원들의 명복을 빌며 또한 아직 생존하여 이 땅의 어느 하늘 아래서 인생의 황혼 길을 걷고 있을 제3소대 대원들을 기억하며 그들의 여생이 평안하기를 기원하면서 쓰는 우리들의 전투수기이기도 하다.
이 전투수기는 내가 쓰고 있지만 그들도 이 전투에서 나와 똑같이 싸웠으니 나의 전투는 그들의 전투요 그들의 전투는 나의 전투임을 나는 여기서 똑똑히 밝혀 두는 바이다.
-- "노 해병의 어제와 오늘" 의 글 중에서--
1) 공격개시
1951년 6월7일 한국 해병대의 공격 4일째 되는 날 05:00시에 나 (이근식소위 해간 3기)는 해병 제1연대 제1대대 2중대 3소대장으로서 "도솔산"공격목표 중의 제4목표의 중간 목표인 "무명고지"에 대한 공격명령을 중대장( 이응덕중위 해간1기)으로 부터 받았다. 우리 3소대는 선임하사관에 심재완일등병조(해군5기) 향도하사관에 차 이등 병조(해군9기), 1분대장에 이두호이등 병조(해병1기) 2분대장에 장 이등 병조(해병1기) 3분대장에 장이삼삼등병조(해군14기)로 하여 40명으로 편성되어있었다.
공격대형은 2소대(소대장:김용겸소위 해간3기)가 주공으로 고지 우측, 우리3소대가 고지 좌측을 담당, 조공으로하는 중대공격 대형이다. 정면이 공격하기에는 좁고 경사가 양측으로 심하여 트히 오른쪽은 절벽이어서 공격대형을 유지하기가 극히 곤란한 지형이다.
"무명고지"에 대한 공격은 09:00시에 개시하였으나 이번의 공격은 최초공격이 아니다. 최초공격은 1소대(소대장:최영남소위 해간.3기)가 전일 담당하였으나 공격중 소대장이 중상을 입고 후송되어 선임하사관이 소대를 지휘했으나 많은 희생자가 발생했음으로 철수하여 재편성 후 다시 1,2소대가 공격했다. 그러나 역시 유리한 지형을 이용한 적의 소련제 수류탄 투척을 수반한 완강한 저항에 목표를 저령하는데 실패했다.
이때의 제2중대편성은 중대장에 이응덕중위(해간 1기) 선임장교에 이재원소위(해간 2기) 1소대장에 최영남소위(해간 3기) 2소대장에 김용겸소위(해간 3기) 3소대장에 이근식소위(해간3 기) 박격포반장에 김동규소위(해간 3기) 화기소대장에 6월 4일 전후해서 후방으로부터 전입한 심재황소위(해간 3기)인데 나는 공격 당일 심소위를 처음봤고 화기소대장으로 임명된 것을 알게됐다
공격 첫날 (6월 6일) 부상당하여 후송된 1소대장 최영남소위는 서울대 법대 출신으로 우리 보다 연령도 몇 살 위였고 중대장의 신임도 두터웠다. 1소대장은 중대공격목표인 4목표의 중간목표( 무명고지)를 공격 중 부상당하여 후송되어 나와 진해 해군병원에 1개월여 입원하고 있었는데 퇴원 후 최 소위는 동해부대 43중대에 배치되어 북한지역( 함경도 해안지역)에 침투하여 전투정찰 중 적의 집중사격으로 적지에서 전사했기 때문에 동작동 국군 묘지에는 최 소위의 묘비는 없고 그의 위패(49-1-28) 만 안치되있는 불운의 동기생이다.
나는 퇴원 후 진해에서 새로 편성된 4.2"중포중대( 중대장, 김동윤중위 해간 1기 )에 배치되었다가 3개월 후 중대가 전선으로 출동시 (1951년9월 초 ) 3개월만에 다시 중동부 전선( 강원도 만대리 분지, Punch Bowl )에서 전투중인 해병 제1연대 지역으로 복귀했다. 우리의 운명은 이렇게 처음 부터 이미 달리 정해져 있었나 보다.
나는 중대장으로부터 공격간 적정보고를 위해 EE-88 전화기를 휴대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는 적과의 거리가 너무 근접되어 있기 때문에 무선통화 내용이 적에게 감청당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EE-88 전화기를 줄로 목에 걸치고 전화선 드럼은 등에 메고 소대원들을 공격대기 지점으로 인솔하였다. 이동 중 멀리서 적의 박격포 사격소리가 들렸다. "펑! 펑!". 이윽고 적의 박격포 포탄이 날아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우리 상공에서 포탄의 날아오는 소리가 들리더니 갑자기 끊기고 포탄이 낙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 주변에 떨어지기 시작했다. 순간 나는 마치 몽둥이로 등을 한대 얻어 맞은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때 나는 자세를 낮추고 포복하는 자세로 능선을 넘고 있었는데 마치 땅위에 개구리가 동댕이쳐진 것 같이 땅바닥위에 동댕이쳐 졌다. 순간 뭔가 등에서 흐르고 있는 것 같아서 왼쪽 어깨등을 만져보니 작업복이 찢어졌고 그 속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파편을 맞은 것이다. 그러나 대수롭지 않게 느껴졌다. 너무나 긴장한 탓이었을까?혹은 대원들이 보고 있는 앞이어서 였을까? 다행히 대원들의 피해는 없었다.
