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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치볼 지구 전투전적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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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적비로 오르는 가파른 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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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양구군 해안면에 있는 펀치볼 분지 전경.
 전쟁은 이 땅에 깊은 상처만 남겨둔 채 60년이라는 세월이 훌쩍 지나갔다.

 60년, 강산이 여섯 번이나 바뀌었을 시간…. 이젠 상처가 아물고 덮일 때도 됐건만 곳곳에는 아직도 그 흉터가 움푹움푹 패여 있다.
도대체 얼마의 시간이 지나야 온전히 치유될 수 있을까. 펀치볼 가는 길, 기자는 마음 한편을 짓누르는 무게감에 가슴이 뻐근해 옴을 느꼈다.

 강원도 동부전선 최전방에 있는 펀치볼은 가칠봉·도솔산·대암산 등 1200m 내외의 산들로 둘러싸여 있는 전형적인 분지다. 남북이 7.5㎞, 동서가 5.5㎞, 면적 44.7㎢의 타원형으로 여의도의 5.3배에 이르며 지금은 550여 가구 1500여 명이 살고 있다. 원래는 큰 호수였으나 지각 변동으로 물이 빠져 사람이 살 수 있는 땅이 됐다고 한다. 전해오는 얘기로는 이곳에 뱀이 많아 주민의 피해가 심했는데, 도사가 나타나 돼지를 키우면 뱀 피해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해 마을 사람들이 돼지를 키우면서 뱀이 사라졌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의 지명이 돼지 해(亥)자와 편안할 안(安)자를 써서 해안(亥安)이 됐다고 한다.

 1951년 7월부터 시작된 휴전회담은 전선을 교착 상태에 빠뜨렸고, 이런 상황에서 한 치의 땅이라도 더 차지하기 위해 피아간 치열한 전투가 치러지게 된다. 자연히 펀치볼을 둘러싼 봉우리들은 격전 속에 휘말린다.

 그해 8월 29일부터 10월 30일까지 치러진 펀치볼 지구 전투에서 국군 해병 제1연대와 미 해병 제1사단은 1026고지(모택동 고지)와 924고지(김일성 고지)를 놓고 북한군 1사단과 피할 수 없는 승부를 가리게 된다.

 적은 펀치볼 지역의 돌출된 지형을 이용, 국군과 미군을 분리하기 위해 작전을 전개한다. 이에 아군은 펀치볼과 그 북쪽 감제고지를 목표로 선제 공격을 가한다. 북한군은 도로에 지뢰를 매설하고 방어진지를 견고하게 구축했으나 한미 해병은 이에 굴하지 않고 포병과 근접항공지원 사격으로 적을 몰아붙인다. 3주에 이르는 일진일퇴의 공방전 끝에 아군은 북한군 1사단을 격퇴함으로써 적을 간무봉 방면으로 후퇴시켰고, 해안분지 북쪽의 주요 고지들을 확보하며 작전의 주도권을 잡게 된다.

이 전투에서 아군은 적 사살 2799명, 포로 557명의 전과를 올린 반면 428명이 전사하고 1062명이 부상당해 당시 미국 언론에서도 대대적으로 보도할 만큼 빛나는 전과를 올렸다.
이 지역 전투의 승리와 산화한 넋을 기리기 위해 1958년 3월 15일, 육군 3군단이 건립한 펀치볼 지구 전적비는 강원도 양구군 동면 월운리에 있다. 눈에 띄는 이정표도 없이 국도 변 좁은 계단 위에 있어 일부러 찾지 않으면 그냥 지나쳐 버리기 십상이다.

 이곳은 벌써 영하의 추위가 매섭다. 칼바람 속에 찾는 이 없이 외롭게 서 있는 전적비는 보는 이로 하여금 초라함을 느끼게 했다. 전적비를 찾아다니며 기자는 치열했던 격전의 현장, 가슴 벅찬 승리의 현장, 피와 눈물로 범벅됐을 그곳이 언제 그랬냐는 듯 적막하고 쓸쓸해 마음이 아팠다.
전적비 앞 긴 계단을 내려서니 바람에 뒹구는 낙엽이 ‘쏴~쏴~’ 울고 있다.
 

→ 펀치볼(Punch Bowl)
강원도 양구군 해안면에 있는 분지의 지명으로 6·25전쟁 때 종군 외국인 기자가 해안분지에 운해가 떠 있는 모습을 보고 붙인 이름이다. 펀치볼은 포도주에 과일 등을 섞어 만든 ‘펀치’라는 칵테일을 담는 화채 그릇을 말하는데, 이 분지가 마치 펀치볼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졌다.

<국방일보 글·사진 = 이승복 기자   yhs920@dem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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