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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솔산 탈환 후 적정을 감시하는 해병대 용사들(1951년 7월)

 


‘귀신 잡는 해병’이라는 영광스러운 별명을 가진 대한민국 해병대! 그들은 참으로 용감했고 백적백승이었다. 인천상륙작전보다 먼저 한국 해병대 단독으로 실시된 통영상륙작전에서 적의 기세를 꺾고 조국을 구했으며, 도솔산전투에서는 미 해병이 공략하지 못하는 난공불락의 요새를 점령함으로써 천하무적임을 입증했다.

우리 군이 낙동강 전선까지 밀려 고전하고 있을 때, 서부전선에서는 인민군이 마산 코앞에 있는 진동리를 장악하고 마산과 진해를 위협하고 있었다. 마산에 대한 철통 방어가 이루어지자 이번에는 거제 앞바다 통영을 점령해 부산에 대한 위협을 가중하려 했다. 이때 해군참모총장 손원일 제독은 한국 해병대 단독으로 ‘통영상륙작전’을 계획하고 해병대 제1대대(대대장 김성은 중령)로 하여금 8월 17일 오후 8시를 기해 상륙작전을 감행하도록 명했다. 

우리 해병대는 해군 함정 7척과 어선 20척을 투입해 적을 완전히 소탕하고 작전을 성공시켰다. 적 사살 469명, 포로 86명, 그리고 수많은 장비를 노획했다. 이 작전의 성공으로 적은 낙동강 방어선을 넘지 못했고 국군과 유엔군은 인천상륙작전이 이뤄질 때까지 한 달 동안 부산 교두보를 지킬 수 있었다. 통영상륙작전은 한국해병대의 단독작전이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당시 이 작전을 취재한 뉴욕 ‘헤럴드 트리뷴’지의 극동 지국장 마거릿 히긴스 종군기자는 기사 중에 ‘그들은 귀신이라도 잡을 수 있을 것(They might capture even the devil)’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이것이 ‘귀신 잡는 해병’이라는 별명의 유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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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솔산 제9 목표를 점령하고 난 뒤 전사한 전우를 위해 나무에 충령비를 쓰고 있는 해병대 김문한 소위. 국방일보 DB



도솔산의 신화

해병대의 신화는 도솔산전투에서 더욱 빛났다. 중공군의 제5차 5월 춘계공세가 유엔군에 의해 분쇄되고 소련이 휴전을 제의할 무렵인 1951년 6월, 중부전선 도솔산 일대에서는 우리 해병대와 공산군 간에 치열한 고지 쟁탈전이 벌어졌다. 한국해병대 제1연대는 미 해병 1사단의 반격계획에 따라 1951년 6월 3일 미 해병 5연대가 맡고 있던 도솔산의 작전구역을 인수하고, 곧바로 6월 4일부터 도솔산 점령을 위한 전투에 들어갔다.

도솔산은 양구와 인제 사이에 있는 험준한 암석산으로, 바위가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는 해발 1178m 고지이며 주변에 가칠봉(1142m)·대암산(1314m) 등이 연결된 요충지다. 북한군은 제5군단 예하 12사단과 32사단을 이곳에 배치해 방어하고 있었다.

미 해병 1사단으로부터 도솔산 공격을 명받은 한국해병대 1연대장 김대식 대령은 기암절벽으로 둘러싸인 작전지역의 지형을 분석하고 3개 작전구역으로 나누어 예하 대대로 하여금 6월 4일 오전 8시에 일제히 공격하도록 했다.

제1대대(공정식 소령)는 중간지대인 680고지와 611고지를 선 점령하고 목표1·2를 탈취하며, 제2대대(윤영준 소령)는 1058고지와 912고지 부근에서 목표 8·9를 점령하고, 제3대대(김윤근 소령)는 연대의 예비대로서 854고지를 선점하고 연대를 우회 엄호하도록 했다. 아군은 오전 8시에 일제히 공격을 시작했다. 그러나 적은 수류탄과 자동화기로 완강히 저항했으며 공격은 중간에 수시로 좌초됐다. 도솔산은 바위가 많았고, 적들이 바위틈에 숨어 저항하는 바람에 항공기 폭격도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6월 5일, 제1대대는 수류탄과 근접전으로 12시쯤 중간목표를 탈취하는 데 성공했다. 2대대는 수차 공격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차기 전투준비에 들어갔다. 3대대는 오후 3시에 중간목표를 탈취하고 계속 전진, 목표 근방까지 갔으나 밤이 되자 철수해 급편 방어에 들어갔다. 