09:00시 우리는 짙은 안개가 사라지고 정상의 적 진지가 희미하게 보이는 돌격선에서 착검을 하고 돌격준비를 완료했다. 사방은 새소리 하나 들리지않는 고요 속에 잠겨 있다. 정상까지의 거리는 50~60m로 30~40도의 경사를 이루고 있어서 수류탄 투척 거리 밖이다. 적의 진지는 산 정상에 있고 우리는 밑에서 돌과 흙으로 구성된 경사진 능선을 중심으로 기어올라가는 자세로 공격해야 했다. 나는 2소대장과 협의 후 호각 소리를 신호로 일제히 공격개시 하기 로 했다.
2소대장과 나의 " 돌격 앞으로!"의 명령으로 호각소리와 함께 일제히 돌격을 감행했다. 함성을 지르고 총을 쏘면서 ! 적과의 거리가 너무 가까워서 지원사격을 받을 수가 없다. 그러나 고지의 경사가 너무 심하고 또한 포탄으로 인해 바위가 모래같이 부스러져 있고 포탄으로 파여진 자국들로 인해 미끄러져서 우리는 정상으로 빨리 뛰어 올라갈 수가 없었다.
그 때 우리의 돌격 함성과 함께 정상의 적 진지로부터 어린아이의 머리만한 크기의 소련제 대형수류탄이 위로부터 검은 연기를 뿜으면서 굴러내려와서 우리 앞에서 또한 하늘로부터 마치 죽음의 사자와 같이 우리 주변 일대에 떨어져 폭발하였다. 어떤 수류탄은 우리 앞에서, 어떤 것은 우리 머리 위에서, 어떤 것은 우리 뒤에서 마치 105mm포탄의 폭발 소리와 같은 괴음을 내면서 폭발하여 우리의 전진을 저지하였다. 동시에 우측의 암벽진지로부터 적의 기관총이 불을 뿜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해병들이 쓰러졌다. 경사가 심하기 때문에 쓰러진 해병들은 아래쪽으로 굴러 내려갔다. 부상병들의 구원을 요청하는 절규의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우리는 어떻게 할 수 없었다. 순식간에 지옥을 보는 것 같았다. 그래도 우리는 그들을 돌봐줄 수가 없었다. 이에 굴하지 않고 우리는 계속 적진을 향하여 돌격했다. 총을 쏘면서 함성을 지르고 눈을 부릅뜨고 그야말로 무아중에 앞으로 뛰었다. 불리한 여건이었으므로 앞으로 나가는 해병의 수보다 쓰러지는 해병의 수가 점점 많아졌다. 물론 그 중에는 적탄을 피하여 엎드리는 해병도 있었다. 적을 목전에 바라보고 우리의 공격은 돈좌되어 우리는 엎드렸다. 적의 수류탄은 검은 연기를 뿜으면서 계속 날아오고 있었다. 그 와중에서도 해병들은 계속 사격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나의 바로 오른쪽 옆에 엎드려서 사격을 하고 있던 덩치 큰 AR사수의 사격이 갑자기 멈추었다. 철모를 쓴 얼굴을 땅에 묻고 있는 AR사수의 어깨를 흔들어 보았으나 무반응이 었다. 적탄이 AR사수의 철모를 정면으로 뚫고 관통한 것이다. 뒤통수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몇초 지났을까? 그 사수가 벌떡 일어났다. 완전히 일어서더니 뒤로 고목이 쓰러지듯이 쓰러지면서 아래쪽으로 굴러갔다. 세상을 영원히 떠난 것이다.
사방에서 부상병들의 신음소리, 구원을 청하는 소리, 적의 수류탄과 박격포 포탄의 폭발소리, 그 속에서 우리는 전원이 엎드려 개인호를 삽으로 팔수밖에 없었다. 나도 팠다. 그리고 그속에 쪼그려 엎드렸다. 순간 멀리서 적의 박격포 사격소리가 다시 들렸다. "펑!펑!" 10여발의 소리다. 적의 박격포 포탄이 여러발 날아오는 소리가 "쉿,쉿"하며 들리더니 그 중 몇발은 우리 주변에 떨어지지않고 우리가 엎드려있는 상공에서 갑자기 "쉿"하는 소리가 멈췄다. 그리고 우리 바로 주변에 떨어졌다.
박격포 포탄의 날라오는 소리가 들리다가 갑자기 멈추면 그 포탄은 우리의 바로 주변에 떨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 포탄은 하늘 높이 솟아 올랐다가 아무데에나 멋대로 떨어지기 때문에 전투중 우리가 가장 무서워하는 포 이다. 이것은 여러 전투에서 얻은 나의 귀중한 경험이다.
우리는 호속에서 눈을 꼭 감았다. 어디에 떨어질까? 나에게 안떨어지기를 빌면서!
바로 오른쪽 옆에서 폭발소리가 났다. 머리를 들어보니 나의 바로 오른쪽 1 m 지점 에 호를 파고 들어가 엎드려 있던 나의 전령인 양 해병(진해 출신)이 직격탄으로 명중되었다. 포연이 사라진 후 보니 나의 전령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움푹 파여진 호 속에서는 연기만 올라오고 있을 뿐이었다.
