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70년사 전후정비기
교육단 창설(1953. 2. 1.)
6·25전쟁 기간 중 교육훈련의 중요성을 절감, 독자적인 해병대의 장교, 부사관, 병을 양성하기 위하여 해병학교 및 해병훈련소를 기간으로 해병 교육단을 창설하여 상륙작전을 주 임무로 하는 해병대식 교육훈련으로 강인한 해병을 창출하는 산실 역할을 수행하였다.
제1여단 창설(1954. 2. 1.)
제1전투단을 기간으로 제1여단을 창설하여 파주군 금촌면에 주둔하면서 상륙작전부대로서 조직을 정비하고 서부전선 및 수도권 방어 임무를 수행 하였고, 1954년 3월 17일 미 해병대 제1사단의 본국 철수로 작전지역 작전권을 인수하였다.
제1상륙사단 창설(1955. 1. 15.)
제1여단을 기간으로 제1상륙사단을 창설하여 수도권 방어 임무를 수행 하면서 상륙훈련을 실시하였고, 1959년 3월 28일에는 파주 금촌에서 포항으로 이동하여 상륙작전임무를 본격적으로 수행하였다. 1959년 3월 30일, 대통령령 제1468호에 따라 제1상륙사단으로 개칭하였다가 1973년 10월 10일, 제1해병사단으로 부대명칭이 변경되었다. 제1사단은 국가 유일의 전략기동 부대로서 완벽한 출전준비태세를 유지하다가 유사시 동·서해안에 상륙작전을 실시하는 부대로서, 북괴군 5개 군단을 고착, 견제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해병대사령부 서울용산으로 이전(1955. 3. 26.)
1949년 4월 15일 진해에서 창설한 후 6·25전쟁이 발발 당시 제주도에 주둔하고 있었던 해병대사령부는 전투부대와 함께 부산 → 인천 → 서울 → 고성 → 원산 → 진해로 이동하다가 1951년 5월 20일에 부산 용두산 공원으로 이동하였다. 이렇듯 싸우면서 자라온 해병대사령부는 휴전 후 서울 용산으로 이동하여 해병대 부대의 구심점 역할을 수행하였다.
1956년 6월 준공한 서울 용산의 해병대 사령부 전경
도서부대 창설
동해안의 여도, 모도, 사도, 황토도, 웅도, 양도부대와 서해안의 초도, 석도부대가 휴전협정에 따라 진해로 철수하여 해병 제2연대의 모체가 되었다. 그러나 백령도와 연평도에 주둔했던 서해부대는 계속 잔류하여 서해안의 5개 전략도서 방어 임무를 수행하다가 1954년 3월 17일, 미 해병대가 본국으로 철수함에 따라 도서작전에 대한 작전권을 인수하였다. 그 뒤 서해도서 부대(1955.2.1.), 해병함대부대(1958.4.15.), 함대해병경비부대(1959. 4. 1.)로 개편되었으며, 1960년 1월 1일부로 해병도서경비부대로 증·개편되어 임무를 수행하였다.
도서 방어부대 부대기
53년 서해도서를 방어하는 해병대 신문기사
보급정비단 창설(1955. 6. 1.)
해병대 전 부대에 대한 독자적인 보급 및 정비지원을 위하여 보급정비창을 보급정비단으로 개편하였다. 이 부대는 각종 보급품의 청구·획득·저장 및 불출하고 해병대 군수물자의 3, 4단계(LVT는 4, 5단계)정비를 담당하는 전투근무지원 모든 기능을 수행하였으며, 전시 작전부대를 위한 전방전투 근무지원단을 편성하여 지원 임무를 수행하였다. 특히, 차량, 공병, 통신, 정비교육과 병참 물자의 생산(LVT 재생) 및 기술검사, 이동정비를 실시 하면서 무기, 장비의 폐품처리 등과 같은 업무도 담당하였다.
해병 제1상륙사단 포항으로 이동(1959. 3. 28.)
해병대는 포항에서 주둔하고 있었던 미 해병대 제1비행사단이 귀국함에 따라 1956년 7월 1일, 포항기지를 창설하여 오천비행장(K-13) 기지를 인수하고 주둔지 경계 및 교육시설을 관리, 유지하면서 포항기지에 예비역 교육대를 설치하여 예비역 해병 입영근무 소집을 실시하다가, 1958년 4월 15일 해병포항기지로 개편하였다. 해병 제1상륙사단은 상륙작전부대로서 체제를 정비하는 한편 상륙작전 및 지상작전 임무를 수행하다가 1959년 3월 28일 파주 금촌에서 포항으로 이동하여 상륙작전 임무를 본격적으로 수행하였다. 제1상륙사단이 포항으로 이동함에 따라 1959년 2월 26일, 제1연대를 기간으로 제1임시여단을 신편한 후 김포반도에 계속 주둔케 하여 서부전선 및 수도권 방어를 수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