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는 태어난 날부터 계속 울다 50일 만에 죽었다. 의사는 폐렴에 급성 신부전증이 원인이라고 했다. 고엽제 환자인 내 탓이었다." 1968년 해병으로 월남전에 참전했다가 고엽제 피해를 입고 40여년간 후유증에 시달리다 지난 14일 사망한 김모(65)씨가 1997년 쓴 '세상에 외치고 있다'라는 책에 실린 둘째 아이를 잃은 사연이다.
김씨와 7년을 함께 산 동거녀 김모씨는 "그 사람은 목욕을 잘 하지 않으려 했다. 목욕하면 피부에서 피가 나 힘들어했다. 고엽제 후유증은 참 질기고 무서웠다"며 눈물지었다. 그녀는 "2009년 중풍에 걸린 뒤 상태가 갈수록 심해져 밥을 먹다 마비가 와 반찬 위에 엎어진 적도 많았다"고 했다.
숨진 김씨는 지난 40여년 동안 고엽제 후유증으로 고통받다 알코올 중독에 빠져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고, 두 아들과 아내와 함께 살지 못하고 12년간이나 진해·부산·광주의 정신병원에 장기 입원하기도 했다. 그리고 가족과 헤어져 평생 두 아들을 그리워하며 살았다. 고엽제는 그의 인생을 일그러뜨렸다. 그는 이런 사연들을 2004년 '국민들이여'라는 제목의 두 번째 책에도 담았다.
김씨는 2년 전부터는 "국민에게 고엽제 후유증을 앓고 있는 월남전 참전 용사들 실상을 더 알려야 한다"며 세 번째 책을 쓰는 중이었다고 한다. 지난달 중순 동거녀 김씨가 광주광역시에 있는 자신의 딸 집에 함께 가자고 했을 때도 "책을 마저 써야 한다"며 혼자 서울 응암동 반지하 월세방에 남았다.
김씨는 그러나 결국 세 번째 책은 마무리 짓지 못했다. 지난 14일 밤 집에서 숨져 있는 그를 동거녀 김씨가 발견했다. 김씨는 "오전부터 전화를 받지 않아 서울로 올라와 보니 이불을 덮은 채 자는 듯 누워 있었다"고 했다.
서울 서부경찰서 관계자는 "부검 결과 여러 질병으로 몸이 쇠약해져 자연사한 것으로 나왔다"고 했다. "앞으로 또 어떤 비극적 일이 내게 생길지 두렵다"던 그의 길었던 고통은 이렇게 끝났다. <조선일보 김지섭기자>