어떻게 이럴수가? 사람이 흔적도 없이 없어지다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이 광경을 보고 나는 이성을 완전히 잃은것 같이 되었다. 그리고 인생이 어떠함을 순간적으로 본것 같았다. 나는 오늘로 두번째 전령을 잃었다.
지난 4월 화천지구 전투에서 피리와 꽹과리를 불며,두들기면서 공격해 온 중공군과의 전투에서 소대장 전령인 오봉후해병(해병4기)이 적의 수류탄에 의해 전사했다. 그 중공군의 피리소리와 꽹과리 소리는 전투시 종종 들렸지만 그 때마다 우리의 머리카락이 위로 뻗쳐지는듯한 느낌을 주었다. 아주 기분나쁜 섬뜩한 느낌을 주며 또한 전투의욕을 약화시키며 소름을 끼치게 하는 느낌을 우리에게 주었다. 소대장의 분신과 다름없는 전령이 2명이나 2개월만에 전사했다.그것도 나의 바로 옆에서! 오봉후해병은 수류탄 파편이 목에 꽃혔었는데 그 부어있던 목 부위를 나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들것에 실려 후송되던 오봉후해병의 명복을 지금 다시 빌고 싶다.
나는 죽음에 대한 공포심도 마비된듯 하였다. 머리 속에는 죽으면 죽으리라 하는 생각이 가득 차있었다. 수차에 걸친 공격 중에 많은 부하 해병들이 전사했다는 데에서 오는 자책감과 강박감도 가중됐으리라. 나는 솟구쳐 오르는 어떤 표현할 수 없는 통분을 억누르기 힘들었다. 해병들의 사기는 떨어질대로 떨어져 이젠 어떻게 할 수도없게 되었다. 뒤돌아보니 대원들은 소대장의 얼굴 만 보고 있었다. 묘안이 생각나지 않았다. 어쩌면 좋은가? 이럴때 어떻게 하라는 것을 교과서에서는 배우지 못했다. 나의 결단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2) 3소대장의 수류탄 공격(슈류탄 돌격 소대장)
그 순간 나는 어떤 결심을 했다. 나는 2소대장에게 " 김 소위! 내가 저 정상의 적 진지를 분쇄 하고 올터이니 뒤를 잘 부탁한다" 고 했다. 2소대장은 " 않돼. 올라가면 죽는 거야!" 하며 극구 나를 말렸다. 그 옆에 있던 2소대의 어떤 분대장은 3소대장이 죽을 때가 돼서 이러는 것 아니야? 하고 어떤 대원은 소대장이 머리가 좀 이상해진 것 아닌가? 하는 수근거리는 소리들이 내 등 뒤에서 들렸지만 나에게는 그것이 남의 일처럼 느껴졌다. 좀 섭섭한 생각도 물론 들었으나 당시 나에게는 죽는다는 것이 그리 큰 문제로 생각되지 않았다. 그런 소리는 나의 머리 속을 잠깐 스쳤을 뿐 내가 죽는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어느 누가 자기자신이 전투 중에 죽는다고 생각할까?
나는 스스로 "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으니 나인들 좋아서 하겠는가? 나는 단지 나의 책임을 다할뿐이다" 라고 그들에게 무언의 항변을 하면서 나의 뒤쪽에 엎드려 있는 소대원들에게 " 산 위에서 무엇이든 움직이면 쏴!"라고 지시하고 안전핀을 뽑은 수류탄 2발을 양손에 쥐고 허리에 수류탄 2발을 차고 엎드려 포복으로 정상의 적 진지를 향하여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이 때 그렇게 요란스럽던 이곳이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적막 속에 잠겼다. 나는 마치 이 지구상에 나 혼자 있는듯한 착각속에 빠질 정도였다.
한참 포복으로 기어올라가는데 나의 뒤쪽에서 총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순간 정상으로부터 적의 시체가 굴러내려왔다. 정상에서 나를 발견한 적이 나를 저격하려는 순간 우리 소대원들이 일제 사격으로 사살한 것이다. 나는 대원들에게 감사했다. 나를 살려줘서라기 보다 나의 명령을 잘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위기를 모면했다.
땅 위에 혼자만 있는듯한 느낌 속에서 나는 계속 포복하여 적 진지로 기어올라갔다. 얼마나 지났을까? 나는 바로 머리위쪽에서 적의 웅성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정상에 가까이온 것이다. 그러나 머리를 들고 볼 수 없다. 오른쪽의 적의 진지로부터 노출되어 보이기 때문이다. 순간 나는 주저했다. 그 때 나는 철모가 아닌 전투모를 쓰고 있었다. 수류탄을 쥐고 있는 양손에서는 땀이 나기 시작했다. 웬 땀일까? 일어설까? 말까? 일어서는 순간 적의 총에 사살되는 것 아닐까? 여러가지 생각이 지난 일들과 함께 주마등같이, 번개처럼 나의 머리 속을 스쳐갔다. 그것도 잠깐! 나는 무아 중에 일어섰다. 정상에 우뚝 섰다. 적을 2~3m 거리에서 내려다 보는 위치에 있었다. 그 장면은 정말 소설 같았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게 느껴진다.
