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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 70년사 베트남파병기

 

 해병대 베트남전쟁 파병

 

1965년 8월 13일, 정부와 국회는 북베트남 침략에 직면한 자유베트남 공화국을 지원하기 위하여 한국군의 베트남 파병을 결정하였다. 이러한 결정에 따라 파병부대로 제2여단(청룡부대)을 창설하여 우리나라 5천년 역사상 전투부대로는 최초로 외국 원정군으로 파월하였다. 캄란에 상륙한 청룡부대는 투이호아지구, 추라이지구, 호이안지구 전투를 수행하면서, 6년 5개월 동안 짜빈동 작전 등 수많은 전투를 통하여, 조국의 명예와 해병대의 용맹성을 발휘하여‘신화를 남긴 해병대’의 전통을 수립하였다.

 

한국 해병대 베트남전쟁 이동경로.gif

 

 

청룡부대 창설(1965. 9. 20.)

 

공산군의 위협에 대처하고 있는 자유 우방국으로서 공동 운명체의 사명감을 느껴 동남아시아와 세계의 평화를 수호하는데 기여하고, 6·25전쟁 시 자유 우방 국가들의 은혜에 보답하며, 자유와 정의를 이룩한다는 사명과 의의를 가지고 5천년 역사상 처음으로 외국에 전투부대 파병을 결정하게 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최초 해병대 1개 여단을 포함한 육군 1개 사단(-1)의 파월을 결정하였다. 이에 따라 경북 포항기지에서 제2연대를 기간으로 해병 제2 여단을 창설하여 박정희 대통령 참석 아래 전 국민의 축복과 성원을 보내는 가운데 결단식을 가졌다. 제2여단은 미 수송선에 탑승하여 동년 10월 3일, 부산항을 출항하여 10월 9일, 베트남 캄란 만에 도착하였다.

 

청룡부대 창설.jpg

 

 

캄란지구작전(1965. 10. 9. ~ 11. 4.)

 

청룡부대는 캄란 항에 상륙(1965.10. 9.)한 이후 동년 10월 19일부로 미 제101공정사단 제1여단으로부터 캄란 만 일대의 전술책임지역을 인수하였다. 1965년 10월 24일부터 제2대대는 워싱턴작전을 전개하여 판랑 일대 부손비행장 전술기지의 확장공사에 따른 방호작전을 수행하였으며, 11월 4일부터는 부손비행장을 위협하는 까투산의 적을 소탕하는 백경작전을 실시하여 18년 동안 베트콩의 아성으로 군림하였던 까투산을 탈환하였다. 그 뒤 제3대대는 나트랑 서북쪽에서 번개 1·2·3호 작전을 수행하여 1번 도로를 위협하는 베트콩을 완전히 소탕하여 적의 위협을 제거함으로써 나트랑 서북쪽 산악지역과 나트랑 비행장을 안전하게 확보하였다.

 

해병대 캄란지구작전.jpg

 

투이호아(Tuy Hoa)지구작전(1965. 12. 16. ~ 1966. 8. 17.)

 

나트랑 서북쪽에서 번개 작전을 수행하였던 청룡부대는 남베트남 3대 곡창지대 중 하나로서 베트콩의 식량 공급원 지역이었던‘투이호아’로 이동한 후 청룡1호(여단급) 작전을 전개하여 투이호아 평야 지역을 평정하고 봉로 만 일대에서 준동하던 북베트남 정규군과 베트콩 약 1,500명을 완전 소탕한 후 남베트남의 대동맥인 1번 도로를 개척하였다. 그 뒤 약 1개월 동안 투이호아 서남부 평야에서 주민들과 피난민 추수 보호를 위한 청룡2호 작전을 실시하였고, 이후에도 양민 보호, 촌락 재건 등을 위한 재건작전을 수행한 뒤 봉로 만 부두시설과 1번 도로 개척을 위한 미 건설 공병부대의 항만 및 교량건설과 비행장 건설공사를 방호하였다. 특히 1965년 8월 11일, 귀순자의 첩보에 따라 투이호아 서쪽 14km 지점에서 실시한 기습작전과 적극적인 탐색작전에서 베트콩의 동굴을 탐색하던 청룡부대 제3대대 정보장교 이인호 대위는 선두에서 동굴탐색을 실시하던 중, 적이 던진 수류탄 으로 뒤따르는 부하들이 위험해지자 이를 가슴에 안고 산화하여 부하를 보호함으로써 그의 숭고한 희생정신은 전 국군의 귀감이 되었으며 군인 최고의 무공훈장인 태극무공훈장이 추서되었다.

 

해병대 투이호아지구작전.jpg

 

추라이(Chu Lai)지구작전(1966. 8. 18. ~ 1967. 12. 21.)

 

북베트남군의 주요한 해상 침투로인 동시에 연합군의 최대 보급기지인 다낭비행장과 남베트남군 1군단 지역 배후에서 위협하는 적을 제거하기 위하여 추라이지구(쾅나이 성)로 이동한 청룡부대는 황금, 비봉, 용안, 투망, 강구, 짜빈동, 뇌룡, 용머리, 테로이매복, 용화 작전 등 수많은 작전을 수행하여 추라이지구 내 전술책임지역을 확보하였다. 특히 짜빈동 작전에서 북베트남 정규군 1개 연대의 야간기습공격을 받고도 육박전, 역습 등을 실시하여 4시간 동안의 사투 끝에 적을 격퇴하여 베트남전 사상 중대 규모로는 최대의 전승 기록을 남겼다.

