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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병대 처녀 출전 금강지구 사수

 

오래전 필자가 강화도에서 군 복무할 때 그곳에서는 해병대를 자주 볼 수 있었다. 상대를 쏘아보는 듯한 강렬한 눈빛, 진녹색 바탕에 칼날처럼 반듯하게 각진 군복, 쇠모 전투화, 태양·바람, 그리고 고된 훈련으로 단련된 몸, 쉰 목소리, ‘귀신잡는 해병’에 걸맞은 용감함과 민첩성. 누구에게 물어보든 그들의 인상은 매우 강렬하고 과격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제대한 지 20여 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는 그들에게 비애와 비장감이 더 강하게 느껴진다. 아마도 부대 특성상 전쟁이 발발하면 최전선에 가장 먼저 뛰어들어야 하는 운명 때문인지도 모른다.이번에는 우리 세대에게는 야구명문 군산상고로, 그 윗세대에게는 일제시대 미곡 공출항 이미지가 강한 전북 군산의 ‘해병대 군산·장항·이리지구 전적비’(사진)를 찾았다.

옥구는 지금도 청정쌀로 유명하다. 군산은 그런 역사를 반영하듯 일제시대 양질의 미곡이 일본으로 강제 공출되던 곳이다. 일제 치하에서 수많은 한국인이 굶주린 배를 부여잡고 있을 때 우리의 애환이 서려 있는 쌀을 가득 실은 배는 일본으로 향했고 그때마다 우리의 할아버지·할머니들은 숱한 눈물을 뿌렸다.

한편 고교야구가 국내 최고 스포츠로 자리 매김 하고 있던 1980년대에는 군산 하면 군산상고였다. 군산상고는 역전의 명수로 유명했다. 7, 8회까지 줄곧 지다가도 9회말이 되면 오뚜기처럼 호쾌한 공격으로 경기의 흐름을 순식간에 바꿔놓곤 했다. 김봉연·김일권·김성한·조계현·조규제에서부터 이진영에 이르기까지 군산상고 출신 야구선수들의 끈기는 정말 대단했다.

일제의 압제와 수탈 속에서도 잃지 않았던 민족적 자존심, 뱃사람의 자존심이 그들에게 은근이 배어 있기 때문이라고 하면 지나친 얘기일까.이런 저력에는 나름의 역사적 배경이 있다. 삼국시대 군산은 ‘기벌포’로 불렸는데 기벌포는 백제가 멸망한 후 백제 부흥군의 군사 중심지가 됐다. 삼국통일을 위한 전쟁이 한창일 때에는 신라군이 설인귀의 당나라 해군을 격파한 곳이기도 하다.

고려 말기에는 이곳에 ‘진성창’이라는 곡식 창고가 있었는데 이를 약탈하려는 왜구의 출몰이 잦았다. 화약으로 유명한 최무선 장군이 왜구를 섬멸했던 진포대첩이 바로 군산에서 있었다. 이렇게 군산은 금강 하구를 중심으로 해 드넓은 곡창지대가 펼쳐져 있고 그런 만큼 전략적 요충지의 성격을 지녔으며 이것이 은근과 끈기, 그리고 패기를 지닌 군산인의 성품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고 보는 것도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6·25전쟁 때 한국 해병대가 처녀 출전한 곳이 바로 군산이다. 50년 7월 16일 1개 대대 규모의 고길훈 부대는 충남 천안에서 호남 방면으로 진격해 오는 북한군 제6사단 13연대에 대응해 서해안의 젖줄인 금강지역을 사수하는 임무를 맡았다. 고길훈 부대는 군산에 투입된 후 장항·이리 등에서 거침없이 남하해 오던 북한군의 진격을 저지함으로써 당시 전선의 상황을 크게 바꿔 놓았다.

이 전투를 시발로 해병대는 낙동강전선 전투, 인천상륙작전 등에서 혁혁한 공을 세우며 새로운 신화를 열어 갔다.90년 해병대사령부에서 해병대 창설 멤버와 이 전투에 참가한 선배들의 공로를 기리기 위해 만든 ‘해병대 군산·장항·이리지구 전적비’는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전북 군산시 신흥동 38-3번지 언덕에 세워져 있다. 전적비를 보고난 후 얕은 고갯길을 내려오다 보니 꽃봉우리 채 땅 위에 떨어져 있는 붉은 동백꽃이 눈에 들어온다. <국방일보 서동일 연구관 국가보훈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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