적들이 옆으로 앞뒤로 판 호 속에서 수류탄을 모아놓고 우리의 공격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그 당시의 상황을 잊을수가 없다. 다시 생각이 나서 흥분이 된다. 그러나 적은 내가 온 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그들을 총으로 갈기면 알맞은 순간이었으나 나에게는 총대신 수류탄밖에 없었다. 적은 우리의 공격에 대비하여 수류탄을 투척할 자세로 있는데, 그 순간 적과의 거리가 너무 근접하여 있었기때문에 나는 양손에 쥐고있던 안전핀을 뺀 수류탄 2발을 미리 격발시켰다. 이는 적이 주어서 다시 던지는 시간을 주지 않기 위함이다. "딱,딱"하고 수류탄의 격발 소리가 적막을 뚫고 들리는 순간 수그려져 있던 적의 머리가 들렸다.
적의 눈과 나의 눈이 소리도 내지 않고 부딪쳤다. 생사의 불꽃이 튀기는듯 했다. 순간 우리는 꼼짝도 않했다. 나도 놀랐지만 적은 더 놀란것 같았다. 그것은 정말 눈 깜짝할 사이의 순간이었다. 나는 '하나 둘 셋' 하고 그들 속에 수류탄 2발을 던지고 엎드렸다. "쾅,쾅" 소리와 함께 허리에 차고 있던 수류탄도 뽑아 격발시키고 좀 멀리 던졌다.
그리고 해병들이 엎드려 있는 쪽으로 마치 수영선수가 다이빙 하듯이 붕 떠서 40~50m의 거리를 곤두박질하면서 돌아올 때 2개의 수류탄 폭음이 뒤에서 들렸다. 순간 함성이 들렸다. 그 소리는 수류탄의 폭음소리보다 더 크게 느껴졌다. "우리 소대장님 만세" "우리 소대장님이 제일이다" 순식간에 대원들의 두려움이 소멸된 듯 했다. 사기가 되살아난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단지 살았구나 하는 생각 뿐이었다. 그리고 나의 행운을 하나님께 감사했다. 이후 나에게는 "수류탄 돌격 소대장"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3) 3소대장의 피격(인명재천)
우리는 더이상 지체할수 없이 다시 공격을 계속해야 했다. 소대원들도 어느정도 원기를 회복한 듯 보였다. 멋있는 서부활극을 공짜로 봤으니! 나는 소대장이기 때문에 맨 앞에 엎드려 대원들의 재차 공격을 위한 준비를 기다렸다. 정상까지는 60m 내외의 거리인데 단숨에 올라가기에는 경사도가 너무 심했다. 물론 수류탄을 투척해도 위로 도달하지 못하는 거리다. 그런데 산 위의 숲 사이에서 "딱콩"하는 총성이 들리더니 나는 마치 큰 방망이로 배를 얻어맞은 것 같은 큰 충격으로 몇바퀴 뒤로 뒹굴었다. 그리고 "맞았구나" 했다. 그 충격으로 순간적으로 움직일 수도 없었다. 정신을 가다듬고 보니 복부가 관통되었다면 어디인가 아플터인데? 피도 날텐데? 이상하게도 안그랬다. 그러나 배꼽 밑이 몹시 뜨겁게 느껴졌다. 피가 흘러서인가? 생각했다. 전투복은 틀림없이 총알에 맞아 구멍이 뚫렸는데, 마치 쥐가 이빨로 옷을 찢어 놓은 것 같이 전투복이 찢겨져 구멍이뚫여져 있었다. 그런데 나는 멀쩡했다.
이것은 적이 쏜 총알이 내가 죽음을 각오하고 적진에 수류탄을 투척하고 딩굴어 돌아왔을 때 내가 차고 있던 권총 탄띠의 왼쪽 허리에 차고 있던 탄창(칼빈 소총탄 15발) 2개의 주머니가 나의 복부쪽으로 돌아와 있어서 그 탄창의 맨 위 쪽에 있던 총알탄피(약협) 2개를 관통하고 관통력이 약해져서 총알이 회전하면서 나의 전투복을 뚫고 속내의를 뚫고 복부 위에서 기적적으로 멈췄던 것이다. 끄집어 내보니 아직 따뜻한 적의 총알이었다. 이거야 말로 "천우신조"가 아니겠는가? 만일 1~2mm라도 그 총알이 아래로 혹은 위로 혹은 옆으로 맞았으면 나는 틀림없이 척추관통으로 전사했거나 하반신 마비의 불구자가 됐을 것이다.
정말 거짓말 같은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누구든 이 사실을 믿을 수 없다 할것이다.
소대장이 적탄에 맞은 것을 보고 심통한 표정에 잠겨있던 대원들도 내가 "안 죽었어!" 하며 손을 흔들어 보이니 다시 함성이 일어났다. "우리 소대장님 만세!" 정말 하늘의 도우심이었다. 나는 "하나님 감사 합니다." 했다. 어떻게 이런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나는 "이제 나는 죽지 않는다' 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
이 사실이 얼마 후 당시 부산에서 발행되던 " 자유신문(신익희씨 발행)"의 사설(1951년 6월로 기억됨)에 " 인명은 재천이다" 라는 제목으로 기사화되어 세상에 널리 알려진바 있다.
우리의 전투지역은 고지대이기 때문에 식사추진이 잘 되지 않았다. 우리는 2일째 식사를 못하고 건빵과 물만 먹고 마시며 전투를 하고 있었다. 중대장에게 무전기로 상황보고를 하고 중대본부 지역으로 전원이 재공격준비를 위해 철수 하였다. 중대장도 우리의 전투상황을 뒷고지에서 관측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 소리가 없었다. 중대본부 관측소와 우리 공격부대 간의 직선거리는 70~80m정도였으니 말이다.