 

해병대 추라이지구작전.jpg

 

짜빈동작전(1967. 2. 14. ~ 15.)
 
짜빈동작전(1967.2.14.23:20~1967.2.15.07:24)은 청룡부대 제3대대 제11중대가 손틴 군 짜빈동에서 북베트남 정규군 제2사단 제1연대 및 지방 게릴라가 인해전술로 파상적인 기습공격을 가해옴에 따라 전술기지의 외곽과 내곽 방어선으로 연하는 교통호를 이용하여 일제 사격과 수류탄 및 크레모아 지뢰를 이용, 침입하는 적을 격퇴하였다. 한때는 제3소대의 진지 일부가 돌파되어 치열한 진내 육박전까지 전개하였지만 지원화기의 적절한 운용, 역습부대의 과감한 공격 등으로 4시간의 사투 끝에 적의 주력을 격퇴하고 전술기지를 방어하였다. 이 전투결과 한국 해병대의 막강한 전투력을 전 세계에 과시하고‘신화를 남긴 해병대’라는 전통을 수립하게 되었다. 그리고 청룡부대 제11중대는 대통령 부대표창을 수상하였고 제11중대 사병 전원은 일계급 특진의 영예를 얻었다. 중대장 정경진 대위와 제1소대장 신원배 소위는 군인 최고 명예인 태극무공훈장 수여받았고, 1968년 5월에는 미국 대통령 부대 표창도 수상하였다.
 
태극무공훈장을 수훈하는 정경진 11중대장.jpg

태극무공훈장을 수훈하는 정경진 11중대장

 

 

호이안(Hoi An)지구작전(1967. 12. 22. ~ 1972. 1. 31.)

 

청룡부대는 미 해병대 제3상륙군과 연합작전을 수행하고 베트남 제2의 전략도시인 다낭과 호이안시를 연결하는 1번 도로를 확보하여 베트남 정부의 통제구역을 확장하기 위한 목적으로 추라이 지역에서 호이안 지역으로 이동하였다. 호이안 지구에 도착하자마자 북베트남 정규군 제3사단이 대규모 구정공세를 가해 왔으나 반격작전인 괴룡작전을 1개월 이상 실시하여 적을 격퇴시켜 호이안 지역은 물론, 다낭지역을 지향하였던 적의 위협을 제거하였다. 그 후 전술책임지역 내 적 섬멸을 위한 용진작전, 추수보호작전 등을 전개하였고, 서룡작전, 포병대대 방어작전, 승룡작전, 황룡작전 등을 전개하여 지역 내 적을 대부분 소탕하고 호이안 지역을 평정하였다. 특히, 승룡 12-1호(고노이 섬)작전 및 15-1호(베리아반도 상륙)작전은 베트남 전투사에 길이 빛날 작전이었다.

 

총탄난 철모를 보고 있는 청룡.jpg

총탄난 철모를 보고 있는 청룡

 

고노이 섬(승룡 12-1)작전(1969. 6. 3. ~ 19.)

 

청룡부대는 작전기간 중 다낭 남방 20km 지점에 있는 북베트남군 제36 연대의 난공불락 요새지인 고노이 섬의 적을 소탕하기 위하여 미군과 남베트남군의 지원을 받으며 수륙양면과 공중 등 입체적인 기습공격작전을 감행하여 지역 내 적을 완전 소탕하고 장비(도저30대)를 이용, 산재한 지하 통로 및 적의 전략적 은거지를 완전히 제거한 작전이다. 이 작전으로 디엔반 군과 호이안 시는 외곽으로부터 적의 위협을 받지 않고 평온한 상태가 유지되었다.

 

고노이 섬 작전 상황도.gif

고노이 섬 작전 상황도

 

베리아(승룡 15-1)반도 상륙작전(1969. 9. 5. ~ 30.)

 

다낭 30km 지점에 위치한 베리아 반도는 북베트남 정규군과 베트콩이 근거지로 이용하여 호이안 지역과 다낭 일대의 군사시설을 위협하던 적의 요새지였다. 청룡부대는 인천상륙작전 이래 처음으로 베트남전 사상 최초로 한·미 해병대가 연합으로 미 제7함대의 지원 하에 여단급 상륙작전(한국 해병대 RLT급, 미 해병대 BLT급)을 감행하여 베리아 반도의 적을 소탕하고 초토화함으로써 적의 지역사용을 거부하였으며, 억류된 1,900여 명의 양민을 구출하였다.

 

베리아반도에 상륙하는 청룡 용사들.jpg

베리아반도에 상륙하는 청룡 용사들

 


  1. notice

    해병대연혁

    1940년대 1949년 4월 15일 해병대 창설 경상남도 진해 덕산비행장 / 병력 - 해군에서 전과한 장병 380명 / 초대 사령관 - 해병대령 신현준 1949년 5월 5일 해병대領 공포 (대통령령 제 88호) 1949년 8월 1일 해병 제 ...
    Date2010.11.03 Views491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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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해병대 70년사 베트남파병기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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