6일과 7일에도 공격은 계속됐으나 적의 저항을 뚫지 못했다. 8일 아침, 3대대는 목표 13을 향해 공격을 재개했다. 적도 진지를 고수하려는 듯 자동화기로 강하게 저항했다. 그러나 3대대는 물러섬 없이 필사즉생의 각오로 각개약진으로 돌진, 4일 만에 피로 얼룩진 목표 13을 점령하게 됐다. 3대대가 목표를 점령하자 다른 대대의 공격은 수월해졌다.

9일 제1대대는 오후 3시30분 목표 탈취에 유리한 능선상의 고지를 점령했고, 2대대는 야포 지원 속에 오후 5시20분 공격을 개시해 7중대장 박정모 중위의 지휘 아래 목표 9를 점령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살아남은 병사는 10명뿐, 아군의 희생이 너무 컸다.

3대대는 오전 7시에 적의 역습을 받았다. 적은 전날 목표 13을 아군에게 빼앗기자 이를 만회하기 위해 9일 아침 일찍 역습에 나선 것이다. 그러나 9중대장 강복구 중위와 대대 작전장교 박동렬 중위가 역습에 대비해 미리 중요지점에 경계분초를 설치하고 기관총과 로켓포를 배치해 대비하고 있었기에 역습을 쉽게 물리칠 수 있었다. 6월 10일, 1대대는 미 해병 항공기의 지원을 받으며 오전 6시 공격을 개시했다. 그러나 적의 저항이 완강해 일진일퇴를 거듭하다가 결국 목표 탈취는 실패하고 현 진지에서 고착됐으며, 오후부터는 부대 정비에 들어가는 바람에 공격은 다음날로 미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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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대통령 ‘무적해병’ 휘호. 국방일보 DB
 

11·12일 이틀간 실시된 전투에서 제1대대는 목표 4와 7, 제2대대는 목표 8·9·10, 제3대대는 목표 11·12를 차례로 탈취했다. 이로써 난공불락으로 여겨지던 목표 4·9·12를 완전히 탈취하고 미 10군단의 작전통제선인 캔자스 라인(kansas line)까지 밀고 들어갈 수 있게 됐다. 이제 도솔산 정상(목표 22) 턱밑까지 진출하게 된 것이다.

최종 목표인 목표 22(도솔산 정상 1148m)에 대한 공격이 6월 18일에 시작됐다. 3대대는 해병대의 항공지원과 포사격 지원 하에 오전 9시 공격을 시작해 오전 11시30분에 중간목표인 목표21을 먼저 점령했다. 19일 자정에 여기서부터 동측 능선을 따라 야간공격을 실시했다. 11중대는 목표의 우단부를 공격하고, 10중대는 정면을 향해 공격해 들어갔다. 비록 험준한 산악이지만 야음을 틈타 한발 한발 목표를 향해 접근했다. 목표 가까이에 이르자 함성과 함께 정상을 향해 돌진, 적과 육박전을 벌이면서 마침내 오전 5시30분 도솔산 정상을 점령했다.

한편 1대대는 3대대가 이미 점령한 도솔산 정상에 집결한 다음, 전과 확대를 위해 19일 오전 8시 목표 23과 24를 향해 추월 공격해 오전 11시10분에 점령했으며 미 해병 제7연대와 연결했다. 이로써 아군은 1951년 6월 4일부터 19일까지 16일간의 격전 끝에 24개 목표를 완전히 점령하고 적의 역습에 대비해 방어진지 구축에 들어갔다.

한편 이 전투에서 적 2263명을 사살하고 44명을 포로로 잡았으며 기관총 24정, 따발총 63정, 장총 14정, 자동소총 2정, 박격포 44문, 대전차포 1문 등을 노획하는 대전과를 올렸다. 아군 피해는 전사 123명, 부상 582명, 행방불명 11명 등이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현지를 방문, 해병대1연대에 부대표창을 수여하고 무적해병(無敵海兵)이라는 친필 휘호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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