얼마후 2일간 밀렸던 식사가 K.S.C.의 노무원들의 지게로 운반되어 도착했다. 이들은 비전투원이지만 고생은 우리보다 더 하고 있었다. 그 험한 길을 총소리를 들으며 어디서 폭발할지 모를 대인지뢰의 위험과 폭탄 낙하의 위험에 노출되면서 우리의 식사를 운반할 뿐아니라 탄약도 운반해주는 아주 고마운 군번없는 군인들이었다. 우리는 이들에게 정말 진심으로 감사해야 했다.
밥은 1인당 철모에 수북히 하나씩 배식되었다. 이 철모는 우리의 밥통이며 물끓이는 그릇도 되고 때로는 세수대야도 되는 아주 귀중한 전투장비이면서 우리의 생활도구이기도 하다. 때문에 적탄에 관통되어 철모로서의 역할을 못하기도 했지만 우리의 귀중한 생활도구임에는 틀림없었다.
반찬은 소금과 함께 주먹만한 삶은 쇠고기 덩어리다. 우리는 철모에 수북히 담겨있는 밥을 다 먹어 치웠다. 2일분을 한끼로 먹어치운 것이다. 어떻게 그 많은 양의 밥을 다 먹을 수 있었는지는 알 수없지만 다 먹었다. 물론 나도 다 먹었다. 대원들의 얼굴에 희색이 되살아났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더니! 이것은 배가 불러서 인지? 아직 살아있다는데서 오는 안도감에서 인지? 알 수 없었다.그리고 우리는 5시간 정도 푹 쉬고 잤다. 재 공격을 위한 휴식 시간이다.
꿈 속에서 이들은 누구를 만났을까? 오전 전투에서 우리는 많은 희생자를 냈고 계속된 전투로 대원들은 무척 피곤한 상태이고 따라서 사기도 극도로 저하돼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목표 점령을 위해 다시 공격준비를 해야 했다.
그 와중에 중대 통신병이 SCR-300 무전기를 가지고 나에게 왔다. 1대대 작전장교(서정남대위)로 부터 나에게 직접 통신하겠다는 냉용이었다.
"여기 3소대장입니다.Over" 했더니 대대 작전장교의 목소리가 무전기를 통해 들렸다.
"3소대장, 공격하느라 수고가 많지? 대대장님(공정식소령 해사1기)께서 이번 공격에서는 반드시 '무명고지'를 점령하도록 하라는 특별지시가 있었으니 '무명고지'를 필히 점령하라"는 지시사항 전달과 함께 우리를 격려해 주었다.
나는 " 꼭 점령 하겠습니다." 하고 응답했다. 얼마나 상황이 긴박했으면 대대 작전장교가 중대장을 제치고 공격소대장에게 직접 목표점령을 지시했을까?
그 특별지시는 나에게 큰 격려가 됐고 이번 공격이 얼마나 책임이 막중한 임무인가를 다시 깨우쳐 주었고 우리를 더욱 분발하게 만들었다. 소대원들에게도 같은 내용을 설명해 주고 더욱 분발할 것을 강조했다.
17:00시. 나는 소대원 전원을 집합시켰다. 총원은 22명, 소대장을 포함하여 23명이다. 몰골이 말이 아니다. 40여명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이다. 그러나 그들의 눈동자는 번쩍이고 있었다. 그속에는 살기가 있었다. " 견적 필살"이다. 물론 나도 그들과 같았으리라!
"자, 아침 공격에서 우리는 많은 동료 해병을 잃었다. 그러나 목표는 점령 못했다. 이번에는 기필고 목표를 점령하여 전우의 원수를 갚는 거야. 인명은 재천이다. 나를 봤지? 적탄에 맞았어도 나는 살아있지 않나? 이제 각가 수류탄을 4발씩 휴대하고 가는 거야."
나는 말은 그렇게 했지만 눈물이 나왔다. 대원들의 눈에도 이슬이 맺혔음을 나는 똑똑히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아무말 없이 나의 지시에 묵묵히 따랐다. 이제 공격을 개시하면 우리 중 누군가 적탄에 맞아 부상당하거나 죽을 것이고 그것이 내가 될런지 어느 해병이 될런지? 운을 하늘에 맡길 수 밖에 없다. 이제 곧 우리는 모두 죽음 앞에 서게 된다.
4) 죽음 앞에서의 우리의 생각
우리는 이 때 무엇을 생각 했을까? 우리는 주어진 책임을 다하기 위해 스스로 죽음 속으로 뛰어 드는 것이다. " 국가와 민족을 위해 싸우기 위하여 목숨을 버릴 각오를 한다는 것은 당연하다 " 는 말은 죽음과 멀리 떨어져 있을 때 하는 사치품과 같은 소리로 생각되었다. 우리와 같은 상황에 있을 때 과연 그렇게 생각할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우리의 생각은 이거다. 처음에는 해병대의 명예를 위해 명령에 따라 공격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것보다 먼저 목표를 점령하므로써 전사한 전우의 원수를 갚는다는 생각뿐 이었다. 그리고 전투에 승리하여 해병대의 명예를 높임으로써 해병대의 전통과 명예를 이어갈 것이라는 생각뿐이었다. 그 이상 무엇이 필요한가? 이 때 우리에게는 생에 대한 애착이나 미련같은 것은 그리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죽음이란 남의 일 같이 생각되었다. 오로지 목표를 점령하므로써 전우의 원수를 갚는다는 생각밖에는 우리에게 없었다.
오전 전투에서 나는 총보다 지형적으로 수류탄이 더욱 효과적인 것을 알게 되었다. 각 해병에게 수류탄을 4개씩 분배하고 악수를 했다. 뜨거운 손, 찬 손, 거칠어진 손,그 손들! 이 손들이 동료의 원수를 갚기 위해 수류탄 공격을 감행하여 목표를 점령 할것이다. 이는 우리 해병대의 명예를 위함이며 궁극적으로는 이 나라를 위함이 이기도 하다.
우리가 죽어서 할말이 있다면 "우리는 최선을 다했다" 라는 이말 밖에는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자신이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는 해병은 한명도 없을 것이다. 나 자신이 내가 죽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우리가 만일 죽으면 국군묘지에 묻힐것이고 먼 훗날 우리들은 국민들의 기억에서도 사라지겠지? 하는 생각, 이것은 지금도 매년 현충일에 국군묘지에 갈 때마다 느껴지는 나의 솔직한 심정이다. 악수하는 대원들의 얼굴은 무표정 했다. 그러면서 나는 이 전투에서 내가 살아남으면 40세까지만 살아도 여한이 없겠다고 생각했다.
17:55분. 우리는 미 해병대의 항공기 지원(기총소사)1회와 155mm야포의 지원(중대1발)사격을 받았다.
18:00시. 우리는 다시 그 지긋지긋한 공격지점으로 조용히 다가갔다. 사방은 쥐죽은듯 고요 속에 잠겨 있었다.
이번에는 우리가 주공으로 우측이고 2소대는 조공으로 좌측이다. 소대원들에게 다시 착검을 지시했다. 육박전에 대비함이다. 아침과 같이 무명고지 정상은 조용하기만 하다. 나는 소대원중에서 특공대 를 편성하기위해 지원자를 모집했다. 고호선조장(해병3기)과 현태순 AR사수(해병4기)가 지원했다. 내가 평소부터 눈여겨 보던 대원들이다. 나는 이들에게 공격준비를 시키고 중대장에게 연막차장 지원을 요청했다. 이것은 우리 3명이 함께 목표 정상에 우선 뛰어 올라가 공격하기 위함이다. 이윽고 멀리 후방에서 "쿵"하는 소리가 들리더니105mm 연막탄이 "쉬"소리를 내며 우리의 머리 바로 위를 지나 목표 너머 에 떨어졌다. 무전기로 " 원탄이다 "했다. 제2탄을 사격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우리가 산개하고 있는 지역 에 떨어졌다. 해병 몇명이 "앗 뜨거워"하며 소리를 질렀다. 적과의 거리가 50~60m밖에 안되니 포병사격도 그리 쉽지 않았으리라.
나는 무전기에 대고 악을 썼다. 중대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 미안해, 그래 알았어." 이어서 제3탄이 목표에 명중했다. 그런데 아무도 올라가지 않았다. 중대장의 호통소리가 무전기 속에서 나의 귀청을 때렸다. " 망할 놈들 무엇하고 있는거야? " 그리고 제4탄이 날아 왔다. 정확히 목표상에 다시 명중했다. 나는 무턱대고 일어서서 착검을 한 총을 들고 연막 속으로 목표 정상에 뛰어 올랐다. 연막으로 인해 앞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우선 적이 파 놓은 호 속으로 뛰어들어갔다. 그 순간 적의 박격포 포탄이 나의 왼쪽에서 폭발했다. 나는 다시 나의 왼쪽 무릎부분이 몽둥이로 두들겨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느꼈으나 곧 잊어 버렸다. 옆을 보니 뒤따라 온 AR사수 고해병(해병4기)이 바로 오른쪽 호 속으로 뛰어들어 왔다. 호 속에는 적의 시체가 있었다. 아직 체온을 느낄정도였다. 정상에 우리 둘이 올라온 것이다.
연막이 개인 후 약 50m 전방의 바위 틈에서 우리 쪽을 향해 장총으로 사격하고 있는 적의 독전장교가 보였다. 곤색바지에 국방색 상의에 모자를 쓰고 권총을 차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우리를 아직 못봤다. 그 적에게 나는 칼빈총으로 총격을 가했으나 불발이다. 어떻게 이럴때 불발이 난담, 하면서 나는 즉시 AR사수의 AR로 그 적을 연발로 쐈다. 앞으로 거꾸러지는 것이 보였다. 그런데 그 순간 우리가 들어있는 호 앞 너머에서부터 그 지긋지긋한 소련제 대형수류탄이 역시 검은 연기 를 뿜으면서 날아오기 시작했다. 하늘이 까맣게 마치 까마귀 떼가 죽음의 사신으로 우리를 향하여 날아오는 것 같았다.
그러나 적과의 거리가 너무 가까워서 전부 우리 둘의 머리 위로 지나쳐 뒤에서 폭발했다. 우리는 우리 머리 위로 하늘을 날으고 있는 적의 수류탄을 쳐다보고 있었다. 혹시 그중의 한발 이라도 우리에게 떨어질세라! 그런데 그 중의 1발이 AR사수가 있는 호 속으로 떨어졌다. " 앗 " 하는 순간 그 AR사수는 적의 수류탄을 주워 적진으로 되던졌다. 적진에서 " 쾅 "하고 터졌다. 계속 20~30발 정도의 적의 수류탄이 날아오더니 뜸해졌다. 그리고 잠시 조용해졌다.
" 이번에는 우리 차례다." 하고 둘의 것을 모으니 수류탄이 8발이다. 나는 적이 바로 앞 너머 10m정도 지점에 있음을 알 수 있었기 때문에 수류탄의 안전핀을 뽑고 격발시켜서 멀리. 가끼히 그리고 좌우로 고루고루 적진에 던졌다. AR사수는 적의 역습에 대비 경계케 했다. " 쾅,쾅 "하는 소리가 바로 앞에서,오른쪽.왼쪽에서. 그리고 멀리서 들렸다. 8발의 수류탄 폭발 소리를 나는 세었다. 조용해졌다. 이제 육박전을 할 순간이 온 것이다. 그 순간 나는 무아중에 무명고지 정상에 우뚝 올라섰다. AR사수도 뒤따랐다. 앞에 도망가는 적들이 보였다.
5) 돌격 앞으로 ( 적 생포)
나는 " 돌격 앞으로!" 라고 소리를 질렀다. 이것은 명령이다. 젖 먹을 때 힘도 합친 것 같았다.
교과서에서 배운대로 했다. 이 " 돌격 앞으로!"라고 외칠 때 그 기분은 당사자가 아니고는 절대 이해 할 수 없다. 그 기분은 마치 이 세상을 내가 움켜잡고 있는듯 했다. 그 순간의 감격은 뭐라 표현하기 어렵다. 흥분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지금 이 순간 에도 그렇다. 나는 지금도 인생을 그렇게 살고 싶다. " 돌격 앞으로 " 하는 인생은 얼마나 멋이 있을까? 그것은 누구보다 앞서는 삶이 돨것이 아닌가?
나는 이번 전투에서 " 돌격 앞으로" 를 두번 명령 했다.
한번은 목표 정상에 있는 보이지 않는 적이 어떤 상태에 있는지 확실히 모르고 돌격거리에 도달했기 때문에 " 돌격 앞으로!" 했다. 돌격함성을 질렀으나 그 소리는 미지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감을 물리치기 위한 외침이었으나 이번의 나의 " 돌격명령 "은 적을 격멸하고 목표를 완전히 점령하고 방어중에 있던 적을 소탕하는 단계에 이르렀기 때문에 이번의 나의 " 돌격 앞으로 " 의 명령소리는 간간히 들려오는 총성보다 더 컸다. 그리고 자신감에 찬 승리의 소리였다. 그 소리는 멀리서 메아리치는 소리로 우리에게 다시 들려왔다. 이것은 승리의 외침 그 자체다. 도망가는 적들이 바로 눈앞에 보였다. 2명, 3명, 사살하기보다 생포할 생각이 앞섰다. 우선 죽이기보다 어떤 적인지? 보고 싶었다. 다시 " 돌격 앞으로" 하면서 나는 AR사수와 함께 앞으로 뛰었다. 뒤돌아 볼 겨를도 없었다. 뒤에서 해병들이 따라오겠지 하고 생각 하면서!
그러나 " 와 " 하는 해병들의 돌격 함성은 들리지 않았다. 뒤돌아 와서 고지 아래쪽을 내려다 보니 우리가 적과 수류탄 투척 공방할 때 소대원들은 굴러오는 적의 수류탄을 피해 정상에서 30~40m 아래쪽으로 물러서 엎드려 있었다. 나는 다시 소대원들을 보고 " 돌격 앞으로 " 하고 도주하는 적을 쫓았다. 대원들이 쫓아오건 말건 좀 무모했지만 그리고 쫓아가 적을 잡아서 원수를 갚는다는 생각 밖에 없었다. 도망가는 적 1명을 잡았다. 어떻게 잡았는지는 기억도 안 날 정도 였다. 뒤에서 덮쳐서 잡았다. 이것은 전투가 아니라 마치 술래잡기를 하는 것 같았다.
생각할 수록 무모한 나의 행동이엇지만 나는 오늘까지도 나의 그때의 그 순간에 대해서 남 다른 자부심을 갖고 있다. 그것은 육박전에서 도주중에 있는 적을 직접 내손으로 생포했기 때문이다.
이런 일은 흔히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쓰러진 적을 일으켜 꿇어 앉히고 그 머리에 총구를 댔다. 죽이려는 생각에서 였다. 그런데 전사한 해병들의 얼굴이 눈 앞에 떠 올랐다. 동시에 그들의 원수를 갚아야 된다는 생각이 났다. 순간 적을 보니 사람으로 보이지 않고 무슨 짐승의 얼굴로 보였다. 그래서 방아쇠를 당기려는 순간 적의 얼굴이 보였는데 그 적은 무릎을 꿇고 마치 파리가 두 앞발을 비비고 있는 것 같이 양손바닥을 부쳐서 비비면서 살려달라고 하는 소리가 들렸다.
" 살려 주세요" " 살려 주세요"
그 절망에 찬 애절한 표정을 나는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나는 그 얼굴에서 다시 전사한 해병들의 얼굴을 보았다. 순간 어디선가?소리가 들렸다. " 죽이지 마라 이것은 살인이다." 그러나 나는 머리를 가로 저었다. 이것은 살인이 아니다. 수많은 해병들의 희생의 댓가로 이 적을 나는 사살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그 소리가 다시 들렸다. " 죽이지 마라 이것은 살인이다." 나는 그 소리에서 어떤 저항할 수 없는 압박감을 느꼈다. 나는 적의 얼굴을 다시 노려봤다. 순간 불쌍한 생각이 들었다. 같은 동족인데! 결국 나는 저항력을 상실한 적을 구태여 사살해야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총구를 적의 얼굴에 댔을 때의 " 살려 주세요" 하고 애원할 때의 그 얼굴, 그리고 총구를 치우고 " 일어섯" 했을 때의 적의 " 살았다 "하는 안도와 감사의 표정을 통해 나는 많은 것을 순간 느꼈다. 그리고 그 포로의 얼굴에서 죽음과 삶을 동시에 볼 수 있었다.
그러면서 나는 내가 알 수 없는 어떤 자비를 베푸는 자의 희열을 맛본 것 같았다. 결국 나는 그 포로를 사살하지 않고 후송시켰다.
6) 소대장의 부상 및 후송
그리고 나는 목표를 점령할 때 바로 옆에 떨어진 적의 박격포 포탄의 파편에 의해 몸의 왼쪽 부분, 겨드랑이, 왼쪽 다리 특히 무릎 관절 속으로 파편창을 입은 것을 잊고 있다가 목표 점령 후 긴장이 풀려서 인지 왼쪽 다리가 뻣뻣해지면서 움직일 수 없게 되어 쓰러졌다. 그때에 분대장들이 쫓아왔다.
" 소대장님! 이놈 사살합시다." 하면서 성화가 대단했다. 그러나 나는 " 이 포로는 소대장이 잡은 포로이니 죽이면 않돼" 하고 사살 못하게 하고 후송 시켰다. 그 후 그 포로는 어떻게 되었을가? 오랜 훗날에 나는 그 포로에 대한 소식을 3분대장을 통해서 들었다. 슬픈 소식 이었다. 주변 일대는 땅거미가 지기 시작했다.
나는 어두운 밤길 고지 능선을 따라 덩치 큰 3.5인치 로켓포 사수의 등에 엎혀 밤새 10시간 동안 넘어지며 뒹굴며 하면서 동이 틀 무렵에서야 구호소에 도착했다. 고지가 험준해서 들것을 이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구호소에서 간단한 응급치료를 받고 미군 헬리콥터에 실려 원주로 후송되었다.
그리고 미군 수송기편으로 부산을 경유하여 진해 해군병원에 입원하여 1개월간 치료 후 퇴원했으나 좌측 무릎 관절 속에 박혀 있는 파편은 제거 못하고 1954년 미국 해병학교( Basic School. Quantico Vr. )에 유학 중 상처가 재발하여 미 해군병원에 1개월간 입원하면서 좌측 무릎 관절속의 파편을 수술, 제거했는데, 팥알만한 크기의 까맣게 변색한 파편이었다.
7) 전투 공로 포상
이 전투에서 2중대장에게는 " 을지무공훈장" 이, 나와 함께 목표로 뛰어올라 갔던 AR사수 고해병은 " 미국 동성무공훈장 " 그리고 나에게는 " 미국 은성무공훈장 (U.S.Silver Star Medal) " 이 수여됐고 3분대장(장이삼삼등병조)은 1계급 특진했다. 고해병은 적을 계속 추격중 애석하게도 적의 따발총 사격에 의해 전사했다.
2중대 출신 장교 8명중( 후임 중대장 및 후임 소대장 ) 아직 생존하고 있는 장교는 3소대장이었던 나( 이근식소위- 예비역 해병대령 )홀로 70대 중반에 들어서고 있을 뿐이다. 그때 나는 21세였다.
8) 결 론
물론 전투는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한다지만 그것은 대의명분이고 직접 총을 들고 적과 전투를 하는 군인들은 그것에 앞서 상관의 명에 의해 전투를 하며 또 전투중 전사한 전우의 원수를 갚기 위해 전투를 하게 된다.
이것이 우리 해병대 장병들이 당시에 갖고 있던 전투정신이며 또한 희생의 정신이다. 그것이 행동화되면 우리는 그것을 " 해병대의 전통 " 이라고 말한다.
결국 우리는 해병대의 전통을 위해서 전투한 것이다. 그 정신이 오늘의 해병대, 귀신 잡는 해병대를 만들었다.
오늘의 모든 해병가족들은 이 선배 해병들의 희생의 정신을 본 받아 이 나라와 이 백성을 위한 헌신으로 해병정신과 해병대 전통을 이어 가자.
참조: 해병정신과 해병대전통을 회복하자 (www.oldmarine.co.kr)
참고서적:1." 노 해병의 어제와 오늘 " ( 2002년8월15일 출간. 이근식대령(예)저 )
2." 덕산에서 월남까지 " ( 상권.정채호저-우정출판사 )
3. 한국전쟁전투사( 도솔산전투 ) 국방군사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